[기자수첩] '신화' 무너졌지만 명예 지켰다
강덕수 전 STX 회장의 '샐러리맨 신화'는 무너졌지만 그의 명예는 지켜졌다. 강 전 회장은 2조6000억원대 기업범죄 혐의로 기소돼 1심에서 징역 6년을 선고받았다. 그러나 강 전 회장의 뒤에는 그를 변호하는 임직원과 협력업체들의 탄원이 있었다. 재판에 넘겨진 대기업 총수 가운데 주변인들이 나서서 재판부에 선처를 호소한 것은 전례가 없다. '샐러리맨 신화'는 무너졌지만 명예만은 지켰다고 표현한 것은 이 때문이다.

강 전 회장의 마지막은 아름다웠다. 그는 경영권을 보장받고 협력업체에 대한 채무도 탕감 받을 수 있었지만 모두 내려놨다. 오히려 법정관리를 뿌리치고 자신의 지분과 기득권을 포기하면서까지 채권단과 자율협약을 체결해 협력업체의 줄도산을 막았다. 궁지에 몰렸을 때 자신의 이익만을 챙기려 했던 일부 대기업 총수의 모습과는 딴판이었다.


이 같은 그의 진심을 알 만한 사람들은 다 알아서일까. 재판과정에서 많은 이들이 그에 대한 선처를 호소했다. 임직원을 비롯해 회사와 대치하는 경우가 더 많을 법한 협력업체 노조 간부들까지 나서서 선처 탄원서를 제출했다. 덕분에 강 전 회장은 명예를 지켰다.

법원도 이런 점을 인정했다.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8부(부장판사 김종호)는 지난 10월30일 열린 선고공판에서 "강 전 회장이 개인의 이익을 위한 것이 아니라 회사 경영정상화를 위해 이 같은 범행을 저지른 점, 강 전 회장으로부터 은혜를 입은 여러 사람이 선처를 바라는 탄원서를 제출한 점 등을 고려했다"고 양형 이유를 설명했다.


하지만 법원의 판결은 냉정했다. 검찰이 구형한 징역 10년까지는 아니지만 징역 6년이라는 중형을 선고 받았다. 재판부는 강 전 회장의 2조3000억원대 분식회계 혐의 가운데 5841억원 상당을 유죄로 인정했다. 또 횡령·배임액은 679억5000만원을 유죄로 봤고 2743억원가량은 무죄판결을 내렸다.

샐러리맨으로 시작해 재계 12위 재벌그룹 총수까지 올라 '샐러리맨의 신화'를 창조하고 '인수합병의 귀재'로 조명 받았던 강 전 회장. 그는 비록 몰락했지만 그가 실천한 희생과 임직원 및 협력업체들의 진심 어린 호소는 한동안 우리들 가슴 속에 온기로 남을 듯하다.


☞ 본 기사는 <머니위크>(www.moneyweek.co.kr) 제356호에 실린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