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 충북 보은에는 착한 부자가 살았으니…
송세진의 On the Road / 보은 선병국가옥
송세진 여행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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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병국가옥 사랑채
부잣집을 보면 어떤 생각이 드는가. 부러움 끝에 드는 시샘을 숨기기 어렵다. 큰 부잣집 선병국가옥은 괜한 트집을 잡아보려 했던 여행자에게 미담을 선사한다. 가을을 더 풍성하게 만드는 '착한 부자' 이야기를 들으러 보은으로 간다.
◆섬 안의 성, 선병국가옥
‘선병국가옥’은 전통한옥이다. 지붕엔 기와를 얹었는데, 붉은 벽돌과 시멘트까지 보인다. ‘복원을 왜 이렇게 했지?’ 하고 실망했다면 이 집을 모르고 하는 말이다. 1919년에서 1924년까지 선영홍과 그 아들 선정순이 지은 ‘선병국가옥’은 구한말 유행한 건축양식을 잘 보여준다.
개화의 바람이 한창이던 시대에 궁궐 목수였던 방대문까지 도편수로 초빙해 완성한 99칸 부잣집이고, 지금까지 보존이 비교적 잘된 집이다. 그러니까 1900년대 초, 멋을 잔뜩 부려 지은 그 시대의 ‘퓨전 한옥’인 셈이다. 3900여평의 넓은 일곽에 사랑채, 안채, 사당 크게 세 영역으로 나뉘는데 영역마다 이중으로 담을 쳐서 외담과 내담 사이로 길(고샅)이 났다. 분명 솟을 대문 안으로 들어왔는데 집 안에 옛 동네에서 보던 골목이 있다. 여기에 속리산 천왕봉의 삼가천 물줄기가 집을 둘러싸고 흐르니 외국으로 치자면 성(castle)에 들어온 느낌이다.
원래 선영홍공은 전남 고흥에 살던 사람이다. 그런데 집터를 잡던 중 ‘섬에 집을 지라.’는 꿈을 꿨다고 한다. 전국을 돌아다니며 집터를 찾은 결과 서울 여의도와 현재 집 자리를 후보로 삼았고 마침내 이곳 보은에 가옥을 완성했다. 그러니까 집을 둘러 흐르는 물이 그냥 물이 아니다. 현몽을 따라 ‘육지 속의 섬’에 자리 잡은 이 집은 풍수지리학에서 인정하는 연화부수형 명당으로 연꽃이 물에 뜬 형상이다.
도대체 얼마나 부자였길래 이런 집을 지었을까. 그런데 이 멋진 가옥보다 더 놀라운 것은 이 집에 흐르는 가풍이다. 집을 지은 선영홍공의 아버지인 선처흠선생과 부인 김씨는 고종 29년에 나라에서 효자와 열녀로 명정해 정려각을 세웠다. 이 집안은 해마다 보릿고개가 되면 만주지역에서 좁쌀을 사들여 빈민을 구제하고, 지역주민의 어렵거나 억울한 일에 발벗고 나서서 구명하고, 생활고를 해결해 줬다.
이곳에 ‘선공영홍시혜비’라는 철비가 있는데 이는 선영홍공이 이곳으로 오기 전 전라남도 고흥군의 두원, 점암, 남양, 남면 등 4개면 소작인들이 세운 것이다.
그가 전남 고흥에 있을 때 많은 소작인에게 소작료를 인하하고 면민들의 세금을 대신 내주는 등 선정을 베풀어 고흥군 4개 면 소작인들이 1922년 선영홍공의 은혜에 감사하는 뜻으로 만들었다고 한다. 흔히 소설에 나오는 지주들은 자기 욕심만 채우는 악덕지주로 그려지기 일쑤였는데 이런 ‘착한 부자’와 이를 고맙게 여긴 소작농이 있었다니 한편 의외이고 흐뭇한 마음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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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전통을 만든 관선정
이들의 미담은 구휼로 끝나지 않는다. 동편에는 복원된 지 얼마 되지 않아 다소 어색해 보이는 한옥이 하나 있다. 이름은 관선정인데 지금은 본래의 용도와는 다르게 사용되고 있다. 원래 관선정은 ‘착한 사람들끼리 모이면 좋은 본을 받는다’는 뜻을 지닌 서당이었다. 이 서당은 99칸 대저택 동편에 33칸을 덧대어 지어졌고, 1926년부터 1944년 일제에 의해 폐쇄되기까지 인재양성의 요람이 된 곳이다.
이들은 보은 향교 명륜당에도 서숙을 설치하고 학자 홍치유 선생을 초빙해 학생들을 가르쳐 후학을 양성했다. 관선정으로 모여든 전국 각지의 젊은이에게는 음식과 잠자리를 무료로 제공했다. 일제 통치 아래 민족교육이 말살되던 시대에 이들은 참으로 귀한 일을 해 냈다. 이렇게 전통 유학을 지킨 노력의 결과, 관선정에서 수학한 이들이 1960~70년대 이후 우리나라 한문학의 주류를 이루게 된다.
그 대표적인 예가 청명 임창순(1914~1999)이다. 선생은 우리나라 금석학의 대가로 문화재위원장과 성균관 교수를 지낸 한국 한문학의 최고학자다. 그는 어려서 할아버지로부터 한자를 수학했으나, 할아버지께서 돌아가신 뒤로 가난 때문에 공부를 할 수 없었다.
14살 되던 해 보은 관선정에서 한문 공부할 사람을 모집한다는 소식을 듣고 입학해 홍치유 선생으로부터 6년간 한학을 배웠다. 25세에 교사시험에 응시해 교편을 잡은 이후 마침내 최고학자의 자리에 오르고 퇴임 후에는 사숙을 열어 가난한 인재를 모아 길러냈다. 자신이 보은의 관선정에서 배운 것처럼 한 것이다. 이처럼 관선정에서 수학한 이들은 선정훈 선생에 대한 감사의 마음을 잊지 않았고 1973년에는 선병국가옥에 관선정기적비를 세웠다.
아름다운 전통은 지금까지도 이어지고 있다. 종손인 선민혁옹은 선대의 유지를 받들어 안채에 있는 곳간채에서 고시생이 공부할 수 있도록 했다. 종부는 직접 고시생들의 식사를 책임지는 수고를 아끼지 않았고, 그런 정성 때문인지 이 집을 거쳐간 고시생이 1000여명에 이르고 합격자가 50명이 넘는다. 다만 여행자가 늘어나면서 공부하기에 다소 소란한 환경이 되다 보니, 고시원이 존폐의 위기에 놓였다고 하는 건 아쉬운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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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샅_담과 담 사잇길 |
◆살고 있어 살아 있는 집
이 집의 좋은 점은 사람의 흔적이다. 집을 구경하다 보면 여행자가 접근할 수 없는 공간이 있다. 바로 안채와 고시원이다. 사람이 살고 있기 때문이다. 담장 너머 빨랫줄에 널린 빨래도 ‘살고 있음’의 증거다. 잘 익은 감은 정성으로 꿰어 가을 빛을 받고 있다. 전깃줄과 접시 안테나도 이 곳이 삶의 공간임을 말한다.
종부는 장을 담근다. 350년의 역사를 가진 씨간장은 전국 로하스 식품전에 출품돼 1리터가 500만원에 팔리는 기록을 낳기도 했다. 장독대도 볼거리이다. 각 도별로 모양이 다른 장독이 입구로부터 늘어서있는데 총 700여개 장독을 3곳으로 나눠 보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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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원된 관선정 |
‘아당골 장체험장’에서는 일반인을 대상으로 장만들기 체험을 한다. 물론 장맛이 좋기로 유명하다. 물려받은 씨간장이 좋기 때문만은 아니다. 종가의 맛을 유지하기 위해 노력과 정성 또한 옛날 그대로다. 이들은 콩 80kg 한가마로 만든 메주에서 간장을 10리터밖에 내지 않는다고 한다. 마트에서 사는 대부분의 양조간장에 메주가 1%도 들어있지 않다는 것을 아는 사람이라면 종부의 노고와 자부심에 박수를 보낼 것이다. 이곳에서는 간장에도 생명이 느껴진다.
여행자에게 허락된 공간은 사랑채다. 마루가 반들반들 한 것이 앞서 간 사람의 체온을 간직하고 있다. 대청에 앉아 차 한잔을 마신다. 넓은 마당을 통해 들어온 빛이 늙은 호박 위에, 대추 위에, 말린 꽃 위에 떨어진다. 누군가에겐 아름답고 평화로운 여행이 되는 이 공간을 위해 관리인이자 경비원, 청소부이자 잡부의 일을 기꺼이 감당하고 있다. 전통의 미담과 평화로운 고택을 지켜가는 이들에게 감사의 인사를 전하며 솟을 대문을 나선다.
● 여행 정보
☞ 보은 선병국가옥 가는 법
[승용차]
경부고속도로 - 당진영덕고속도로 - 상장교차로에서 ‘속리산’ 방면으로 좌회전 - 보청대로 - 장내삼거리에서 ‘서원리’ 방면으로 우회전 - 장안로
[대중교통]
보은시외버스터미널 - 삼산리 정류장까지 도보이동 - (보은-회령) 버스나 (보은-중률) 버스 승차 - 장내2리 정류장 하차 - 선병국가옥까지 이동
[주요 스팟 내비게이션 정보]
선병국가옥: 검색어 ‘선병국가옥’ / 충청북도 보은군 장안면 개안리 154
< 주요 정보 >
보은관광
043-540-3000 / www.tourboeun.go.kr
선병국가옥
안채(고시원 문의): 043-543-7177
사랑채(전통찻집 문의): 043-542-9933
장담그기, 고추장, 장아찌, 전통음식 체험(20명 이상, 일주일 전 예약): 1인당 1만5000~2만원
< 음식 >
신라식당: 콩조림과 두릅, 고추장아찌 등의 밑반찬이 맛있고 칼칼한 뒷맛과 들기름의 풍미가 좋은 북어찌개가 일품인 40년 전통의 식당이다.
북어찌개정식 8000원 / 호박고지찌개 1만원 / 불고기정식 1만5000원
043-544-2869 / 충청북도 보은군 보은읍 삼산리 155-2
경희식당: 최근 케이블TV의 착한식당 13호점으로 인정받은 식당이다. 메뉴는 한정식이고 남은 음식은 싸 갈수 있도록 준비돼 있다.
한정식 2만5000원 / 불고기 2만5000원
043-543-3736 / 충청북도 보은군 속리산면 사내7길 11-4
< 숙소 >
선병국가옥: 안채 객실 하나와 별채 3개를 일반인 숙박시설로 이용할 수 있다.
안채(4~6명): 10만원
별채(2인, 3~6명): 6만 ~ 7만원
예약문의: 043-543-7177, 010-2565-5526
http://blog.daum.net/sammanpyung / 충청북도 보은군 장안면 개안길 10-2
알프스자연휴양림: 알프스자연휴양림 안에는 휴양관과 펜션 등 다양한 형태의 숙소가 있어 단체 MT나 가족 여행에 이용할 수 있다.
산림휴양관: 5만3000 ~ 17만원
숲속의 집(15명 단체): 9만2000 ~ 18만4000원
숲속의 작은집, 알프스 빌리지(펜션): 5만2000 ~ 14만원
예약문의: 043-543-1472
http://alpshuyang.boeun.go.kr / 충청북도 보은군 산외면 속리산로 1880
☞ 보은 선병국가옥 가는 법
[승용차]
경부고속도로 - 당진영덕고속도로 - 상장교차로에서 ‘속리산’ 방면으로 좌회전 - 보청대로 - 장내삼거리에서 ‘서원리’ 방면으로 우회전 - 장안로
[대중교통]
보은시외버스터미널 - 삼산리 정류장까지 도보이동 - (보은-회령) 버스나 (보은-중률) 버스 승차 - 장내2리 정류장 하차 - 선병국가옥까지 이동
[주요 스팟 내비게이션 정보]
선병국가옥: 검색어 ‘선병국가옥’ / 충청북도 보은군 장안면 개안리 154
< 주요 정보 >
보은관광
043-540-3000 / www.tourboeun.go.kr
선병국가옥
안채(고시원 문의): 043-543-7177
사랑채(전통찻집 문의): 043-542-9933
장담그기, 고추장, 장아찌, 전통음식 체험(20명 이상, 일주일 전 예약): 1인당 1만5000~2만원
< 음식 >
신라식당: 콩조림과 두릅, 고추장아찌 등의 밑반찬이 맛있고 칼칼한 뒷맛과 들기름의 풍미가 좋은 북어찌개가 일품인 40년 전통의 식당이다.
북어찌개정식 8000원 / 호박고지찌개 1만원 / 불고기정식 1만5000원
043-544-2869 / 충청북도 보은군 보은읍 삼산리 155-2
경희식당: 최근 케이블TV의 착한식당 13호점으로 인정받은 식당이다. 메뉴는 한정식이고 남은 음식은 싸 갈수 있도록 준비돼 있다.
한정식 2만5000원 / 불고기 2만5000원
043-543-3736 / 충청북도 보은군 속리산면 사내7길 11-4
< 숙소 >
선병국가옥: 안채 객실 하나와 별채 3개를 일반인 숙박시설로 이용할 수 있다.
안채(4~6명): 10만원
별채(2인, 3~6명): 6만 ~ 7만원
예약문의: 043-543-7177, 010-2565-5526
http://blog.daum.net/sammanpyung / 충청북도 보은군 장안면 개안길 10-2
알프스자연휴양림: 알프스자연휴양림 안에는 휴양관과 펜션 등 다양한 형태의 숙소가 있어 단체 MT나 가족 여행에 이용할 수 있다.
산림휴양관: 5만3000 ~ 17만원
숲속의 집(15명 단체): 9만2000 ~ 18만4000원
숲속의 작은집, 알프스 빌리지(펜션): 5만2000 ~ 14만원
예약문의: 043-543-1472
http://alpshuyang.boeun.go.kr / 충청북도 보은군 산외면 속리산로 1880
☞ 본 기사는 <머니위크>(www.moneyweek.co.kr) 제357호에 실린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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