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섀도 보팅' 3년 유지, 경제계 짙은 그림자 덜어냈나
정채희 기자
5,321
공유하기
#1. 코스닥시장에 상장된 A사의 대표이사는 최근 골머리를 앓고 있다. 감사위원의 임기만료에 따른 주주총회를 개최해야 하지만 내년 1월 초로 예정된 '섀도보팅제도' 폐지에 따라 의결정족수를 채우기 위한 해법 마련에 고심하고 있는 것. 의결권 행사보다 투자수익에 관심이 있는 주주들은 주총에 얼굴을 드러낼 리 만무하고 주총이 무산되면 법규상 제재를 받아 과태료 부과는 물론 심한 경우 상장폐지에 이를 수 있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A사 대표의 얼굴엔 수심이 가득하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데…아, 어쩌란 말이냐!"
#2. 같은 고민을 하던 B사 관계자는 한시름 놨다. 섀도보팅제도 폐지에 앞서 일찌감치 주주총회를 열기로 한 것. 오는 12월 개최되는 임시주총에서 감사 선임 안건을 해결키로 했다. 급한 불은 껐지만 당장 내년에도 같은 고민이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B사 관계자는 "섀도보팅제도 폐지 논의가 유예되기만을 바랄 뿐"이라고 말했다.
내년 1월1일부로 '섀도보팅'(Shadow voting)제도 폐지를 앞두고 상장사들의 성난 아우성이 금융당국을 향했다. 내년 주주총회를 앞둔 코스피·코스닥시장 상장사들의 피해가 막심하니 섀도보팅제도 폐지를 유예하거나 결의방법을 완화해 달라고 금융당국에 요청하는 의견이 빗발치고 있는 것이다.
◆경제계 "유예해 달라" 읍소
전국경제인연합회·대한상공회의소·한국상장사협의회·코스닥협의회 등 경제계 단체는 지난 11월20일 "섀도보팅제도 폐지로 인한 주총 결의 불성립 시 기업이나 투자자에게 법적·경제적 손실이 상당하다"며 "정상적인 주총 운영을 위한 정부당국의 조속한 대책마련을 촉구한다"고 밝혔다.
경제계가 이처럼 공동 행동에 나선 것은 내년 1월로 예정된 섀도보팅 폐지에 대한 우려 때문이다. 지난 1991년 상장사 주총 운영의 어려움을 지원하기 위해 도입된 섀도보팅제도는 전체주주 의사를 왜곡하고 소액주주를 경시한다는 비판 하에 폐지론이 불거졌다. 이에 지난해 5월, 1년6개월간의 유예기간을 거쳐 내년 1월1일부터 해당제도를 폐지하는 개정안이 통과됐다.
하지만 1년여의 유예기간으로는 제도 폐지에 대비할 수 없다는 게 다수 상장사들의 논리다. 최근 임시주총을 앞둔 C사의 한 관계자는 "준비여건이 갖춰지지 않은 상황에서 섀도보팅 폐지를 받아들이기 힘든 부분이 있다"며 "제도 시행까지 2~3년 정도 유예기간을 줘야 대비책을 마련할 수 있지 않겠느냐"고 하소연했다. 이 관계자는 "전자투표제는 섀도보팅의 보완이 될 수 있지만 완전한 해결책은 아니다"며 "추가적인 대책마련이 시급한 상황"이라고 덧붙였다.
결국 발등에 불이 떨어진 상장사들의 의견을 모은 4개 단체가 "유예기간을 연장하고 현재의 주총 결의방법을 대폭 완화해 달라"고 금융당국을 향해 한목소리를 내게 된 것이다.
이들이 지적하는 가장 큰 문제는 '머릿수 채우기'다. 우리증시의 특성상 주주들의 주된 관심이 의결권 행사보다 투자수익 획득에 있다 보니 의결정족수를 채울 만한 주주들을 주총으로 끌어 모으기가 쉽지 않다는 것.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최근 5년간 투자자들의 평균주식보유 최장기간은 코스피 종목이 5.2개월, 코스닥 종목은 2.9개월에 그친다.
이에 단체는 "현행 주총 결의방법을 대폭적으로 완화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한다. 현재 보통결의의 경우 발행주식총수의 4분의 1이 참석해야 의결되지만 미국·독일 등 주요국은 이 같은 의사정족수의 요건 없이 실제 주총에 참석한 주식수를 기준으로 의결정족수를 규정한다.
아울러 단체는 "감사·감사위원 선임 시 의결권이 제한되는 규제도 재검토가 이뤄져야 한다"고 주장한다. 현재 감사 선임건에 한해 최대주주 및 특수관계인의 의결권 행사가 3% 이하로 제한된다. 단체는 "섀도보팅 폐지 후에도 의결권 제한규제가 유지될 시 상장사의 주총 운영에 매우 큰 차질이 예상된다"며 "감사위원 선임이 무산될 경우 관리종목으로 지정되거나 상장폐지가 될 수도 있다"고 우려했다.
◆"대안 없는 폐지 과도"…정치권 개정안 제출
학계도 경제계의 의견에 힘을 실어주는 분위기다. 김수연 한국경제연구원 연구원은 "장기적 관점에서 섀도보팅을 폐지하는 것이 회사법적으로 바람직한 방향이겠으나 상당수 기업들이 주총을 정상적으로 진행하지 못할 것임이 예상되는 상황에서 대안 없이 내년 초 폐지를 추진하는 것은 과도하다"고 지적했다.
김 연구원은 합리적인 대안으로 자본시장법 개정을 통한 섀도보팅제도의 유예를 들었다. 그는 "오는 2016년까지 섀도보팅제도의 유예기간을 연장해야 한다"면서 이와 함께 ▲감사·감사위원 선임 시 의결권 제한 규정 폐지 ▲주총 보통결의 정족수를 출석의결권의 과반수 기준으로 완화하는 작업 등이 병행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상장사 역시 주총 활성화를 책무로 수용하고 주주의 주총 참여를 독려하는 자세로 전자투표·서면투표 또는 위임장제도의 활용을 진지하게 검토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경제계 단체도 제도의 폐지를 요구하는 것은 아니다. 단체는 "제도의 폐지에 반대하는 것이 아니다"며 "상장사의 주총이 특정일에 집중돼 개최되는 등 일부 주주권 행사 독려에 소홀했던 그릇된 관행이 있었음을 인정한다"고 전했다. 이어 "향후 주총일 분산, 전자투표 실시, 의결권대리행사 권유 등 주주권 행사 독려를 위해 더욱 노력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한편 정치권에서는 현재 이들의 의견을 반영해 감사선임 등 일부 안건에 한해 오는 2017년 12월31일까지 섀도보팅을 활용할 수 있게 하는 내용의 '자본시장법 개정안'을 국회에 제출했다.
그리고 3일 섀도보팅은 앞으로 3년동안 유예됐다. 주총이 성립되지 않거나 감사 선임 등 일부 안건이 의결정족수 미달로 파행을 빚을 거란 우려를 제기한 업계의 견해가 정치권에서 받아들여진 것으로 시장은 해석하고 있다.
☞ 본 기사는 <머니위크>(www.moneyweek.co.kr) 제360호에 실린 기사입니다.
#2. 같은 고민을 하던 B사 관계자는 한시름 놨다. 섀도보팅제도 폐지에 앞서 일찌감치 주주총회를 열기로 한 것. 오는 12월 개최되는 임시주총에서 감사 선임 안건을 해결키로 했다. 급한 불은 껐지만 당장 내년에도 같은 고민이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B사 관계자는 "섀도보팅제도 폐지 논의가 유예되기만을 바랄 뿐"이라고 말했다.
내년 1월1일부로 '섀도보팅'(Shadow voting)제도 폐지를 앞두고 상장사들의 성난 아우성이 금융당국을 향했다. 내년 주주총회를 앞둔 코스피·코스닥시장 상장사들의 피해가 막심하니 섀도보팅제도 폐지를 유예하거나 결의방법을 완화해 달라고 금융당국에 요청하는 의견이 빗발치고 있는 것이다.
![]() |
사진은 기사내용과 무관. /자료사진=머니투데이DB |
◆경제계 "유예해 달라" 읍소
전국경제인연합회·대한상공회의소·한국상장사협의회·코스닥협의회 등 경제계 단체는 지난 11월20일 "섀도보팅제도 폐지로 인한 주총 결의 불성립 시 기업이나 투자자에게 법적·경제적 손실이 상당하다"며 "정상적인 주총 운영을 위한 정부당국의 조속한 대책마련을 촉구한다"고 밝혔다.
경제계가 이처럼 공동 행동에 나선 것은 내년 1월로 예정된 섀도보팅 폐지에 대한 우려 때문이다. 지난 1991년 상장사 주총 운영의 어려움을 지원하기 위해 도입된 섀도보팅제도는 전체주주 의사를 왜곡하고 소액주주를 경시한다는 비판 하에 폐지론이 불거졌다. 이에 지난해 5월, 1년6개월간의 유예기간을 거쳐 내년 1월1일부터 해당제도를 폐지하는 개정안이 통과됐다.
하지만 1년여의 유예기간으로는 제도 폐지에 대비할 수 없다는 게 다수 상장사들의 논리다. 최근 임시주총을 앞둔 C사의 한 관계자는 "준비여건이 갖춰지지 않은 상황에서 섀도보팅 폐지를 받아들이기 힘든 부분이 있다"며 "제도 시행까지 2~3년 정도 유예기간을 줘야 대비책을 마련할 수 있지 않겠느냐"고 하소연했다. 이 관계자는 "전자투표제는 섀도보팅의 보완이 될 수 있지만 완전한 해결책은 아니다"며 "추가적인 대책마련이 시급한 상황"이라고 덧붙였다.
결국 발등에 불이 떨어진 상장사들의 의견을 모은 4개 단체가 "유예기간을 연장하고 현재의 주총 결의방법을 대폭 완화해 달라"고 금융당국을 향해 한목소리를 내게 된 것이다.
이들이 지적하는 가장 큰 문제는 '머릿수 채우기'다. 우리증시의 특성상 주주들의 주된 관심이 의결권 행사보다 투자수익 획득에 있다 보니 의결정족수를 채울 만한 주주들을 주총으로 끌어 모으기가 쉽지 않다는 것.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최근 5년간 투자자들의 평균주식보유 최장기간은 코스피 종목이 5.2개월, 코스닥 종목은 2.9개월에 그친다.
이에 단체는 "현행 주총 결의방법을 대폭적으로 완화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한다. 현재 보통결의의 경우 발행주식총수의 4분의 1이 참석해야 의결되지만 미국·독일 등 주요국은 이 같은 의사정족수의 요건 없이 실제 주총에 참석한 주식수를 기준으로 의결정족수를 규정한다.
아울러 단체는 "감사·감사위원 선임 시 의결권이 제한되는 규제도 재검토가 이뤄져야 한다"고 주장한다. 현재 감사 선임건에 한해 최대주주 및 특수관계인의 의결권 행사가 3% 이하로 제한된다. 단체는 "섀도보팅 폐지 후에도 의결권 제한규제가 유지될 시 상장사의 주총 운영에 매우 큰 차질이 예상된다"며 "감사위원 선임이 무산될 경우 관리종목으로 지정되거나 상장폐지가 될 수도 있다"고 우려했다.
![]() |
◆"대안 없는 폐지 과도"…정치권 개정안 제출
학계도 경제계의 의견에 힘을 실어주는 분위기다. 김수연 한국경제연구원 연구원은 "장기적 관점에서 섀도보팅을 폐지하는 것이 회사법적으로 바람직한 방향이겠으나 상당수 기업들이 주총을 정상적으로 진행하지 못할 것임이 예상되는 상황에서 대안 없이 내년 초 폐지를 추진하는 것은 과도하다"고 지적했다.
김 연구원은 합리적인 대안으로 자본시장법 개정을 통한 섀도보팅제도의 유예를 들었다. 그는 "오는 2016년까지 섀도보팅제도의 유예기간을 연장해야 한다"면서 이와 함께 ▲감사·감사위원 선임 시 의결권 제한 규정 폐지 ▲주총 보통결의 정족수를 출석의결권의 과반수 기준으로 완화하는 작업 등이 병행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상장사 역시 주총 활성화를 책무로 수용하고 주주의 주총 참여를 독려하는 자세로 전자투표·서면투표 또는 위임장제도의 활용을 진지하게 검토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경제계 단체도 제도의 폐지를 요구하는 것은 아니다. 단체는 "제도의 폐지에 반대하는 것이 아니다"며 "상장사의 주총이 특정일에 집중돼 개최되는 등 일부 주주권 행사 독려에 소홀했던 그릇된 관행이 있었음을 인정한다"고 전했다. 이어 "향후 주총일 분산, 전자투표 실시, 의결권대리행사 권유 등 주주권 행사 독려를 위해 더욱 노력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한편 정치권에서는 현재 이들의 의견을 반영해 감사선임 등 일부 안건에 한해 오는 2017년 12월31일까지 섀도보팅을 활용할 수 있게 하는 내용의 '자본시장법 개정안'을 국회에 제출했다.
그리고 3일 섀도보팅은 앞으로 3년동안 유예됐다. 주총이 성립되지 않거나 감사 선임 등 일부 안건이 의결정족수 미달로 파행을 빚을 거란 우려를 제기한 업계의 견해가 정치권에서 받아들여진 것으로 시장은 해석하고 있다.
☞ 섀도보팅 : 정족수 미달로 상장사의 주주총회가 무산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참석하지 않은 주주들의 투표권을 행사할 수 있는 '의결권대리행사제도'를 말한다. 주권을 발행한 회사가 한국예탁결제원에 해당제도를 요청한 경우 주총 참석 주주의 찬반투표비율을 출석하지 않은 나머지 주주에 대해서도 동등한 비율을 적용해 표결에 참여한 것처럼 간주하는 것으로 우리말로 풀이하면 '그림자투표'다.
☞ 본 기사는 <머니위크>(www.moneyweek.co.kr) 제360호에 실린 기사입니다.
<저작권자 ⓒ ‘성공을 꿈꾸는 사람들의 경제 뉴스’ 머니S,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보도자료 및 기사 제보 ( [email protected]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