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 첫사랑의 영화, 왜 여기일까
송세진의 On the Road / 제주 위미리·위미항
송세진 여행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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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 위미리의 귤 |
서귀포가 온통 노랗게 익어가고 있다. 새삼, ‘제주에 이렇게 많은 귤나무가 있었나?’ 하는 생각이 든다. 겨울이 우리에게 주는 축복의 열매 귤. 감귤재배로 유명한 위미리와 아름다운 위미항으로 비타민 충전하는 여행을 떠난다.
◆넉넉함과 추억을 담은 귤
코팅된 장갑, 빨간색 가위, 노란색 바구니…. 휘어지게 달려있는 귤나무를 향해 간다. 나무에 붙어있는 꼭지 부분을 톡 끊어내고 가지를 한번 더 정리해 주면 끝. 30분이면 10㎏ 정도는 쉽게 따겠다. 그렇지만 어디 그런가? 탱글하게 익은 귤과 함께 사진도 찍고, 금방 따낸 귤맛도 보자니 ‘작업 속도’가 영 나지 않는다. 사실 귤을 따서 바구니에 넣기도 전에 까 먹기 바쁘다.
체험 농장에서 먹는 귤은 모두 공짜다. 귤을 가져갈 욕심보다는 먹고, 찍고, 맛보고, 즐기고…. 노란 색 싱그러움을 만끽하는 것이 귤 농장 체험의 요령이겠다. 바로 딴 귤은 조금 신맛이 난다. 그렇지만 하루 이틀 숙성되면서 수분이 빠져나가고 껍질도 얇아져 달고 상큼한 맛을 낸다. 그러니까 체험 농장에서 귤은 ‘신선함’으로 먹는다. 5㎏ 이상 수확했다면 박스로 포장해 집으로 택배를 보낸다. 집에 돌아가면 직접 딴 적당히 숙성돼 단맛이 나는 귤이 와 있을 것이다. 덕분에 두고두고 제주여행의 추억을 먹게 될 것이다.
귤의 옛이름은 ‘황감’이다. 지금은 흔하지만 옛날엔 보통사람이 먹기는커녕 존재조차 몰랐을 과일이다. 100년 전까지만 해도 시장에는 유통되지도 않았던, 임금에게 올리는 진상품이었다. 예전에 제주에서는 귤나무를 ‘대학나무’라 불렀다. 집에 귤나무가 하나 있으면 자녀를 대학까지 공부시키는 데 부족함이 없다는 뜻이다. 고려 때는 이규보가 제주부사 최자가 보내온 동정귤을 받고 이에 대한 감사의 표시로 시를 짓기도 했다. 이규보에 선물한 귤이 어떤 역할을 했는지는 모르지만 얼마 안 있어 최자가 서울로 돌아왔다는 이야기도 있다. 또 조선시대에는 3년마다 정기적으로 치르는 과거 외에 몇가지 별시가 있었는데, 그중 ‘황감제’는 제주에서 황감(귤)이 진상된 것을 기념해 치르는 과거였다. 귤이 진상돼 오면 종묘를 올린 후 신하, 성균관과 4학의 유생들에게 나눠준 뒤 시제를 내려 시험을 봤다고 한다. 귤 덕에 시험을 치르고 벼슬에 나아갈 기회를 한번 더 얻을 수 있었으니 그 당시 ‘수험생’에게 귤은 고마운 존재였겠다.
한편 이 귀한 귤을 임금님도 나눠 먹었음을 알 수 있다. 예나 지금이나 나눠야 맛이다. 그래서인지 겨울에 제주를 여행하다 보면 어딜 가나 귤이 놓여있고, 귤 하나를 먹으며 잠시 쉬어가는 여유를 찾는다. 이 계절 제주는 귤이 있어 넉넉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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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미항 |
◆이름까지 아름다운 위미항
위미항은 제주의 3대 미항이다. 그러고 보니 이름에 아름다울 미(美)가 들었다. 날씨가 좋은 날엔 한라산이 올려다 보이고 저녁이면 석양이 아름다워 낭만적인 항구다. 오래 전부터 배가 드나들어 제주의 검은돌로 쌓은 옛 방파제가 그대로 남아 있고, 현대식 방파제를 따라 등대에 다다르면 위미항의 입체적인 모습을 볼 수 있다. 이곳은 낚시 포인트로도 유명하다. 계절에 따라 벵에돔, 독가시치, 돌돔, 흰오징어, 다금바리 등이 잘 잡히고 평소에 모습을 보이지 않던 대부시리가 매년 11~1월에 출현하기도 한다.
위미항에서 보면 납작하게 바다에 붙어 있는 듯한 돌섬이 있다. 이름은 지귀도. 날씨에 따라 가깝게도 멀게도 보이는데, 그 형태 때문인지 유명한 제주 전설 ‘설문대할망’ 이야기에도 나온다. 설문대할망은 체구가 엄청나게 커서 백록담에 엉덩이를 걸치고 두 다리를 뻗으면 한쪽 다리는 제주시 앞 관탈섬에 닿았고 나머지 다리가 지귀도에 닿았다고 한다. 이 섬에는 일제강점기 때 문인 서정주가 다녀가기도 했다. 그는 지귀도에서 만난 여인을 소재로 ‘고을나의 딸’이란 시를 지었는데, 지금은 사람이 살지 않는 지귀도에 그때는 사람이 살며 보리를 재배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제 이곳은 섬낚시로 유명해 위미항에서 낚싯배를 타고 들어오는 낚시꾼들과 이곳을 지나는 해녀, 그리고 다이버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
지난 여름부터 위미항은 또 한번의 변화를 꾀하고 있다. ‘다기능 어항’으로 개발이 시작돼 조만간 지금과는 모습이 많이 달라질 것으로 예상된다. 아름다운 항구, 위미항의 마지막 모습을 기억하고자 한다면 이곳으로의 발걸음을 조금 서둘러야 할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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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연의집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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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민의 작업실 |
◆누구나의 첫사랑, 서연의집
‘우리 십년 뒤에 뭐하고 있을까?’ 영화 <건축학개론>의 한 장면이 벽면을 장식했다. 위미항 옆에 있는 이곳은 여주인공 ‘서연’의 집으로 등장했다. 영화는 400만 관객을 동원하며 첫사랑 신드롬을 불러 일으켰고 세트장은 카페가 됐다. 영화장면과 대사, 배우와 감독의 사인, 배우들의 프린팅 등 영화 관련 소품이 있고 메뉴로는 ‘어떡하지’, ‘서연’ 등 영화 대사가 써 있는 떡, 납뜩이머핀 등이 있다. 이 중에서도 영화를 가장 선명히 떠올리게 하는 건 장소 그 자체다. 1층은 세로로 길쭉한 전면의 창문들과 탁 트인 바다의 수평선이 단순하면서 현대적인 조화를 이루고 2층 테라스로 올라가면 굽은 해안도로와 위미항, 남해 바다, 멀리 보이는 지귀도까지 무심한 풍경 안에 아련함을 품고 있다.
영화의 감성에 푹 빠져봐도 좋고, 꼭 영화가 아니라도 제주 바다를 만끽하며 커피 한잔을 하고 싶다면 더 없이 좋은 선택이 되겠다. 카페 안은 구석구석 포토존이라 사람이 많을 때는 조금 부산할 수도 있다. 그럴 땐 바다로 눈을 돌리면 된다. 별채로는 ‘승민의 작업실’이 있는데, 이곳으로 커피를 가져와 창문 앞 바에 앉으면 여행의 부대낌도 가라앉을 듯하다.
겨울 바람이 매서운 제주이지만 그 풍성함으로 하루가 즐겁다. 계절마다 다른 매력을 보여주는 제주, 여행자에게 ‘제주’라는 섬은 언제나 그 다음을 기대하게 한다.
● 여행 정보
☞ 제주공항에서 위미항 가는 법
[승용차]
제주국제공항 - 용문로 - 월성삼거리에서 ‘시천, 종합경기장’ 방면으로 우회전 - 월성로 - 오라오거리에서 ‘시청, 종합경기장’ 방면으로 좌측 9시 방향 - 서광로 - 국립박물관사거리에서 ‘표현, 봉개동’ 방면으로 우회전 - 번영로 - 남조교차로에서 ‘남원, 제주돌문화공원’ 방면으로 우회전 - 남조로 - 수망사거리에서 ‘서귀포, 한남’ 방면으로 우회전 - 중산간동로 - 한남삼거리에서 ‘서귀포’ 방면으로 우회전 - 중산간동로 - 위미2에서 ‘서귀, 신례2’ 방면으로 우회전 - 일주동로 - 위미2리에서 ‘위미항’방면으로 좌회전 - 위미중앙로 - 위미중앙로 196번길
[대중교통]
제주국제공항 정류장 - 100번 승차 - 제주시외버스터미널 하차 - 730번 승차 - 위미우체국 정류장 하차
[주요 스팟 내비게이션 정보]
위미항: 검색어 ‘위미항’ / 제주특별자치도 서귀포시 남원읍 위미리
서연의집: 검색어 ‘서연의집’ / 제주특별자치도 서귀포시 남원읍 위미리 2975
< 여행지 주요 정보 >
귤 체험농장
서귀포 길가에 ‘귤 체험’ 현수막 다수 위치.
체험비: 1인당 3000 ~ 1만원 (체험 후 가져갈 수 있는 양에 따라 농장별 가격 상이)
가위, 장갑 무료 대여
귤밭에서 직접 따서 먹는 양은 제한 없음, 가져가는 비용은 1㎏ 당 2000원 내외
서연의집
064-764-7894 / http://www.menupan.com
영업시간: 오전 9시 ~ 오후 9시
커피: 3500 ~ 5500원 / 기타음료 5000 ~ 6500원 / 납뜩이머핀 5500원 / 떡 5000원
제주올레
위미항: 올레 5코스 남원포구 시작점에서 약 6.5㎞
http://www.jejuolle.org
< 주변 여행지 >
신영영화박물관: 동양 최초의 영화박물관이다. 1999년에 한국 원로배우 신영균 회장이 설립했고, 지난 여름 리뉴얼해 많은 스타들이 다녀갔다. 영화와 배우 관련 전시물과 입체 체험형 상영관이 있다. 본 박물관에 인접한 ‘남원큰엉’과 바다로 열린 기암절벽은 올레 5코스로 자연의 볼거리를 제공한다.
관람시간: 오전 10시 ~ 오후 6시 (30분 전 입장 마감)
관람료: 성인, 대학생 1만2000원 / 청소년 1만원 / 4~13세 8000원
http://moviestarjeju.kr / 064-805-0008 / 제주특별자치도 서귀포시 남원읍 남원리 2381번지
< 음식 >
슈와레이: 반려묘 ‘슈’와 ‘레이’의 이름을 딴 돈가스집이다. 많은 손님을 받기보다 즐기듯 식당을 운영하는 주인의 철학이 독특하다. 매주 월, 화 휴무.
등심커틀릿 1만2000원 / 치즈커틀릿 1만3000원 / 포카인드커틀릿 1만4000원
070-7762-8285 / 제주특별자치도 서귀포시 남원읍 위미리 161-4
무주향: 자연의 먹거리로 정갈하게 차려낸 건강밥상을 선보인다. 해초와 다양한 채소로 만든 해초비빔밥이 이 집의 대표 메뉴다. 사전 예약하는 것이 좋다.
해초비빔밥 9000원 / 보말죽, 보말국 각 9000원 / 자수성보리수제비 7000원
예약문의: 064-764-9088 / 제주특별자치도 서귀포시 남원읍 위미리 3032-2
< 숙소 >
게스트하우스 도치: 위미항에 위치한 게스트하우스로 아트디렉터와 작가 부부가 운영한다. 본채, 밖거리, 고팡 등을 짜임새 있고 예쁘게 꾸며 놓았고, 조식을 예약하면 오차즈케를 서비스 한다. 게스트하우스에 있는 17그루의 귤나무로부터 수확한 귤과 위미산 귤을 주문할 수도 있다.
커플방: 5만원 / 도미토리: 1인 2만원 / 독채: 12만원(6인 기준, 4인 이하 예약시 10만원)
오차즈케(조식): 3000원
귤 주문(배송비 포함): 위미귤 10㎏ 2만5000원 / 게스트하우스 귤 10㎏ 3만5000원
예약문의: 010-4465-0918 / http://phoer.blog.me / 제주특별자치도 서귀포시 남원읍 위미리 2026-1
☞ 본 기사는 <머니위크>(www.moneyweek.co.kr) 제362호에 실린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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