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주가 한없이 순해지고 있다. “물이야? 소주야?”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알코올 도수가 뚝뚝 떨어지고 있다. 25도가 보편적이던 소주는 지난 2006년 20도 벽을 허문 뒤 최근 16도까지 내려갔다. 18년 동안 무려 9도나 낮아진 셈. 소주를 마셨을 때 터져 나오던 특유의 독한 감탄사, ‘캬∼’ 소리도 주변에서 사라진지 오래다.


그런 소주가 더 순해진다. 저도주 문화가 확산되면서 이름하여 ‘14도 소주’ 시대가 열릴 전망이다. 그 주인공은 롯데주류. 롯데주류는 기존 소주보다 3도 이상 낮춘 ‘처음처럼 순하리’(가칭)를 3월초 공식 출시할 예정이다. 소주의 저도주 경쟁은 그동안 치열하게 이어져 왔지만 14도짜리가 나온 것은 이번이 처음. 주류업계의 눈이 롯데주류로 쏠리고 있다.

◆‘14도’ 새내기, 소주 맞아?

‘처음처럼 순하리’는 유자 과즙과 유자향이 첨가된 알코올 도수 14도의 술이다. 롯데주류는 지난 2013년 10월부터 약 1년간 약 4400명의 소비자를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를 통해 ‘소비자들이 소주의 향과 맛에 대해 느끼는 만족도가 낮다’는 점과 ‘향과 맛이 우수한 과실주에 대한 가격 만족도가 떨어진다’는 점에 착안해 상대적으로 저렴한 소주의 가격으로 과실주의 풍미를 즐길 수 있는 ‘처음처럼 순하리’ 유자맛을 출시했다.

 

/사진=머니투데이 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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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처럼 순하리’ 유자맛은 최근 주류시장의 저도화 추세에 발맞춰 기존 소주류 제품보다 알코올 도수를 낮춰 제조해 소주 특유의 알코올 향과 맛을 줄인 게 특징이다. 다만 일반 소주라기보다는 '소주 베이스 칵테일' 제품이라는 게 롯데주류 측의 설명이다. 과즙 등 소주에 첨가물을 넣은 ‘리큐르’ 제품이라는 얘기다.

롯데주류 관계자는 “순하리 처음처럼은 대표적인 서민 주류인 소주를 베이스로 한 칵테일”이라며 “즐겁고 가벼운 음주 트렌드를 반영해 젊은 층을 대상으로 마케팅에 주력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이번 신제품 출시로 ‘처음처럼’은 기존의 ‘진한 처음처럼’(20도), ‘부드러운 처음처럼’(17.5도), ‘순한 처음처럼’(16.8도)의 소주류 제품 3종에 ‘순하리 처음처럼’ 유자맛(14도)까지 더해 총 4종의 통합 브랜드를 갖추게 됐다.


더 순해진 소주, 더 독해진 '전쟁'

◆25도에서 17도, 낮추기 경쟁

소주가 순해지기 시작한 것은 지난 1990년대 말부터다. 소주시장의 절대강자 하이트진로는 지난 1998년 ‘소주는 25도’라는 공식을 깨고 23도의 참이슬을 출시하면서 순한 소주 시대를 열었다. 이후 2001년 22도, 2004년 21도로 도수를 점점 낮췄다.

처음처럼은 태생부터 순한 소주 이름표를 달고 나왔다. 지난 2006년 알코올 도수를 20도로 확 낮춰 처음 출시됐다. 참이슬 역시 21도까지 알코올 도수를 낮춘 상황이었지만, ‘소주=20도대’라는 공식 앞에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처지에 빠지게 됐다.


이 경쟁에 불을 지핀 주인공은 예상 밖이었다. 바로 부산·경남지역을 주 무대로 활동 중인 소주업체 무학이다. 무학은 지난 2006년 알코올 도수 16.9도의 ‘좋은데이’를 파격적으로 내놓으며 출시 두달 만에 169만병을 판매하는 쾌거를 달성했다.

좋은데이가 선풍적인 인기를 끌자 업계의 저도수 경쟁은 더욱 거세졌다. 20도 벽 앞에서 눈치만 보던 하이트진로와 롯데주류도 도수 낮추기 열풍에 뛰어들었다. 지난 2006년 19.8도의 참이슬을 내놓은 하이트진로는 지난 2007년 19.5도, 2012년 19도, 지난해 2월 18.5도를 거쳐 17도대까지 내려왔다.


이에 질세라 롯데주류도 지난해 2월 ‘처음처럼’ 도수를 2년 만에 19도에서 18도로 낮춘 뒤 다시 10개월 만에 0.5도를 더 낮춰 17.5도까지 내렸다.


/사진=머니투데이 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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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출+원가절감’ 두 토끼 사냥

주류업계가 이처럼 공격적으로 저도수 전쟁을 벌이는 이유는 소비자들의 니즈 때문이다. 가벼운 음주문화가 자리 잡고 여성 음주자가 증가하면서 순한 소주를 찾는 이들이 늘고 있어서다.

주류업계 한 관계자는 “몇 년 전부터 폭음보다는 그 분위기를 즐기기 위해 술을 찾는 소비자가 늘어남에 따라 알코올 도수를 낮추고 목 넘김을 부드럽게 만드는 게 업계에서 중요해졌다”며 “수요가 많고 트렌드가 바뀌면서 저도수 열풍에 동참할 수밖에 없고 경쟁적으로 도수를 낮추는 현상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소주업체 입장에서는 알코올 도수를 줄이면 매출과 원가절감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을 수 있다. 우선 소비자들의 음주량이 증가한다. 저도수 소주를 마시면 기존 소주보다 덜 취하기 때문에 그만큼 판매량이 늘어나는 효과를 볼 수 있다.


실제 지난 2006년 20도 소주가 등장한 뒤 소주 출고량은 전년보다 6.7% 증가했다. 소주 도수가 19도로 낮아진 지난 2012년에도 5.1%가 늘어나며 성장세를 이어갔다. 지난해 역시 18도에서 17도로 두차례 낮아졌기 때문에 업계에서는 출고량 증가폭이 이전을 훨씬 웃돌 것으로 내다봤다.

원가를 줄일 수 있는 점도 매력적이다. 소주는 주정을 물에 타 희석하는 방식으로 제조되는데 알코올 도수 1도를 낮출 때마다 원가가 약 6원가량 절감된다. 게다가 17도 미만이면 TV 광고도 가능해진다.

14도 처음처럼 출시로 앞으로 저도주 경쟁은 주종을 막론하고 더 치열해질 전망이다. 주류업계 한 관계자는 “저도주 열풍은 계속 되겠지만 소주의 경우 16도를 마지노선으로 본다”며 “오히려 처음처럼 순하리와 같이 소주에 다양한 음료를 섞어 즐기는 믹스주 등이 계속해서 개발돼 소비자들의 입을 자극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 본 기사는 <머니위크>(www.moneyweek.co.kr) 제373호에 실린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