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커스] 중소기업의 '텃밭 트라우마'
김진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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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빼앗긴 영토에도 봄은 오는가’. 중소기업 고유의 영역이 흔들리고 있다. 정부의 동반성장 정책에 힘입어 최소한의 ‘울타리’였던 중소기업 적합업종 선정에 대해 회의적인 시각이 거세다. 공공 조달시장에선 ‘위장 중소기업’을 앞세운 대기업들이 중소기업의 텃밭을 위협하고 나섰다.
최근 몇 년 사이 가뜩이나 대기업의 ‘갑 횡포’로 시달렸던 중소기업들이 이제 ‘영토 트라우마’까지 겪고 있다.
◆ '중기 울타리' 적합업종, 회의적 시각 팽배
지난 2월24일 동반성장위원회는 서울 팔레스호텔에서 제33차 회의를 열고 ‘2015 중소기업 적합업종’을 발표했다. 문구와 담배도매업, 렌터카, 떡국·떡복이떡, 우드칩 등 5개 품목이 신규로 적합업종에 선정됐다. 지난해 적합업종 지정기한이 끝나 재지정을 신청했던 77개 업종 가운데 두부와 어묵, 원두커피 등 49개 업종이 재지정돼 총 54개 업종이 ‘고유 영역’을 가지게 됐다.
그런데 선정 직후부터 수혜자인 중소기업들의 반응이 썩 좋지 않다. 특히 올해 신규로 적합업종에 선정된 문구업계는 동반성장위가 대기업의 요구만을 수용해 편파적인 기준을 세웠다며 집단 반발 움직임마저 보이고 있다.
문제가 된 부분은 문구소매업종에 대해 동반위가 구체적 기준없이 ▲매장규모 축소 ▲신학기 할인행사 자제 ▲묶음단위 판매 등 대형마트에 자율적인 사업축소를 권고한 대목.
전국문구점살리기연합회 측은 "동반위의 최종 권고안에는 우리의 의견이 무시된 채 대기업 요구대로 ‘자율적으로 시행한다’는 문구가 채택됐다"며 "애초에 동반상생 의지가 없던 대형마트에게 '생색내기'식 안을 만들어준 동반위의 일방적 발표는 즉각 철회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대기업들이 손을 떼면서 오히려 업종 자체가 침체되거나 외국기업에만 좋은 일을 시킨다는 비판의 목소리도 커졌다.
막걸리와 LED 업계는 중기 적합업종에 지정된 후 대기업들이 철수하면서 오히려 시장이 전반적으로 위축됐다. 소모성자재구매대행(MRO) 시장 역시 대기업의 공백을 외국 대기업들이 차지해 중소기업을 포함한 국내기업의 시장점유율이 하락하는 추세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중소기업 적합업종 선정제도의 실효성에 의문을 제기하는 국내외 비판여론도 줄기차다.
전국경제인연합회 측은 “중소기업 정책의 취지는 중소기업 보호와 육성 방향으로 가야하는데 적합업종 지정은 중소기업에 대한 온실을 만드는 효과를 내고 있다”며 “온실 속에서라도 성장을 해서 자생력을 길러 온실 밖으로 나오도록 해야 하는데 적합업종 지정은 중소기업이 계속 온실에 머무르도록 하는 방향으로 가고 있다”고 꼬집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도 중소기업 적합업종의 점진적 축소를 권고하고 나섰다. 최근 발표된 ‘구조개혁평가보고서’(Going for Growth 2015)에서 OECD는 “한국이 중소기업 적합업종 지정으로 대기업 진입규제를 만들었다”며 “진입장벽을 점진적으로 축소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앞서 OECD는 지난해 6월 발표한 ‘한국경제보고서’에서도 대기업과 중소기업 간 생산성 격차가 계속 증가하는 가운데 중소기업에 대한 정부의 관대한 지원은 문제라고 지적한 바 있다.
◆ 대기업 '위장 전술', 중소기업 두 번 죽여
정부가 쳐준 ‘울타리’에서 잡음이 점차 커지고 있다는 점도 그렇지만 현재 중소기업의 활동영역을 위협하는 또 다른 요소는 바로 대기업들의 우회적인 ‘침략’이다.
중소기업청은 최근 중소기업 고유영역으로 중견기업과 대기업의 입찰 참여가 제한된 공공조달시장에서 중소기업으로 위장해 사업을 따낸 26개 기업을 적발했다.
이들 기업에는 삼표와 유진기업, 케이씨씨홀딩스, 한글과컴퓨터 등 지명도가 있는 19개 대·중견기업이 대거 포함됐다. 이들이 공공입찰 프로젝트에서 중소기업 몫을 가로챈 금액은 지난 2013년 474억원, 2014년 540억원 등 총 1014억원에 이른다.
케이씨씨홀딩스는 소프트웨어산업진흥법에 따라 공공기관에서 발주하는 20억원 미만의 사업에 입찰 참여가 금지되자 위장 중소기업인 시스원을 통해 입찰에 참여, 최근 2년간 476억원의 사업 물량을 따냈다.
레미콘 생산업체인 삼표도 3년 평균 매출액이 6393억원에 해당하는 대기업으로 공공조달시장에 참여가 제한됐지만 삼표의 최대주주 및 친족관계에 있는 특수관계인이 실질적으로 지배하도록 하는 지분관계를 형성한 후 위장 중소기업 5개를 설립, 최근 2년간 252억원에 해당하는 중소기업의 물량을 가로챘다.
이밖에 유진기업이 89억원, 다우데이타 56억원, 고려노벨화약 50억원, 한글과컴퓨터 7억원 등으로 각각 위장 중소기업을 통해 공공 조달시장 물량을 따냈다.
중소기업청은 이번에 적발된 위장 중소기업을 공공 조달시장에서 즉각 퇴출시키는 한편 중소기업 확인서를 허위나 거짓으로 발급받은 기업들은 검찰에 고발할 방침이다.
중소기업 관계자는 "적합업종 선정을 놓고도 정부와 중소기업간 이견이 많아지고 있는 상황에서 대기업까지 꼼수로 우리 몫을 가로채고 있는 현실이 을씨년스럽다"면서 "9988(전체기업의 99%, 전체 근로자의 88%가 중소기업)로 대변되는 중소기업의 위상에 맞는 행정을 펼쳐주기를 정부에 바랄 뿐"이라고 토로했다.
☞ 본 기사는 <머니위크>(www.moneyweek.co.kr) 제373호에 실린 기사입니다.
최근 몇 년 사이 가뜩이나 대기업의 ‘갑 횡포’로 시달렸던 중소기업들이 이제 ‘영토 트라우마’까지 겪고 있다.
◆ '중기 울타리' 적합업종, 회의적 시각 팽배
지난 2월24일 동반성장위원회는 서울 팔레스호텔에서 제33차 회의를 열고 ‘2015 중소기업 적합업종’을 발표했다. 문구와 담배도매업, 렌터카, 떡국·떡복이떡, 우드칩 등 5개 품목이 신규로 적합업종에 선정됐다. 지난해 적합업종 지정기한이 끝나 재지정을 신청했던 77개 업종 가운데 두부와 어묵, 원두커피 등 49개 업종이 재지정돼 총 54개 업종이 ‘고유 영역’을 가지게 됐다.
그런데 선정 직후부터 수혜자인 중소기업들의 반응이 썩 좋지 않다. 특히 올해 신규로 적합업종에 선정된 문구업계는 동반성장위가 대기업의 요구만을 수용해 편파적인 기준을 세웠다며 집단 반발 움직임마저 보이고 있다.
문제가 된 부분은 문구소매업종에 대해 동반위가 구체적 기준없이 ▲매장규모 축소 ▲신학기 할인행사 자제 ▲묶음단위 판매 등 대형마트에 자율적인 사업축소를 권고한 대목.
전국문구점살리기연합회 측은 "동반위의 최종 권고안에는 우리의 의견이 무시된 채 대기업 요구대로 ‘자율적으로 시행한다’는 문구가 채택됐다"며 "애초에 동반상생 의지가 없던 대형마트에게 '생색내기'식 안을 만들어준 동반위의 일방적 발표는 즉각 철회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대기업들이 손을 떼면서 오히려 업종 자체가 침체되거나 외국기업에만 좋은 일을 시킨다는 비판의 목소리도 커졌다.
막걸리와 LED 업계는 중기 적합업종에 지정된 후 대기업들이 철수하면서 오히려 시장이 전반적으로 위축됐다. 소모성자재구매대행(MRO) 시장 역시 대기업의 공백을 외국 대기업들이 차지해 중소기업을 포함한 국내기업의 시장점유율이 하락하는 추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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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반성장위원회는 지난 2월 24일 서울 반포동 팔래스호텔에서 제33차 동반성장위원회를 열고 중소기업 적합업종 51개 품목을 선정했다. /사진=머니투데이 DB |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중소기업 적합업종 선정제도의 실효성에 의문을 제기하는 국내외 비판여론도 줄기차다.
전국경제인연합회 측은 “중소기업 정책의 취지는 중소기업 보호와 육성 방향으로 가야하는데 적합업종 지정은 중소기업에 대한 온실을 만드는 효과를 내고 있다”며 “온실 속에서라도 성장을 해서 자생력을 길러 온실 밖으로 나오도록 해야 하는데 적합업종 지정은 중소기업이 계속 온실에 머무르도록 하는 방향으로 가고 있다”고 꼬집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도 중소기업 적합업종의 점진적 축소를 권고하고 나섰다. 최근 발표된 ‘구조개혁평가보고서’(Going for Growth 2015)에서 OECD는 “한국이 중소기업 적합업종 지정으로 대기업 진입규제를 만들었다”며 “진입장벽을 점진적으로 축소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앞서 OECD는 지난해 6월 발표한 ‘한국경제보고서’에서도 대기업과 중소기업 간 생산성 격차가 계속 증가하는 가운데 중소기업에 대한 정부의 관대한 지원은 문제라고 지적한 바 있다.
◆ 대기업 '위장 전술', 중소기업 두 번 죽여
정부가 쳐준 ‘울타리’에서 잡음이 점차 커지고 있다는 점도 그렇지만 현재 중소기업의 활동영역을 위협하는 또 다른 요소는 바로 대기업들의 우회적인 ‘침략’이다.
중소기업청은 최근 중소기업 고유영역으로 중견기업과 대기업의 입찰 참여가 제한된 공공조달시장에서 중소기업으로 위장해 사업을 따낸 26개 기업을 적발했다.
이들 기업에는 삼표와 유진기업, 케이씨씨홀딩스, 한글과컴퓨터 등 지명도가 있는 19개 대·중견기업이 대거 포함됐다. 이들이 공공입찰 프로젝트에서 중소기업 몫을 가로챈 금액은 지난 2013년 474억원, 2014년 540억원 등 총 1014억원에 이른다.
케이씨씨홀딩스는 소프트웨어산업진흥법에 따라 공공기관에서 발주하는 20억원 미만의 사업에 입찰 참여가 금지되자 위장 중소기업인 시스원을 통해 입찰에 참여, 최근 2년간 476억원의 사업 물량을 따냈다.
레미콘 생산업체인 삼표도 3년 평균 매출액이 6393억원에 해당하는 대기업으로 공공조달시장에 참여가 제한됐지만 삼표의 최대주주 및 친족관계에 있는 특수관계인이 실질적으로 지배하도록 하는 지분관계를 형성한 후 위장 중소기업 5개를 설립, 최근 2년간 252억원에 해당하는 중소기업의 물량을 가로챘다.
이밖에 유진기업이 89억원, 다우데이타 56억원, 고려노벨화약 50억원, 한글과컴퓨터 7억원 등으로 각각 위장 중소기업을 통해 공공 조달시장 물량을 따냈다.
중소기업청은 이번에 적발된 위장 중소기업을 공공 조달시장에서 즉각 퇴출시키는 한편 중소기업 확인서를 허위나 거짓으로 발급받은 기업들은 검찰에 고발할 방침이다.
중소기업 관계자는 "적합업종 선정을 놓고도 정부와 중소기업간 이견이 많아지고 있는 상황에서 대기업까지 꼼수로 우리 몫을 가로채고 있는 현실이 을씨년스럽다"면서 "9988(전체기업의 99%, 전체 근로자의 88%가 중소기업)로 대변되는 중소기업의 위상에 맞는 행정을 펼쳐주기를 정부에 바랄 뿐"이라고 토로했다.
☞ 용어설명
◇중소기업간 경쟁제품 = 중소기업청장이 중소기업의 판로 지원을 위해 품목을 지정하고 해당 품목에 한해 중앙부처와 지방자치단체, 공기업 등 공공기관과 산하기관이 진행하는 입찰에 대기업과 중견기업이 참여하지 못 하도록 막는 제도다. 현재 207개 제품이 지정됐고 연간 구매액은 약 20조원 규모다.
◇중소기업 적합업종 = 대기업의 무분별한 사업확장으로부터 중소기업의 영역을 보호한다는 취지로 지난 2011년 9월 도입됐다. 대통령직속기구인 동반성장위원회가 제조업 분야에서 어떤 제품을 중소기업 적합업종으로 선정하게 되면 동반위의 권고에 따라 이후 3년간 해당 업종에는 대기업의 진출이 금지되거나 제한된다.
◇중소기업간 경쟁제품 = 중소기업청장이 중소기업의 판로 지원을 위해 품목을 지정하고 해당 품목에 한해 중앙부처와 지방자치단체, 공기업 등 공공기관과 산하기관이 진행하는 입찰에 대기업과 중견기업이 참여하지 못 하도록 막는 제도다. 현재 207개 제품이 지정됐고 연간 구매액은 약 20조원 규모다.
◇중소기업 적합업종 = 대기업의 무분별한 사업확장으로부터 중소기업의 영역을 보호한다는 취지로 지난 2011년 9월 도입됐다. 대통령직속기구인 동반성장위원회가 제조업 분야에서 어떤 제품을 중소기업 적합업종으로 선정하게 되면 동반위의 권고에 따라 이후 3년간 해당 업종에는 대기업의 진출이 금지되거나 제한된다.
☞ 본 기사는 <머니위크>(www.moneyweek.co.kr) 제373호에 실린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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