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 리포트] 부러운 미국의 '실업률 논쟁'
서명훈 특파원의 New York Report
뉴욕(미국) = 서명훈 머니투데이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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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업률 5.5%, 6년9개월 만에 최저’
최근 미국 노동부가 내놓은 올 2월 실업률이다. 지난 1월 5.7%보다 0.2%포인트 하락했고 전문가들의 예상치(5.6%)보다 더 좋게 나타났다. 지난 2008년 5월 이후 6년9개월 만에 최저 수준이다.
‘청년실업자 100만명’과 ‘오포세대’(연애·결혼·출산·내집마련·인간관계 등 5가지를 포기한 세대)로 대변되는 한국 상황과 비교하면 그저 부러운 숫자다.
지난 2월 신규 취업자(비농업부문)는 29만5000명이 늘었고 시간당 임금도 지난해 대비 2% 상승했다. 이에 따라 신규 취업자는 12개월 연속 20만명을 웃돌았고 이는 지난 1994년 이후 최장 기간이다.
◇ 통계의 함정, 고용상황 정말 좋은가
하지만 미국 내에서도 고용 통계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가 크다. 현실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한 반쪽짜리 통계라는 이유에서다.
우리 정부가 내놓은 청년실업자는 39만5000명으로 공식 실업률은 9.2%지만 아르바이트생이나 졸업유예자 등 실질적인 실업자를 포함하면 실업률이 21.8%에 달하는 것과 같은 이치다.
미국 역시 노동시장에서 배제되거나 구직을 단념한 사람 등 9300만명은 실업률 통계에 잡히지 않는다. 통계에 포함된 실업자 900만명을 고려하면 일을 전혀 하지 않은 사람은 총 1억200만명으로 늘어나게 된다. 결국 실업률이 5.5%라는 것은 실질 실업률이 35%에 이른다는 의미다.
통계에 잡히지 않는 실업자 숫자는 금융위기 직후 7920만명보다 더 늘어나 역대 최고 수준이다. 노동시장에 참여하지만 통계에 잡히지 않는 성인의 비율은 글로벌 금융위기 직후 66%에서 62.8%로 낮아지는 데 그쳤다.
이 모든 통계들을 조합하면 전체 미국 성인 8명 중 3명은 전혀 일을 하지 않는다는 의미다. 마켓워치의 렉서 넛팅 칼럼니스트는 실제 일하지 않는 인구는 1억200만명이 아니라 1억7200만명에 이른다고 주장한다. 결국 전체 인구 3억2000만명 가운데 1억4800만명(46%) 만이 일하고 있는 셈이다.
그는 “일하지 않는 사람이 너무 많다고 두려워할 필요는 없다”며 “미국 역사상 일하는 인구 비율이 50%를 넘었던 적은 지난 2007년 1월 51%를 제외하면 거의 없다”고 설명했다.
실제로 1950년대와 1960년대는 일하는 인구 비율이 40%를 밑돌았다. 1962년에는 36%에 불과하기도 했다.
수백만명의 사람이 노동시장에서 제외돼 있다는 것은 놀라운 사실이 아니다. 4200만명은 이미 은퇴를 했고 수백만명은 곧 은퇴할 예정이다. 4600만명은 이미 65세가 넘었고 55~64세 인구는 4000만명에 이른다.
16~24세 인구 중 상당수는 학교를 다니고 있고 1900만명은 대학에, 1700만명은 고등학교를 다니고 있다. 65세 이하 가운데 1400만명은 장애 등으로 일을 할 수가 없다. 또 다른 수백만명의 남녀는 자녀를 돌보거나 부모님을 돌봐야 하기 때문에 일을 할 수가 없다.
◇ 고용지표, 금리인상 명분 되나
고용 통계의 이 같은 맹점 때문에 실업률을 근거로 금리인상에 나서서는 안된다는 지적도 나온다. 재닛 옐런 연준 의장은 과거 1997년 앨런 그린스펀 전 의장의 결정을 참고해야 한다는 설명이다.
전문가들은 연준이 오래 전부터 자연실업률, 이른바 물가상승률이 더 높거나 낮아지지 않는 수준의 실업률(non-accelerating inflation rate of unemployment, NAIRU)을 전제로 금리를 조정해 왔다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연준은 이 범위를 5.2~5.5%로 제시한다. 2월 실업률은 이 조건에 딱 맞아 떨어진다. 가뜩이나 금리인상에 대한 압박이 심한 상황이어서 이번 실업률은 또 다른 금리인상 압력으로 작용할 가능성이 높다.
문제는 물가상승률이 높지 않다는 점이다. 또한 물가상승률이 갑자기 올라갈 것 같은 기미도 보이지 않는다. 이런 상황에서는 전통적인 이론이 제대로 맞아 떨어지지 않을 가능성이 높아진다.
일반적으로 실업률이 낮은 상황에서 기업들은 임금인상 압박에 시달린다. 기업이 숙련된 기술자의 임금을 올리면 다른 직원들의 임금도 자연스럽게 올라간다. 결국 기업은 그들이 판매하는 물건의 가격을 올리게 된다. 이른바 인플레이션이 발생한다. 하지만 이는 지난 1979년에 만들어진 이론이어서 지금 상황과 다를 수 있다는 지적이다. 임금이 오르더라도 인플레이션이 발생하지 않을 수 있다는 얘기다.
미국 노동부의 시간당 임금 통계를 보면 민간의 시간당 평균임금은 지난 1년간 약 2% 상승했다. 감독자가 아닌 근로자 80%의 시간당 평균 임금은 지난해 1.6%로 전년도 2.5%보다 낮아졌다.
좀더 정교한 고용비용지수(ECI)도 비슷하다. 지난해 2.3%로 전년도 2%보다 상승했다. 하지만 재닛 옐런 연준 의장은 3~4%까지는 물가상승을 야기하지 않는다는 입장을 밝힌 바 있다.
연준은 지난 1997년에도 비슷한 상황에 직면한 적이 있다. 이때 실업률이 1970년대 중반 이후 처음으로 5% 아래로 떨어졌다. 연준은 금리인상 압력에 직면했지만 당시 연준 의장이던 앨런 그린스펀의 대답은 ‘노’였다. 자연실업률을 걱정하지 않는다는 그린스펀의 말
은 맞았다. 물가상승률은 2년간 더 3% 아래에 머물렀고 400만명이 일자리를 얻었다.
그린스펀의 사례는 최근 한국에서 진행되고 있는 금리 인하와 최저임금 인상 논쟁에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양쪽 주장 모두 저명한 경제학자의 이론을 기초로 하고 있기 때문에 타당한 구석이 있다. 누구의 말이 더 맞는지를 따지기보다 당장 오포세대에게 희망을 줄 수 있는 데 초점을 맞춰야 하지 않을까.
☞ 본 기사는 <머니위크>(www.moneyweek.co.kr) 제376호에 실린 기사입니다.
최근 미국 노동부가 내놓은 올 2월 실업률이다. 지난 1월 5.7%보다 0.2%포인트 하락했고 전문가들의 예상치(5.6%)보다 더 좋게 나타났다. 지난 2008년 5월 이후 6년9개월 만에 최저 수준이다.
‘청년실업자 100만명’과 ‘오포세대’(연애·결혼·출산·내집마련·인간관계 등 5가지를 포기한 세대)로 대변되는 한국 상황과 비교하면 그저 부러운 숫자다.
지난 2월 신규 취업자(비농업부문)는 29만5000명이 늘었고 시간당 임금도 지난해 대비 2% 상승했다. 이에 따라 신규 취업자는 12개월 연속 20만명을 웃돌았고 이는 지난 1994년 이후 최장 기간이다.
◇ 통계의 함정, 고용상황 정말 좋은가
하지만 미국 내에서도 고용 통계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가 크다. 현실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한 반쪽짜리 통계라는 이유에서다.
우리 정부가 내놓은 청년실업자는 39만5000명으로 공식 실업률은 9.2%지만 아르바이트생이나 졸업유예자 등 실질적인 실업자를 포함하면 실업률이 21.8%에 달하는 것과 같은 이치다.
미국 역시 노동시장에서 배제되거나 구직을 단념한 사람 등 9300만명은 실업률 통계에 잡히지 않는다. 통계에 포함된 실업자 900만명을 고려하면 일을 전혀 하지 않은 사람은 총 1억200만명으로 늘어나게 된다. 결국 실업률이 5.5%라는 것은 실질 실업률이 35%에 이른다는 의미다.
통계에 잡히지 않는 실업자 숫자는 금융위기 직후 7920만명보다 더 늘어나 역대 최고 수준이다. 노동시장에 참여하지만 통계에 잡히지 않는 성인의 비율은 글로벌 금융위기 직후 66%에서 62.8%로 낮아지는 데 그쳤다.
이 모든 통계들을 조합하면 전체 미국 성인 8명 중 3명은 전혀 일을 하지 않는다는 의미다. 마켓워치의 렉서 넛팅 칼럼니스트는 실제 일하지 않는 인구는 1억200만명이 아니라 1억7200만명에 이른다고 주장한다. 결국 전체 인구 3억2000만명 가운데 1억4800만명(46%) 만이 일하고 있는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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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일하지 않는 사람이 너무 많다고 두려워할 필요는 없다”며 “미국 역사상 일하는 인구 비율이 50%를 넘었던 적은 지난 2007년 1월 51%를 제외하면 거의 없다”고 설명했다.
실제로 1950년대와 1960년대는 일하는 인구 비율이 40%를 밑돌았다. 1962년에는 36%에 불과하기도 했다.
수백만명의 사람이 노동시장에서 제외돼 있다는 것은 놀라운 사실이 아니다. 4200만명은 이미 은퇴를 했고 수백만명은 곧 은퇴할 예정이다. 4600만명은 이미 65세가 넘었고 55~64세 인구는 4000만명에 이른다.
16~24세 인구 중 상당수는 학교를 다니고 있고 1900만명은 대학에, 1700만명은 고등학교를 다니고 있다. 65세 이하 가운데 1400만명은 장애 등으로 일을 할 수가 없다. 또 다른 수백만명의 남녀는 자녀를 돌보거나 부모님을 돌봐야 하기 때문에 일을 할 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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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용 통계의 이 같은 맹점 때문에 실업률을 근거로 금리인상에 나서서는 안된다는 지적도 나온다. 재닛 옐런 연준 의장은 과거 1997년 앨런 그린스펀 전 의장의 결정을 참고해야 한다는 설명이다.
전문가들은 연준이 오래 전부터 자연실업률, 이른바 물가상승률이 더 높거나 낮아지지 않는 수준의 실업률(non-accelerating inflation rate of unemployment, NAIRU)을 전제로 금리를 조정해 왔다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연준은 이 범위를 5.2~5.5%로 제시한다. 2월 실업률은 이 조건에 딱 맞아 떨어진다. 가뜩이나 금리인상에 대한 압박이 심한 상황이어서 이번 실업률은 또 다른 금리인상 압력으로 작용할 가능성이 높다.
문제는 물가상승률이 높지 않다는 점이다. 또한 물가상승률이 갑자기 올라갈 것 같은 기미도 보이지 않는다. 이런 상황에서는 전통적인 이론이 제대로 맞아 떨어지지 않을 가능성이 높아진다.
일반적으로 실업률이 낮은 상황에서 기업들은 임금인상 압박에 시달린다. 기업이 숙련된 기술자의 임금을 올리면 다른 직원들의 임금도 자연스럽게 올라간다. 결국 기업은 그들이 판매하는 물건의 가격을 올리게 된다. 이른바 인플레이션이 발생한다. 하지만 이는 지난 1979년에 만들어진 이론이어서 지금 상황과 다를 수 있다는 지적이다. 임금이 오르더라도 인플레이션이 발생하지 않을 수 있다는 얘기다.
미국 노동부의 시간당 임금 통계를 보면 민간의 시간당 평균임금은 지난 1년간 약 2% 상승했다. 감독자가 아닌 근로자 80%의 시간당 평균 임금은 지난해 1.6%로 전년도 2.5%보다 낮아졌다.
좀더 정교한 고용비용지수(ECI)도 비슷하다. 지난해 2.3%로 전년도 2%보다 상승했다. 하지만 재닛 옐런 연준 의장은 3~4%까지는 물가상승을 야기하지 않는다는 입장을 밝힌 바 있다.
연준은 지난 1997년에도 비슷한 상황에 직면한 적이 있다. 이때 실업률이 1970년대 중반 이후 처음으로 5% 아래로 떨어졌다. 연준은 금리인상 압력에 직면했지만 당시 연준 의장이던 앨런 그린스펀의 대답은 ‘노’였다. 자연실업률을 걱정하지 않는다는 그린스펀의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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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린스펀의 사례는 최근 한국에서 진행되고 있는 금리 인하와 최저임금 인상 논쟁에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양쪽 주장 모두 저명한 경제학자의 이론을 기초로 하고 있기 때문에 타당한 구석이 있다. 누구의 말이 더 맞는지를 따지기보다 당장 오포세대에게 희망을 줄 수 있는 데 초점을 맞춰야 하지 않을까.
☞ 본 기사는 <머니위크>(www.moneyweek.co.kr) 제376호에 실린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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