쉐보레 스파크(왼쪽)와 기아자동차 모닝 /사진= 한국지엠, 기아자동차 제공
쉐보레 스파크(왼쪽)와 기아자동차 모닝 /사진= 한국지엠, 기아자동차 제공

#사회 초년생인 A씨는 최근 카풀을 하던 회사 동료가 이사하며 차량을 구입해야 하는 상황이다. 자신의 급여수준과 다양한 혜택을 고려해 경차를 살펴보던 그는 ‘경차 사면 후회할 것’이라는 주변의 만류에 소형 SUV로 눈을 돌렸다. 하지만 구매비용은 그렇다 치더라도 경차를 샀을 때 다양한 혜택이 눈에 밟혀 고민을 거듭하고 있다.

대한민국은 자동차 시장의 규모에 비해 경차가 잘 팔리지 않는 편이다. 한국자동차산업협회 통계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국내 판매된 경차는 총 19만3971대, 지난해 전체 자동차 판매량 146만9893대의 13% 수준이다.

이는 국토 면적, 인구밀도 등이 국내 상황과 비슷한 유럽, 일본과 비교하면 훨씬 적은 수치다. 지난해 일본의 경우 경차 판매량이 전체 자동차 판매량의 40%를 돌파했다. 유럽의 경우도 경차비율이 50% 수준인 것으로 전해진다. 한국과 비교하면 3배~4배 가까운 점유율 차이다.

◆경제성보다는 과시적 소비 만연

일본과 유럽 등지에서 경차비중이 높은 가장 큰 이유는 단연 ‘경제성’이다. 전문가들은 특히 일본의 경우 지난해 4월 소비세 인상을 계기로 절약 지향의 소비가 한층 두드러졌다고 평가한다.

특히 ‘친환경’을 강조하는 세계적인 정책 흐름상 전기차 등이 가격경쟁력을 찾기까지 경차의 인기는 두드러질 수밖에 없다는게 세계 자동차 시장의 중론이다. 하지만 이는 한국에서는 어긋나고 있다.

국내에서 경차사용자에게 주어지는 혜택이 적기 때문도 아니다. 경차는 신차 가격이 1000만원 내외로 초기 구입비 부담이 상대적으로 적을 뿐더러 차량 구매 시 별도의 등록세(5%)나 취득세(2%)가 면제된다. 개별 소비세, 특소세, 교육세, 혼잡 통행료 등도 마찬가지다. 고속도로 통행료는 50% 할인되고 환승주차장 할인, 공영주차장 할인에 보험료까지 할인된다. 혜택으로 따지면 유럽이나 일본에 비해 부족할 것이 없는 셈이다. 승용차 10부제 제외도 대표 혜택이다.

이러한 혜택에도 불구하고 국내 시장에서 경차가 외면 받는 이유에 대해 업계에서는 우리나라에서 자동차가 과시적 소비재의 성격을 강하게 띈다는 점을 지적한다. 이러한 점은 자동차 업계에서는 거의 모든 차급에서 홍보 문구로 ‘고급’, ‘럭셔리’ 등의 단어를 남발한다는 점을 보면 단편적으로 드러난다.

물론 차량 규격이 작은 경차의 크기, 떨어지는 주행능력 등 사용자의 입장에서 불편을 감수해야 하는 점도 있지만 경차가 가지고 있는 매력에 비해 점유율은 비정상적으로 적다. 또한 실제로 자동차를 거의 사용하지 않더라도 경차는 피하는 소비자가 늘고 있다.

최근 자동차를 구매한 B씨는 “최근 집 평수는 줄였지만 차량은 비싼 차로 바꿨다”며 “집보다 자동차를 통해 사람의 경제적 능력을 판단하는 분위기가 있는 것 같다”고 전했다.

◆젊은 층 차량구매 줄어

이 외에도 경차의 주요소비층인 젊은층의 차량 구매가 줄었다는 점도 한가지 원인으로 지목된다.

한국자동차산업협회에 따르면 지난해 20대 청년층이 산 승용차는 10만9671대로, 2013년의 11만1558대보다 1.7% 감소했다. 전체 신규 등록 대수(124만4013대) 가운데 20대 소유자가 차지하는 비중도 9.0%에서 8.0%로 줄었다. 청년실업 등으로 구직기간이 길어지며 첫 차를 사는 연령이 늦어지는 것으로 해석된다.

자동차 구입 연령대가 올라가며 처음 구매하는 차급은 올라간다. 자동차 시장에서도 이러한 분위기를 반영해 ‘생애 첫 차’의 기준이 바뀌었다. ‘생애 첫차는 경차’라는 고정관념이 깨지고 소형 SUV등이 이 자리를 꿰찬 것이다.

실제로 쌍용차 ‘티볼리’는 ‘My First SUV’라는 표어를 통해 ‘생애 첫차’라는 개념을 소형 SUV 마케팅에 적용했다. 이어 최근 발표된 현대차의 올 뉴 투싼도 1.7ℓ 다운사이징 모델의 타겟층을 20대 후반부터 30대 초반의 사회 초년생으로 잡았다.

◆경쟁없는 경차시장, 자극제 필요

다른 원인으로 업계에서는 경차시장의 경쟁이 없다보니 발전이 없다는 점도 지적된다. 국내 경차 기준이 까다롭다 보니 해외 업체들이 진출하지 못하고 별 다른 혁신 없이도 소수 모델의 인기는 유지된다는 설명이다.

실제로 현재 국내 경차시장은 기아차의 모닝, 레이와 한국지엠의 스파크로 양분된 실정이다. ‘수입차 전성시대’에도 수입 경차들이 한국시장에 진출하지 못하는 이유는 국내 경차기준 때문이다.

현재 경차는 자동차관리법에 명시된 배기량 1000㏄ 이하로 길이 3600㎜, 너비 1600㎜, 높이 2000㎜ 이하의 규격을 맞춰야 한다. 배기량 측면에서는 큰 문제가 없지만 크기 기준이 유럽, 일본과 상이해 배기량이 1000cc에 미치지 못하는 차량들도 국내에 들여오면 경차 대접을 받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국토부는 이같은 문제의식을 반영해 지난해 12월 “소비자 선호도와 자동차 기술 변화, 사회·환경 변화 등을 고려해 현실에 맞는 차종 분류 기준을 내놓을 것”이라고 밝히기도 했다.

실제로 해외에서 인기를 끄는 경차들이 들어오면 침체된 경차시장에 활력이 불어넣어질 것으로 업계는 보고 있다. 피아트 친퀘첸토(900㏄), 르노 트윙고, 푸조 108, 시트로엥 C1 등이 거론된다.

일본에서 경차 열풍을 일으킨 연비 26㎞/ℓ의 스즈키 허슬러와 역시 고연비로 이름난 알토라팡 등도 국내에 경차 대접을 받으며 정식 수입되면 인기를 얻을 것으로 여겨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