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중문화에 B급 감성이 뜨고 있다. B급 문화는 저렴하게 제작된 촌스럽고 유치한 비주류 문화를 뜻하지만 이젠 저급함을 넘어 솔직하고 유쾌한 콘텐츠의 대표격으로 자리잡았다. 여전히 A급 감성이 주류이고 B급은 보조적인 역할만 담당한다고 보기엔 이미 B급 감성이 차지하는 자리가 꽤 커졌다.


 

[시시콜콜] 산업계도 장악한 'B급 열풍'

대중문화, B급 파급력 ‘폭발적’

가요계에서는 B급 감성이 대중에게 어필하면 A급은 넘보지 못할 정도로 큰 인기를 얻는다. 전세계를 뒤흔들었던 싸이의 ‘강남스타일’도 B급 정서로 제작됐다. 현재 강남스타일은 유튜브에서 조회수 23억뷰를 돌파하며 최근 10년간 유튜브 조회수 역대 1위 자리를 굳건히 지키고 있다.

신예 걸그룹에게도 B급이 성공공식으로 통한다. 크레용팝은 교복치마에 트레이닝복과 헬멧을 착용하고 엇박자로 점프하며 부른 ‘빠빠빠’로 한국을 넘어 해외에서도 인기를 얻었다. 지난해 가요계에 역주행 돌풍을 일으킨 걸그룹 EXID는 인터넷 동영상사이트에서 퍼진 직캠(직접 캠코더로 촬영)으로 유명세를 타 B급에서 단숨에 슈퍼 A급으로 도약했다.

예능에서도 B급 감성은 대세다. 얼마 전 온 국민이 시어머니 입장에서 며느리를 선발하듯 큰 관심을 쏟은 예능프로그램 <무한도전>의 ‘식스맨 프로젝트’에서도 B급 감성의 위력이 여실히 드러났다. <무한도전> 자체가 대한민국 평균 이하를 표방하며 제작된 B급 감성의 전형이다. 따라서 유병재, 강균성, 김영철 등 새로운 멤버 후보들은 B급 감성을 지녔을 뿐만 아니라 현재 예능계에서 가장 핫한 인물들과 일치했다.

CF계에서도 고예산·고퀄리티의 작품보다 저급 정서가 녹아 있는 B급 감성이 주목받는다. 가장 대표적인 것이 팔도의 ‘비락식혜’다. 배우 김보성이 문을 발로 차고 들어와 터프하게 ‘의리’를 외치는 코믹한 이 CF는 조회수 300만을 넘었고 매출은 전년 동기 대비 35% 이상 급성장하는 기염을 토했다.


/사진=머니투데이 DB
/사진=머니투데이 DB

쇼핑몰·IT 등 산업계도 강타

이처럼 대중문화를 고루 점령한 B급 정서가 비즈니스에서도 통했다. 폐기처리 되던 B급 상품을 위한 시장이 따로 생긴 것. 조금 하자가 있어도 개성으로 감싸주는 정서와 함께 실속을 챙길 수 있다는 점에서 B급 상품을 다루는 쇼핑몰이 큰 인기를 끌고 있다. 유통기한이 임박한 제품이나 흠집난 제품만을 판매하는 ‘떠리몰’, ‘임박몰’, ‘이유몰’ 등이 최근 포털사이트의 실시간 검색어 1위를 장악하기도 했다.

B급 상품몰은 버려지는 가치를 되살리는 것이 목적이라고 밝힌다. 떠리몰에 따르면 생산자와 유통업자 입장에서는 유통기한이 임박해 버릴 수밖에 없는 재고식품을 저렴하게 팔고 소비자는 바로 소비할 식품을 싸게 구입할 수 있어 일거양득이다. 이 과정을 통해 의미 없이 사라지는 7000억원이 시장에서 다시 살아나는 것이다.

유통기한이 임박한 식품군을 주로 다루는 만큼 소비자의 우려가 앞서는 것도 사실이다. B급 상품 사이트에서는 유통기한과는 다른 소비기한을 내세운다. 유통기한은 식품이 안전하게 유통될 수 있는 식품위생법상의 사회적 약속으로, 유통기한 이내의 상품만이 정식 판매가 가능하다. 하지만 유통기한이 지나도 소비기한은 남아있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지난 2013년 한국소비자원은 식품의 소비기한을 발표했다. 이에 따르면 적절하게 보관을 잘 하면 우유는 최대 50일까지 섭취가 가능하고 식빵은 약 20일, 냉동만두는 약 25일, 슬라이스 치즈는 70일까지 먹을 수 있다. 여기서 섭취의 적정성은 수분, 대장균 검출기준에 따라 평가한다.

B급 상품몰의 가장 큰 장점은 가격 경쟁력이다. 홍보비용을 최소화해 불필요한 비용을 낮추고 제품을 저렴하게 공급하는 시스템을 갖췄다. 유통기한이 얼마 남지 않은 제품은 최소 30~80%의 할인율을 제공해 판매한다. 기획전을 통해 추가 할인을 제공하는 상품은 97%까지 할인받을 수 있다.

기업들은 과다재고상품이나 리퍼상품을 해결할 수 있고 소비자는 저렴한 가격에 제품을 구입할 수 있는 윈윈 구조인 셈이다. 기업과 소비자가 함께 상생하는 비즈니스 구조다 보니 자연스레 큰 성장세를 보인다. 떠리몰은 2년 전 90여명에 불과하던 회원 수가 현재 7만3204명으로 늘었으며 매출도 매달 60~80%씩 늘고 있다. 임박몰도 월 1억원 이상 매출을 올리는 것으로 알려졌다.

실속있는 B급 상품의 인기는 고가의 IT제품에도 이어졌다. 노트북, 휴대전화 등이 리퍼비쉬(refurbish)의 손질과정을 거쳐 새 상품 수준으로 거듭나 다시 판매된다. 개인에 의해 거래되던 중고장터에 업체가 개입한 것이다.
CJ헬로비전은 알뜰폰(MVNO,이동통신 재판매) 브랜드 헬로모바일을 통해 최초로 ‘아이폰5s 리퍼비쉬’를 판매한다고 밝혔다. 애플의 보상판매 협력사인 브라이트스타코리아와 제휴해 이뤄진 사업이다. 출고가는 64만9000원으로 책정됐으며 1년 유무상 보증서비스도 제공된다.

투자할 때도 B급에 주목하라

투자의 관점에서도 B급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항상 A급 주식이 시장을 이끌고 수익률이 좋은 것은 아니다. 코스피와 코스닥이 사상최고가에 근접하거나 7년 만에 최고치를 기록하는 등 분위기가 한껏 고조되고 있지만 한국 최고기업인 삼성전자와 현대차, 인터넷 강자인 네이버와 다음카카오톡 등 A급 주식은 큰 수익을 내지 못했다. 오히려 주식시장은 A급이 되기 위해 늘 도전하는 기업에게 기회를 제공한다.

인터넷시대가 본격 시작된 2000년 키움증권이 온라인전문증권사로 출범했다. 당시 시장에서 절대 점유율을 차지하던 대우·현대·삼성·LG증권 등은 리서치도 없고 조직이나 자본력도 취약한 키움증권이 시장에서 신뢰를 쌓기 힘들다고 여겼다. 그러나 불과 5~6년 만에 매매기준 시장점유율 1위를 차지했고 그 기록은 깨지지 않고 있다. 2004년 상장한 이래 키움증권의 주가는 40배 가까이 상승했고 현재 주가는 2007년 최고치에 다시 근접했다. 삼성·대우증권 등의 주가가 2007년 대비 여전히 50~60% 수준에 불과한 것과 대조적이다.

은행권에서도 B급의 반란이 일어날 수 있다. 현재는 신한·하나·KB국민은행 등이 A급 은행이지만 새로 생길 인터넷 전문은행이 키움증권처럼 커질 수도 있어서다. 주식투자를 하는 독자라면 과거의 경험을 토대로 미래에 대비해야 한다. 10년 만에 40배 상승한 키움증권을 놓쳤다면 이제는 인터넷은행과 같은 B급 주식에서 기회를 찾아보는 것은 어떨까.

☞ 본 기사는 <머니위크>(www.moneyweek.co.kr) 제382호에 실린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