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주유소가 사라지고 있다. 신규등록 주유소는 줄어든 반면 국내 폐·휴업 주유소는 꾸준히 늘고 있다.

한국주유소협회에 따르면 폐·휴업주유소는 지난 2010년 418개, 2011년 563개, 2012년 640개, 2013년 12월 703개로 매년 100개 가까이 늘었다. 지난해엔 693곳으로 주춤하더니 올해 3월 말 현재 519곳으로 다시 증가추세다. 주유소 신규등록업수는 5년 전만해도 300개를 넘었는데 지난해 89곳, 올해 3월 말 현재 18개에 그쳤다.

주유소의 폐업 분위기와 함께 사라지는 주유소의 풍조도 생겼다. 주유를 하면 휴지와 생수, 건빵, 반코팅 장갑 등을 나눠 주던 무료 판촉행사가 어느새 자취를 감췄고 일정 금액을 주유하면 제공하던 무료 세차도 거의 유료로 전환됐다.


 

/사진=머니위크 DB
/사진=머니위크 DB

◆처절한 생존경쟁… 위기의 주유소

주유소들의 이 같은 변화 속에는 처절한 생존경쟁이 자리한다. 주유소는 한때 황금알 낳는 사업이었다. 주유소를 운영하는 자체가 '부의 상징'으로 인식됐다. 하지만 정부가 지난 1991년 주유소 거리제한 규제를 완화한데 이어 1995년 주유소 거리 제한을 철폐한 이후 주유소 수가 급증했다. 현재는 출혈경쟁이 심화돼 점차 사양업종으로 바뀌고 있다.

게다가 정부의 알뜰주유소를 통한 시장 개입이 주유사업자를 더욱 옥죈다. 이 때문에 정통주유소는 마진도 계속 감소세다. 한국주유소협회에 따르면 2008년 대비 지난해 상반기까지 주유소 휘발유 평균차액은 리터당 137.7원에서 96.8원으로 30%가량 줄었다.

경유의 평균이익도 145.8원에서 102.7원으로 29.6% 축소됐다. 만약 카드수수료(1.5%)를 제할 경우 마진율은 휘발유 3.7%, 경유는 4.6%로 줄어든다. 생수와 휴지 등 무료판촉 행사를 줄인 것도 마진이 감소하면서 생긴 원가절감 영향이다.

더 안타까운 점은 폐업도 마음대로 신청할 수 없다는 것. 주유소가 폐업을 신청하면 7000만원에서 1억4000만원대의 오염처리비를 내야 한다. 비용을 감당할 수 없는 일부 수도권지역 주유소의 경우 '휴업'이라는 플래카드만 걸어놓고 야반도주하는 사례가 나오는 이유다.


[포커스] 자고나면 주유소가 사라진다

◆옷·커피 팔고 편의점 운영… 변신 꾀하는 주유소

그나마 살아남은 곳은 가까스로 변신을 꾀해 성공한 경우다. 고객 유치를 위해 셀프주유소로 전환하거나 패스트푸드, 의류, 편의점, 카페 등 이색 사업을 병행하는 주유소가 늘고 있다.

서울 영등포구 양평동에 위치한 SK양평주유소는 맥도날드와 의류매장, 피자가게를 입점시켜 짭짤한 임대수익을 챙기고 있다. 경기도 용인시 죽전 SK셀프주유소는 주유소 지붕 상층에 버거킹, 현대오일뱅크의 사당셀프주유소는 휴게음식점 '궁'을 입점시켜 음료, 햄버거, 닭강정 등을 판매한다.

이외에도 서울 중구 GS칼텍스 초동 주유소는 커피전문점과 주차타워, 전문세차 등을 결합한 복합 멀티 주유소로 탈바꿈했다. 주유소 바로 옆에 자동차정비소를 갖춘 곳도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다. 주유와 자동차 정비 서비스를 고객에게 원스톱으로 제공하려는 목적에서다. 이 경우 주유소 주유비 외 별도로 임대수익을 챙길 수 있는데 다 손님도 끌이는 시너지 효과를 기대한다.

투자금이 여의치 않은 경우에는 셀프주유소로 전환한다. 인건비를 줄이기 위해서다. 셀프주유소는 지난 2011년 637개에 불과했지만 2012년 1068개, 2013년 1493개, 지난해 1769개로 3년 만에 2배 이상 늘었다. 올해 3월 말 기준 전국의 셀프주유소는 1836개다. 3개월 만에 70개가량 증가했다.

이 같은 주유업계의 변신에 소비자들은 환영한다는 입장이다. 불과 4~5년 전만 해도 주유소 사장들은 주유값 폭리를 취해 소비자들의 분노를 샀다. 그런데 지금 소비자들은 값싼 주유소를 고를 수 있어 선택의 폭이 넓어졌다는 평가다.

하지만 궁지에 몰린 주유소가 가짜 휘발유를 판매하거나 장기 휴업으로 주변 환경에 악영향을 준다는 점에선 마냥 웃을 수 없다. 한국주유소협회 관계자는 “셀프주유소가 늘어난 것은 주유소업계의 불황을 의미한다”며 “마진을 줄여서라도 고객을 끌어들이려는 주유소업계의 고육지책이”이라고 분석했다.

◆"네가 죽어야"… 구조조정 기다리는 주유소업계

아이러니하게도 주유소업계는 신규등록업수가 줄고 폐·휴업하는 주유소가 늘어난 것에 안도하는 분위기다. 포화상태에 이른 주유소들을 교통정리해야 한다는 인식에서다. 업계에선 국내시장에서 적정한 주유소 숫자를 8000개 정도로 본다. 따라서 주유소업계에선 교통정리가 끝날 때까지 최대한 버텨야 한다는 인식이 만연하다.

서울 은평구에 있는 A셀프주유소 사장은 “손님들이 주유가격에 예민하기 때문에 인근 주유소보다 리터당 20~30원만 비싸도 손님이 30%가량 줄어든다”며 “출혈경쟁 때문에 3년 전 10명이던 직원을 지금은 4명으로 줄였다. 거의 혼자 업무를 보거나 바쁠 땐 가족들에게 도움을 요청하는데도 상황이 녹록지 않다”고 전했다.

인근의 또 다른 주유소 사장 B씨 역시 “주변에 주유소가 많고 가까이 붙어있는 것이 문제"라며 “폐업하는 주유소가 늘어나야 우리가 살아남을 수 있다”고 말했다.

이런 가운데 주유소업계가 생존을 위한 목소리를 내면서 정부의 유류세 인하가 다시 수면 위로 떠오른다. 정부가 규정한 유류세는 현재 휘발유 기준 리터당 900원(기본세율+교통세+주행세 등) 수준이다. 휘발유가격이 리터당 1554.59원(5월20일 기준)인 점을 고려하면 마진보다 세금이 더 높은 셈이다.

한국주유소협회 관계자는 “주유소업계가 궁지에 몰리다보니 가짜 석유를 팔거나 야반도주하는 사례가 늘어 환경오염 등 소비자들의 피해가 예상된다”면서 “유류세 인하 등 소비자와 주유소업계가 만족할 수 있는 정부의 대안 마련이 시급하다”고 지적했다.

☞ 본 기사는 <머니위크>(www.moneyweek.co.kr) 제385호에 실린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