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경환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을 보노라면 '소피스트'(Sophist)라는 단어가 자꾸 떠오른다. 소피스트란 그리스어로 '지혜로운 자'를 뜻한다. 하지만 고대 그리스시대에서는 거짓된 믿음과 말로 대중을 현혹하는 자를 가리키는 부정적인 의미로 사용됐다.


최근의 소비위축 현상을 메르스 사태에 따른 반동으로 규정하는 그의 모습을 보면 더욱 그렇다. 소비 여력을 되찾고 싶다면 빚에 눌려 고사 직전에 놓인 서민부터 둘러봐야 한다는 사실을 최 부총리만 모르는 모양이다.

아니 알고도 모르는 척 거짓말을 내뱉는 것 같다. 그는 지난 3월 첫번째 금리인하 당시 "가계부채가 많이 늘지 않는 수준에서 관리되면 금리인하는 경기에 도움이 되고 문제 될 것 없다. 가계부채 문제가 심각해지는 것은 자산시장이 붕괴할 때"라며 유체이탈 화법을 선보였다.


이런 그의 발언 직전 국회 예산정책처는 가계소비 부진이 가계부채 부담과 실질임금 정체 등 구조적 요인 때문이라고 발표했다. 그럼에도 최 부총리는 지난 15일 국회 기획재정위원회에서 "가계부채에 전반적으로 문제가 있다고 보기는 어렵다"는 말을 되풀이했다.

최 부총리가 극단적인 낙관론을 대중에게 강요하는 동안 자산시장 붕괴를 초래할 가계부채는 사상 최대폭으로 증가(4월 말, 10조1000억원↑)했다. 이에 따라 올해 1분기 가계부채 총액은 1099조3000억원을 기록했다.


가계부채 급증의 주범은 단연 주택담보대출이다. 최 부총리의 바람대로 최근 최대 주택거래량을 갱신했다는 소식이 연신 전해졌다. 하지만 그의 주장과 달리 내수활성화는커녕 잠잠하던 투기수요를 끌어들여 분양시장의 거품만 키운 꼴이 됐다.

전문가와 정치권의 숱한 반대에도 가계부채라는 모래성 위에 부동산으로 대변
[기자수첩] 최 부총리, 이젠 멈춰야 할 때
되는 자본의 성채를 세웠으나 경제에는 별다른 파급효과가 없는 현 상황은 최 부총리의 논리가 허구였다는 걸 방증한다.
당장 올 하반기 미국의 금리인상이 본격화되면 뒷감당을 어떻게 할지 우려스럽다. 2~3년 후 입주 시점에서 공급과잉 문제가 더해지면 하우스푸어 양산은 불 보듯 뻔하다. 이자 부담 증가에 따른 소비감소와 내수 부진으로 이어지는 악순환의 심화는 특정계층이 아닌 모든 국민이 감내해야 할 문제다.

최 부총리가 진정으로 국민을 위한다면 이제라도 정책 실패를 시인하고 가계부채와 주거 불안에 시달리는 서민을 살피길 바란다.

☞ 본 기사는 <머니위크>(www.moneyweek.co.kr) 제389호에 실린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