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백세주 신화'. 배중호 국순당 사장에게 따라붙는 수식어다. 말 그대로 그는 전통 약주인 백세주의 신화를 창조하며 국내 주류시장에 ‘전통주=백세주’라는 공식을 만들었다. 1980년 부친인 배상면 회장이 경영하던 배한산업(국순당 전신)에 입사했고, 12년 뒤 백세주를 탄생시켰다. 이듬해 사장 자리에 올랐다. 이후 백세주의 인기는 가히 상상을 초월했다. 배 사장 취임 당시 2억원에 불과하던 매출이 10년이 지난 후에는 1300억원대에 이르렀다. 


#. 물론 시련도 있었다. 백세주의 인기가 시들해지면서 1000억원에 달하던 매출이 반 토막 이하로 떨어졌다. 여기에 때 아닌 갑질, 고임금 고배당 논란에 휩싸이면서 ‘죽쑨당’이라는 별칭도 얻었다. 최근에는 ‘가짜 백수오’인 이엽우피소 불똥까지 튀면서 한바탕 곤혹을 치렀다. 잘 나가던 전통주의 추락. 배 사장은 여기에 굴하지 않고 또 다른 도전장을 내밀었다. 그가 빼든 회심의 카드는 초심, 이른바 ‘백세주다움’이다.


“1992년 백세주 출시 이후 횟수로 23년. 그동안 국순당은 좋은 원료와 물을 찾아 좋은 술을 빚기 위해 노력해왔습니다. 전통주시장이 예전 같지 않지만, 그 중 많은 책임은 사랑받지 못한 제품을 내놓은 저희에게 있다고 생각합니다. 앞으로 좋은 우리 술이 사랑받을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

◆ 달라진 백세주… 백 투더 베이직


국순당의 주력제품인 백세주에서 ‘가짜 백수오’인 이엽우피소가 검출됐다는 식약처 발표가 나온 지 한달. 배중호 사장은 지난 6월23일 새로운 레시피의 백세주를 내놓으면서 진행한 기자간담회에서 이 같은 말로 반성과 책임을 분명히 했다.

그 첫 행보가 달라진 백세주다. 3년 만에 백세주의 겉과 속을 모두 바꾼 것. 그러면서도 본질은 ‘백세주다움’에 맞췄다. 내부가 잘 보이지 않던 갈색 경량병을 기존의 반투명병으로 바꾼 것은 물론 도수도 0.5도 높였다.


더욱 눈길을 끈 것은 ‘백수오를 뺀’ 레시피. 새로운 백세주는 오미자 특유의 오미와 인삼의 쌉싸름한 맛, 그리고 감초의 단맛이 조화를 이뤄 중후하면서도 신맛, 단맛 등 복합적인 맛을 느낄 수 있다. 약재 역시 구기자, 오미자, 인삼, 산수유, 황기 등 12가지 생약재를 말린 후 가루를 내 원료로 사용했다. 


/사진제공=국순당
/사진제공=국순당

배 사장은 본질을 살린 새로운 맛과 분위기로 추락한 백세주의 이미지와 매출을 끌어올리겠다는 복안이다. 건강을 생각하는 술, 다양한 맛과 향, 분위기를 살링 디자인 등 백세주다운 정체성에서부터 다시 출발하자는 것이다. 슬로건 역시 '백세주답게 달라졌소'로 정했다. 

달라진 백세주로 잡은 하반기 매출 목표액은 70억원. 다소 낮은 목표지만, 백수오 사태 이후 백세주 자진회수 비용 등의 손실 등을 포함하면 그리 낮은 액수도 아니다. 지난해 국내 백세주 판매액은 189억원 정도. 배 사장은 새로운 백세주로만 300억~400억원의 매출을 올리겠다는 중장기적인 목표를 잡았다. 

물론 과거에 비하면 터무니없는 목표. 백세주는 출시 이후 큰 인기를 끌며 시판 2년 만인 1994년 20억원, 1998년 207억원, 2000년 650억원으로 매년 100% 가깝게 신장했다. 지난 2003년에는 1300억원대의 매출을 올리기도 했다.


하지만 전통주시장이 침체기에 빠지면서 2003년을 기점으로 매출은 다시 줄어들었다. 2008년에는 540억원대까지 추락. 지난 2010년 정점을 찍은 이후 4년 만인 지난해에는 영업이익이 10분의 1로 쪼그라들었다.

◆ 갑질·가격·백수오 악재 속 신의 한수

이런 가운데 지난 몇년간 터진 악재도 번번이 배 사장의 발목을 잡았다. 지난 2013년엔 갑질 논란에 휩싸였다. 도매점들에게 매출 목표를 할당하고 매출이 저조하거나 회사에 비협조적인 도매점 8곳과의 계약을 일방적으로 끊어 퇴출시킨 혐의다. 이 일로 배 사장과 전·현직 간부 3명은 공정거래법 부정경쟁방지법 위반 및 업무방해 혐의로 불구속 기소됐다.

갑질 논란이 잠잠해진 뒤에는 막걸리 값을 인상하면서 비판을 받았다. 쌀뿐 아니라 원부자재 값이 올랐다는 이유로 막걸리 가격을 최대 20% 인상한 것. 일각에서는 서민 술인 막걸리가 고급술이 됐다는 지적을 쏟아냈다.

이런 상황에서 올 초 새나온 ‘가짜 백수오’ 논란이 백세주로까지 튀면서 배 사장은 또 다시 곤경에 처했다. 국순당이 보관 중인 백세주 원료를 수거한 결과, 원료 시료 2건에서 가짜 백수오인 이엽우피소가 검출된 탓이다.

배 사장은 위험을 감수하고 과감한 결단을 내렸다. 시중에 유통 중인 백세주 제품에서 이엽우피소가 검출되지 않았음에도 백세주를 자진회수하고 판매 중단한 것. 그 손실액은 100억원 규모다. 당시 업계에서는 더 이상 내몰릴 곳이 없던 배 사장이 약술인 백세주 이미지까지 잃게 될까 염려한 선제적 대응으로 해석했다. 

결과는 성공적이었다. ‘가짜 백수오’ 여파로 하한가를 쳤던 주가는 다시 반등세를 보였고, 신제품 출시시기를 앞당기면서 이미지 회복에도 성공한 듯한 분위기다.

맥주, 소주로 대별되던 대중주시장에 약주라는 새로운 카테고리를 만든 배 사장. 국순당에 드리운 악재를 걷어내고 새로운 백세주로 과거 신화를 이어갈 수 있을지 주류업계는 다시 그를 주목한다.

☞ 프로필 
1953년 대구 출생/1971년 서울 용산고등학교 졸업/1978년 연세대 생화학과 졸업/1978년 롯데상사 무역부 입사/1980년 ㈜배한산업(국순당 전신) 부설연구소장/1993년 ㈜국순당 대표이사
 

☞ 본 기사는 <머니위크>(www.moneyweek.co.kr) 제390호에 실린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