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버스토리] '정년 60세'의 불편한 진실
100세 시대, '내일'을 돌려다오 / 임금피크제, 최선인가
최윤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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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
100세 시대, 대한민국 노인들은 일하고 싶다. 이유는 거창하지 않다. 단지 먹고 살기 위해서다. <머니위크>는 당신들의 생계를 위해 취업전선에 뛰어든 우리네 할아버지, 할머니들의 배고픈 오늘을 집중 조명했다.
# 은행에 재직 중인 이씨(55)는 희망퇴직을 고민 중이다. 20년 넘게 다닌 은행에서 아직은 더 일을 하고 싶지만 정년연장의 부담감이 크다. 정년을 연장할 경우 임금피크제 적용대상이 된다. 주변의 상황을 보면 희망퇴직을 신청해 퇴직금과 재취업지원금 등을 챙긴 후 다른 일을 찾는 것이 현명한 선택이라는 판단이 든다. 돈은 둘째치고라도 임금피크제를 신청할 경우 ‘뒷방 늙은이’ 대접을 받을 것이 자명한 점도 마음에 걸린다. 이씨는 “지금 희망퇴직을 신청하면 환갑을 앞두고 은퇴하신 아버지보다 빠른 은퇴를 하는 셈”이라며 “아버지세대보다 살아가야 할 날이 더 많은데 앞으로 무슨 일을 해야할지 막막하다”고 말했다.
바야흐로 100세 시대. 장수를 축하하던 회갑연은 그 의미가 퇴색된 지 오래다. 전세계적으로 평균수명이 증가하며 미국·유럽·일본 등 고령화 사회에 진입한 국가들은 예외없이 법정정년을 연장했다. 일본과 독일의 경우 정년이 65세다. 미국과 영국 등은 정년이란 개념이 존재하지 않는다.
우리나라는 내년부터 시행되는 ‘고령자 고용촉진에 관한 법률’(정년연장법)에 따라 공공기관과 종업원 수 300인 이상 사업장에 우선적으로 정년 60세 보장이 의무화된다. 하지만 기업의 입장에서 이를 시행하자니 증가하는 인건비가 큰 부담이다. 통계청 자료에 따르면 2014년 기준 우리나라 근로자의 평균 퇴직연령은 52.6세다. 기업들은 내년부터 고연차의 고연봉자에게 7년간 더 임금을 지급해야 하는 것이다.
◆기업·노동계 엇갈린 시각
임단협이 한창인 현재 산업계는 ‘임금피크제’가 뜨거운 감자다. 기업들은 정년을 바라보는 베이비붐세대에게 “정년을 보장할 테니 임금을 적게 받으라”고 요구하는 반면 노동계는 정년연장은 당연한 권리이므로 임금피크제가 반드시 수반될 필요가 없다는 입장이다.
한국노동조합총연맹은 “실제 퇴직연령이 50대 초반인 상황은 개선하지 않은 채 강제적 임금피크제를 추진하고 있다”며 “이는 산업현장에서 조기 퇴직 강요, 또 다른 연령차별, 불공정한 급여체계 확산 등의 문제를 일으킬 것”이라고 지적했다.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도 “임금피크제는 결국 특정연령 노동자의 임금을 깎는 불평등한 임금체계를 만드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에 한국고용노사관계학회는 전국 100인 이상 사업장에 근무하는 1000명의 근로자를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 결과를 발표하며 노동계의 입장과 실제 근로자의 생각이 다르다고 주장한다.
학회에 따르면 응답자의 72.8%가 임금피크제 도입의 필요성을 인정했다. 실질적 고용안정(56.3%)을 가장 큰 이유(복수응답)로 꼽았다. 임금피크제 도입 반대를 내세워 총파업 결의를 한 한국노총·민주노총의 주장과는 다소 다른 결과다. 학회장인 조준모 성균관대 경제학과 교수는 “노동계의 주장과 달리 산업현장의 근로자들은 기업과 고용시장 위축을 걱정하며 합리적 방안을 모색한 것으로 해석된다”고 말했다.
◆임금피크제, 얼마나 줄일 것인가
전문가들은 임금피크제가 고령화 사회로 진입하며 변화하는 인간의 생애주기와 기업경제를 만족시킬 수 있는 궁극적인 해결책이 되지 못한다고 말한다. 근본적으로는 근속년수에 비례해 임금이 증가하는 현재의 연공서열형 임금구조 자체를 개편해 성과에 따른 급여체계로 바꿔야 한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임금피크제는 현실적으로 피하기 힘든 상황이다. 임금구조 개편이 하루아침에 이뤄지기 힘든 탓이다. 임금구조를 개편하는 과정에서 임금피크제 등 과도기적 제도가 필요한 것이 사실이다.
현실적으로 임금피크제를 피할 수 없다면 문제는 ‘얼마나 줄이느냐’로 귀결된다. 임금피크제에 돌입한 근로자의 임금을 얼마나 감액하느냐가 이 제도의 핵심인 것이다.
앞서 언급한 조사에서 근로자들은 임금피크제의 도입 필요성에 대해서는 공감했으나 임금피크제 도입을 통한 감액에 대해서는 현재 기업이 시행하는 수준과 시각차를 보였다. 응답자들은 임금피크제가 도입되면 최고임금 대비 평균 16.5% 감액이 적정하다고 응답했지만 기업이 임금피크제를 통해 감액하는 폭은 이보다 더 크다.
고용노동부가 자산총액 기준 상위 30대 그룹의 주요 계열사 중 임금피크제를 도입한 기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를 보면 기업들이 현재 시행하는 임금감액률은 금융업종이 피크임금 대비 연평균 39.6%로 가장 높았고 ▲제약업종 21.0% ▲유통(도소매)업종 19.5% ▲자동차부품업종 17.9% ▲조선업종 16.3% 등으로 나타났다. 조선업을 제외하고는 근로자들이 적정하다고 생각한 범위를 초과하는 수준의 감액이 단행된 셈이다.
◆임금피크제, 또 다른 맹점들
가장 큰 문제는 감액 수준에 대한 이견이지만 그 밖에도 해결해야 할 문제가 산적해 있다. 우선 가장 큰 문제는 임금피크제가 정년시점과 국민연금 수령시점의 간극을 채워주지 못한다는 것이다.
정부와 기업이 임금피크제 도입을 강력히 주장하며 가장 많이 예로 드는 나라가 일본이다. 실질적으로 우리나라와 비슷한 형태의 임금피크제를 시행하는 나라는 호봉제를 기초로 한 급여제도를 가진 일본이 유일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60세 정년 이후 연금 수령시기까지 소득이 단절되는 것을 막기 위해 도입된 일본의 임금피크제와 60세 정년을 보장해주는 대가로 시행되는 우리나라의 임금피크제는 그 시작점 자체가 다르다. 우리보다 이른 시기에 고령화를 겪은 일본은 국민연금 수급연령이 60세에서 65세로 늦춰지면서 그 간극을 채우기 위해 임금피크제를 도입했다. 반면 우리나라의 임금피크제는 소득이 사라지는 이 시기에 대한 어떤 조치도 찾아볼 수 없다.
임금피크제에 따라 변화할 퇴직급여도 문제가 될 수 있다. 현재 통상 퇴직 직전 3~6개월의 평균급여를 기준으로 산정되는 퇴직금은 임금피크제 신청자에게 불리할 수밖에 없다. 이처럼 임금피크제 시행에 따르는 변화에도 세부적인 개정이 필요한 상황이다.
☞ 본 기사는 <머니위크>(www.moneyweek.co.kr) 제392호에 실린 기사입니다.
바야흐로 100세 시대. 장수를 축하하던 회갑연은 그 의미가 퇴색된 지 오래다. 전세계적으로 평균수명이 증가하며 미국·유럽·일본 등 고령화 사회에 진입한 국가들은 예외없이 법정정년을 연장했다. 일본과 독일의 경우 정년이 65세다. 미국과 영국 등은 정년이란 개념이 존재하지 않는다.
우리나라는 내년부터 시행되는 ‘고령자 고용촉진에 관한 법률’(정년연장법)에 따라 공공기관과 종업원 수 300인 이상 사업장에 우선적으로 정년 60세 보장이 의무화된다. 하지만 기업의 입장에서 이를 시행하자니 증가하는 인건비가 큰 부담이다. 통계청 자료에 따르면 2014년 기준 우리나라 근로자의 평균 퇴직연령은 52.6세다. 기업들은 내년부터 고연차의 고연봉자에게 7년간 더 임금을 지급해야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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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 노동자들이 지난 6월17일 노동시장 구조개악 계획 발표에 따른 정부 규탄 민주노총 투쟁 결의대회에서 물풍선 던지기 퍼포먼스를 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고승민 기자 |
◆기업·노동계 엇갈린 시각
임단협이 한창인 현재 산업계는 ‘임금피크제’가 뜨거운 감자다. 기업들은 정년을 바라보는 베이비붐세대에게 “정년을 보장할 테니 임금을 적게 받으라”고 요구하는 반면 노동계는 정년연장은 당연한 권리이므로 임금피크제가 반드시 수반될 필요가 없다는 입장이다.
한국노동조합총연맹은 “실제 퇴직연령이 50대 초반인 상황은 개선하지 않은 채 강제적 임금피크제를 추진하고 있다”며 “이는 산업현장에서 조기 퇴직 강요, 또 다른 연령차별, 불공정한 급여체계 확산 등의 문제를 일으킬 것”이라고 지적했다.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도 “임금피크제는 결국 특정연령 노동자의 임금을 깎는 불평등한 임금체계를 만드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에 한국고용노사관계학회는 전국 100인 이상 사업장에 근무하는 1000명의 근로자를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 결과를 발표하며 노동계의 입장과 실제 근로자의 생각이 다르다고 주장한다.
학회에 따르면 응답자의 72.8%가 임금피크제 도입의 필요성을 인정했다. 실질적 고용안정(56.3%)을 가장 큰 이유(복수응답)로 꼽았다. 임금피크제 도입 반대를 내세워 총파업 결의를 한 한국노총·민주노총의 주장과는 다소 다른 결과다. 학회장인 조준모 성균관대 경제학과 교수는 “노동계의 주장과 달리 산업현장의 근로자들은 기업과 고용시장 위축을 걱정하며 합리적 방안을 모색한 것으로 해석된다”고 말했다.
◆임금피크제, 얼마나 줄일 것인가
전문가들은 임금피크제가 고령화 사회로 진입하며 변화하는 인간의 생애주기와 기업경제를 만족시킬 수 있는 궁극적인 해결책이 되지 못한다고 말한다. 근본적으로는 근속년수에 비례해 임금이 증가하는 현재의 연공서열형 임금구조 자체를 개편해 성과에 따른 급여체계로 바꿔야 한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임금피크제는 현실적으로 피하기 힘든 상황이다. 임금구조 개편이 하루아침에 이뤄지기 힘든 탓이다. 임금구조를 개편하는 과정에서 임금피크제 등 과도기적 제도가 필요한 것이 사실이다.
현실적으로 임금피크제를 피할 수 없다면 문제는 ‘얼마나 줄이느냐’로 귀결된다. 임금피크제에 돌입한 근로자의 임금을 얼마나 감액하느냐가 이 제도의 핵심인 것이다.
앞서 언급한 조사에서 근로자들은 임금피크제의 도입 필요성에 대해서는 공감했으나 임금피크제 도입을 통한 감액에 대해서는 현재 기업이 시행하는 수준과 시각차를 보였다. 응답자들은 임금피크제가 도입되면 최고임금 대비 평균 16.5% 감액이 적정하다고 응답했지만 기업이 임금피크제를 통해 감액하는 폭은 이보다 더 크다.
고용노동부가 자산총액 기준 상위 30대 그룹의 주요 계열사 중 임금피크제를 도입한 기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를 보면 기업들이 현재 시행하는 임금감액률은 금융업종이 피크임금 대비 연평균 39.6%로 가장 높았고 ▲제약업종 21.0% ▲유통(도소매)업종 19.5% ▲자동차부품업종 17.9% ▲조선업종 16.3% 등으로 나타났다. 조선업을 제외하고는 근로자들이 적정하다고 생각한 범위를 초과하는 수준의 감액이 단행된 셈이다.
◆임금피크제, 또 다른 맹점들
가장 큰 문제는 감액 수준에 대한 이견이지만 그 밖에도 해결해야 할 문제가 산적해 있다. 우선 가장 큰 문제는 임금피크제가 정년시점과 국민연금 수령시점의 간극을 채워주지 못한다는 것이다.
정부와 기업이 임금피크제 도입을 강력히 주장하며 가장 많이 예로 드는 나라가 일본이다. 실질적으로 우리나라와 비슷한 형태의 임금피크제를 시행하는 나라는 호봉제를 기초로 한 급여제도를 가진 일본이 유일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60세 정년 이후 연금 수령시기까지 소득이 단절되는 것을 막기 위해 도입된 일본의 임금피크제와 60세 정년을 보장해주는 대가로 시행되는 우리나라의 임금피크제는 그 시작점 자체가 다르다. 우리보다 이른 시기에 고령화를 겪은 일본은 국민연금 수급연령이 60세에서 65세로 늦춰지면서 그 간극을 채우기 위해 임금피크제를 도입했다. 반면 우리나라의 임금피크제는 소득이 사라지는 이 시기에 대한 어떤 조치도 찾아볼 수 없다.
임금피크제에 따라 변화할 퇴직급여도 문제가 될 수 있다. 현재 통상 퇴직 직전 3~6개월의 평균급여를 기준으로 산정되는 퇴직금은 임금피크제 신청자에게 불리할 수밖에 없다. 이처럼 임금피크제 시행에 따르는 변화에도 세부적인 개정이 필요한 상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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