老(늙을 노)에서 勞(일할 로)로. 100세 시대를 맞아 노인의 정의가 바뀌기 시작했다. 평균수명이 늘면서 은퇴 후에도 많게는 반년의 생애가 남았다. 제2의 삶을 시작해야 하는 노인의 고민은 또다시 일자리로 되돌아간다. 노후자금이 부족한 어르신은 한푼이라도 더 벌기 위해, 적적한 삶에 지친 어르신은 말동무를 찾기 위해 일자리가 필요하다고 말한다.


지난 9일 수원시의 한 아파트에서 16대 1의 경쟁률을 뚫고 한국토지주택공사(LH) 시니어(Senior)직원에 뽑힌 3명의 어르신을 만나 은퇴 후 오늘을 조명했다.


/자료제공=LH공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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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다려지는 하루 4시간

오전 9시. 3명의 할아버지가 수원시 한 아파트의 관리실 주변으로 모였다. 70세 박모씨(편의상 A씨)와 69세 문모씨(B씨), 66세 박모씨(C씨)가 그 주인공이다. 여느 때 같으면 텔레비전을 보거나 집 근처 산으로 이동했을 시간. 그들은 LH 관리과장으로부터 오늘의 업무를 할당받는다.

이날 이들은 전날 다하지 못한 잡초를 뽑는 일에 모든 시간을 썼다. 때때로 층마다 돌면서 소화전 등 시설물의 안전을 점검하고 월말에는 집집마다 관리비 고지서를 전달하는 등 매일 하는 일이 다르다.

“2000여가구쯤 되니까 3명이 하루에 일을 다 못해요. 오늘 단지 3동 돌면 내일은 또 다른 단지를 도는 식이죠.”


이곳에서 가장 나이가 많은 연장자 A씨가 입을 열었다. 그는 “오전 9시부터 오후 1시까지 4시간 동안 일하면서 휴식시간에는 이야기를 나누기도 한다. 아무래도 연배가 비슷하고 사회경험이 많다 보니 대화가 잘 통한다”며 “이 시간이 은근히 기다려진다”고 말했다.

LH는 지난 2010년부터 일할 능력과 의지를 갖고 있지만 일할 기회를 얻지 못한 55세 이상 어르신을 대상으로 시니어사원을 채용하고 있다. 이들은 임대주택 관리와 주민의 생활을 도울 수 있도록 임대주택단지의 환경정비, 독거노인 돌봄서비스 등의 일을 맡는다.


지난 2013년까지는 60세 이상만 모집했으나 지난해부터 55세로 연령을 낮췄다. 또 매년 2000명가량을 채용했지만 올해에는 절반이 줄어든 1000명을 채용했다. 전국 평균 6.3대 1의 경쟁률, 인구밀도가 높은 수원시는 18명을 뽑는 데 300명이 지원했다. 그중 A씨와 B씨, C씨가 이곳 아파트에 터를 잡았다.

황혼의 나이에 막내가 된 C씨는 자신을 ‘행운아’라고 표현했다. 그러면서도 “(시니어) 취업자 연령이 점점 낮아지는 것 같다”며 “상대적으로 나이 많은 사람의 설자리는 더 줄어드는 셈”이라고 씁쓸해 했다.


LH에 따르면 60세 이상 지원자가 52%로 가장 많고 그 뒤를 70대(34.5%)가 잇는다. 55세 이상(11.1%)과 80대 이상(2.4%) 지원자는 13%가량이다.

시니어직원에 지원하는 어르신의 경력은 전직 사회복지사, 주택관리사, 공인중개사, 교사, 미화원, 금융권 종사자 등 다양하다. 기자가 만난 3명의 어르신은 과거 공직과 교직, 대기업에 몸담았다고 했다. 

지난 1973년 대기업 마케팅 분야에 발을 들여 2003년 은퇴한 A씨는 한곳에서 무려 30년간 일했다. 그는 “내 일을 하고 싶어서 은퇴하고 공인중개사 자격증을 땄다”며 “7년 정도 부동산 관련 일을 했는데 그쪽 분야에선 초보다 보니 실패했다”고 말했다. 그로부터 5년간 휴식을 취하다 지난 2013년 LH 시니어직원 채용 소식을 듣고 도전, 2013년과 2015년 벌써 2회째 인연을 맺었다. LH는 매년 새로운 시니어직원을 채용하는데 1년 간격으로 중복 지원을 받지 않는다.

“과감하게 뭘 하는 것이 두려워요. 이제 투자해서 실패하면 노후가 정말 힘들어지니까….”

과거 공직생활을 한 C씨는 60세가 넘으면 할 일이 많지 않다고 토로했다. 그는 “건강은 둘째 치고 (자영업 혹은 재취업 시) 젊은이들과 동등한 입장에서 산행을 한다 생각했을 때 청년과는 걷는 속도가 다르니까 (우리와) 같이 할 이유가 없지 않겠냐”며 “(젊은이도) 부가가치가 있어야 노인과 함께 갈 텐데 우리로서는 여유자금이 있어도 도전하는 것이 두려운 나이”라고 말했다. 

/자료제공=LH공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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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늘에 가려진 사람 많아”

그래서 그들은 LH 시니어사원을 택했다. 하루 4시간 주 5일 근무로 그들이 받는 월급여는 총 59만원. 여기서 의료보험료와 교통비를 떼면 52만원가량이 손에 쥐어진다.

“보수 생각하면 얼마 안돼요. 그래도 이거 안하면 만날 산에나 갈 텐데 아침에 나와 소일거리 하고 들어가면 좋지. 놀면 지루하잖아요. 우울증도 생기고.”

말수가 적은 B씨가 시니어사원에 지원한 이유에 대해 설명했다. 막내 C씨도 “1년 이상 놀면 노는 데도 기술이 필요하다”며 “공원에 가면 장기 두고 바둑 두는 노인들을 만나는데 그것도 며칠 지나면 싫증난다”고 덧붙였다.

곰곰이 얘기를 듣던 A씨는 “10년 단위로 인생의 10가지 목표(버킷리스트)를 세워 지키고 있다”며 “3년 전, 남은 생애를 어떻게 보낼까 고민하다가 시니어직원을 지원하게 됐다”고 말했다. 그에게 시니어직원은 10가지 목표 중 하나다. 이 업무가 끝나면 독서관리사로 일할 계획이다.

“우리가 돈을 많이 벌 나이는 지났죠. 이제는 사회에 베풀 때가 되지 않았나 싶어요. 베푸는 방법에는 여러 가지가 있겠죠. 지금 하는 일도 그 중 하나라고 생각해요.”

시니어직원의 업무기간은 오는 11월3일 종료된다. 세사람은 6개월밖에 되지 않는 업무기간에 아쉬움을 전하며 다음에 기회가 된다면 또 지원할 의향이 있다고 입을 모았다. 그리고 그들은 사회에 대한 아쉬움도 털어놨다.

“막노동도 60세가 넘으면 안 써요. 젊은이들 일자리도 없는데 늙은이들 일자리가 있겠어요? 100세시대라고 하지만 뭘 하고 살아야 할지 막막한 거죠. 우리 동네의 한 할아버지는 목발 짚고 폐지를 줍습니다. 아무리 나라에서, 기업에서 많이 채용한다 해도 그늘에 가려진 사람은 있기 마련입니다. 이들에 대한 사회적 지원도 필요합니다.”

☞ 본 기사는 <머니위크>(www.moneyweek.co.kr) 제392호에 실린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