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속기업의 조건' 뼈저린 각인, 최고의 합병 전리품

우여곡절 끝에 '통합 삼성물산'이 출범하게 됐다. 지난 17일 서울 서초구 양재동 aT센터에서 열린 삼성물산 주주총회에서 주주의 69.53%가 제일모직과의 합병에 찬성표를 던졌다.


삼성물산 3대 주주(7.12%)이자 미국계 헤지펀드인 엘리엇 매니지먼트와 국내외 소액주주들의 반대가 있었지만 참석한 1억3235만5800주 가운데 9202만3660주가 찬성해 이사회에서 양사합병이 무난히 통과됐다. 사실상 삼성의 압승이었다.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을 위한 임시 주주총회가 지난 17일 오전 서울 양재동 aT센터에서 열렸다. 삼성물산은 이날 주총에서 통합 안건을 승인했다. /사진=임한별 기자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을 위한 임시 주주총회가 지난 17일 오전 서울 양재동 aT센터에서 열렸다. 삼성물산은 이날 주총에서 통합 안건을 승인했다. /사진=임한별 기자

◆<수혜> '이재용 체제' 안착

양사의 합병은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후계구도가 탄력을 받았다는 점에서 가장 큰 의미를 갖는다.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이 통과되면서 이 부회장을 축으로 한 지배구조 퍼즐이 완성단계에 이르렀다.

현재 이  부회장은 제일모직 지분 23.2%를 갖고 있으며 제일모직은 삼성생명의 2대 주주(19.3%)다. 제일모직은 삼성 지배구조의 핵심 연결고리지만 그룹의 핵심인 삼성전자 지분은 없다. 그간 이 부회장은 삼성생명이 보유한 지분 7.2%를 통해 삼성전자를 지배했다.


하지만 통합 삼성물산이 출범하면 합병법인의 지분 16.5%를 갖게 돼 이 부회장은 최대 주주로 올라서게 된다. 또 그가 보유한 삼성전자 지분 0.6%에 삼성물산이 보유한 지분 4.1%를 합쳐 삼성전자 지분율은 4.7%로 높아진다. 만약 이건희 회장의 지분(3.38%)까지 물려받는다면 이 부회장의 삼성전자 지분은 8%대로 상승하게 된다.

삼성생명을 거치지 않더라도 이 부회장이 통합법인으로 직접 삼성전자를 거느릴 수 있게 된 것이다. 여기에 이 부회장은 삼성물산이 가진 삼성SDS 등 정보기술(IT) 계열사와 삼성생명을 통해 삼성증권과 삼성카드 등 금융계열사 영향력도 확대할 수 있다.


◆<과제경영권 방어와 '장치'

경영권 위협까지 받았던 삼성으로선 일단 엘리엇을 상대로 승리를 거두면서 한숨을 돌렸다. 하지만 마냥 축배를 들고 있을 처지는 아니다. 삼성물산 경영진은 물론 직원들까지 약 두달간 본업보다는 주주 설득 작업에 사력을 다했다. 경기침체와 저금리로 기업 경영환경이 악화된 상황에서 오너와 임직원들이 본업에 충실하지 못한 것이다.


여기에 엘리엇은 여전히 삼성물산의 합병비율 재산정을 위한 법정공세를 이어갈 것으로 보인다. 엘리엇 측은 양사의 합병발표 직후 “수많은 독립주주들의 (합병반대) 희망에도 불구하고 합병안이 승인돼 실망스러우며 모든 가능성을 열어두고 있다"고 밝혔다.

이와 관련 정치권에서는 정부가 나서 외국계 투자자본이 국내 기업의 경영권을 흔드는 일이 없도록 안전장치를 마련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제2, 제3의 엘리엇 혹은 소버린과 같은 사태가 발생하지 않도록 방어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정갑윤 의원(새누리당)은 포이즌필(신주인수선택권)과 차등의결권 도입을 담은 상법 개정안을 7월 중 발의할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포이즌필은 주주들에게 회사의 신주나 자기주식을 저렴한 가격으로 살 수 있는 권리를 부여하는 것을 말한다. 적대적 인수합병(M&A) 때 기존 주주가 저가에 지분을 늘리면서 공격하는 세력의 지분을 희석시키는 효과가 있다.

부작용도 있다. 포이즌필은 기업 입장에선 비용을 아끼며 경영권을 방어할 수 있지만 무능한 지배주주의 경영권을 고착화할 수 있다는 우려가 있다. 실제로 '미디어 재벌'로 불리는 루퍼트 머독이 운용하는 뉴스코프가 얼마 전 포이즌필을 경영권 세습에 악용했다는 비난을 받기도 했다.

◆<재발견> 소액주주의 힘과 가치

엘리엇이 남긴 또 하나의 과제는 소액주주에 대한 권리 보호가 미흡했다는 점이다. 사실 삼성물산이 제일모직과 합병하는 데 가장 크게 기여한 세력은 소액주주다. 소액주주들이 보유한 삼성물산 지분은 24%. 국민연금이 찬성의사를 밝힌 후 소액주주가 캐스팅보트를 행사한 셈이다. 불과 한달 전까지만 해도 생각지 못한 상황이다.

삼성물산은 뒤늦게 소액주주들의 마음을 잡기 위해 안간힘을 썼다. 합병 주총 전 전국 100개 이상 신문과 8개 증권방송, 4개 종편채널, 네이버와 다음 등 포털회사 배너 등 대규모 광고를 통해 “단 한주라도 위임해달라”고 호소했다. 최치훈 삼성물산 건설무문 사장과 김신 상사부문 사장은 물론 임원과 부장, 평사원까지 소액 주주들의 찬성 위임장을 받기 위해 발로 뛰었다.

결국 삼성물산의 이러한 노력은 통했다. 엘리엇의 공격을 막고 예정대로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이 합병하는 데 소액주주들이 적극 동참했다.


삼성물산 관계자는 "전국 각지를 돌며 위임장을 받는 과정에서 상당수 소액주주들의 마음이 움직인 것 같다"면서 "이번 사태를 계기로 삼성이 주주가치를 높이고 주권을 보호하는 글로벌 1등 기업이라는 평가를 받을 수 있도록 힘쓰겠다"고 말했다.


한편 삼성물산은 지난 20일 주총 통과와 관련 전국 일간지에 대국민 '감사광고'를 게재해 눈길을 끌었다. 


삼성물산 임직원 일동은 광고를 통해 "의결권 위임으로 힘을 모아준 주주들에게 진심으로 감사드린다"며 "기업가치와 주주권익을 제고하는데 최선을 다하고 고객과 사회로부터 사랑받는 회사로 거듭나겠다"고 다짐했다.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 추진일지

▲2015년 5월26일 :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 이사회 결의 및 발표
▲5월27일 : 엘리엇 매니지먼트, 주주자격으로 삼성물산에 합병 반대의사 통보
▲6월4일 : 엘리엇, 삼성물산 지분 7.12% 취득 공시, 삼성물산 보유주식 현물배당 정관 개정 요구 주주제안서 발송
▲6월5일 : 엘리엇, 국민연금과 삼성SDI·삼성화재 등 삼성 계열사에 합병 반대 동참 요구 서한 발송
▲6월9일 : 엘리엇, 서울지법에 삼성물산 상대 주주총회 통지 및 결의 금지 가처분 신청
▲6월10일 : 삼성물산, 자사주 5.76%(899만주) KCC(우호적투자자)에 매각 발표
▲6월11일 : 엘리엇, 삼성물산 자사주 매각 금지 가처분 신청
▲6월12일 : 공정위, 제일모직-삼성물산 기업결합 승인
▲6월16일 : 엘리엇, 삼성물산에 주주명부-이사회 회의록 열람 및 등사 청구
▲6월18일 : 삼성물산 이사회, 엘리엇 제안 현물배당 등 임시 주총 안건 추가 확정
엘리엇, 합병 반대 내용 담은 자료 게재한 별도 홈페이지 개설
▲6월19일 : 법원, 엘리엇 제기 가처분 신청 첫 심문 진행
엘리엇, 홈페이지에 합병 관련 한글자료 추가 공개
▲6월24일 : 삼성물산, 엘리엇이 요구한 주주명부 열람 및 등사 허용
엘리엇, 삼성물산 주주들에 의결권 위임 요청 시작
▲6월25일 : 삼성물산, 주주들에게 의결권 위임 요청 시작
▲6월30일 : 제일모직, 긴급 기업설명회(IR) 개최 주주친화 정책 발표
▲7월1일 : 법원, 엘리엇 제기 주총 관련 가처분 신청 기각
삼성물산, 합병 당위성 설명하는 전용 홈페이지 개설
▲7월3일 : 세계 최대 의결권 자문기관 ISS, 합병 반대 권고
엘리엇, 삼성물산 주총 관련 가처분 신청 기각 결정에 항고
국민연금, 삼성물산 보유지분 추가 취득 11.61% 보유 공시
▲7월5일 : 삼성물산, ISS 보고서 정면 비판 및 반박 자료 배포
▲7월7일 : 법원, 엘리엇 제기 ‘자사주 매각금지’ 가처분 신청 기각
▲7월10일 : 국민연금 투자위원회, 합병 찬반 여부 결정
▲7월13일 : 법원, 엘리엇 항고 첫 심문
▲7월16일 : 법원, 주총-자사주 처분관련 엘리엇 항고 모두 기각
▲7월17일 : 삼성물산-제일모직 주총서 찬성률 69.53%로 합병계약서 승인


☞ 본 기사는 <머니위크>(www.moneyweek.co.kr) 제393호에 실린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