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버스토리] 한숨 늘어가는 뉴코엑스몰
위기의 코엑스 / 르포-'3000억 리모델링' 그 후
김설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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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
강남 한복판, 그것도 교통 요지에 자리한 코엑스몰은 2000년대 젊은 세대의 시간을 독점하며 ‘코엑스 키즈’라는 신조어를 탄생시켰다. 하지만 세월이 흐르며 노후화됐고 도심 곳곳에선 대형복합쇼핑몰이 생겨났다. 이에 뒤질세라 코엑스몰은 3000억원을 들여 지난 2013년 ‘리모델링’을 했다. 하지만 새단장 8개월이 지난 지금의 코엑스몰은 ‘썰렁함’ 그 자체다. 위기, 그리고 몰락. 코엑스몰의 현주소다. ‘3000억 리모델링’이 가져다 준 코엑스몰의 실상과 경제적 효과, 컨벤션 사업의 전망 등을 취재했다.
#. 무더위가 기승을 부리던 7월의 어느 날 오후. 지하철 2호선 삼성역과 연결된 밀레니엄광장은 젊은이들의 열기로 가득찼다. 도심 속 거대한 지하도시. 코엑스몰로 들어가려는 사람들로 장사진을 이뤘기 때문이다. 특히 여름방학이나 주말을 맞은 젊은이들에게 이곳은 핫 플레이스다. 쇼핑몰과 복합문화공간, 푸드코트 등이 함께 어우러져 하루 종일 있어도 지루할 틈이 없다. 영화보고 밥먹고 쇼핑하고 공연 등을 즐기다 보면 어느새 하루가 뉘엿 뉘엿…. 10년이 넘도록 복합쇼핑몰 선두자리를 지킨 코엑스몰이 보여준 풍경은 이랬다. 적어도 4년 전까진.
#. 코엑스몰은 지난 2012년 돌연 변신을 선언했다. 코엑스몰의 국제적 위상이 높아진 만큼 노후화된 시설을 탈바꿈해 ‘저렴한’ 이미지를 벗겠다는 취지였다. 그럴듯한 청사진도 내놨다. 면적을 기존보다 10% 확대하고 고급 명품브랜드들을 입점시켜 쇼핑몰을 넘어 한류의 메카로 거듭나겠다는 것. 당시 코엑스 측은 리모델링 이후 기존의 2배가 넘는 방문객이 몰릴 것으로 내다봤다. 반대하는 임차인들과 진통을 겪기도 했지만 결국 2013년 4월 리뉴얼 공사에 들어갔다. 그리고 다시 문을 열기까지는 총비용 3000억원과 1년 8개월이라는 시간이 소요됐다.
“2012년까지만 해도 장사가 잘 됐죠. 리뉴얼하면 전세계적으로 유명해진다고 해서 저 같은 임차인들이 많은 돈을 내고서라도 진행한 것 아니겠어요? 그런데 이게 뭡니까. 매출은 3분의 1로 줄었고 임대료와 관리비용만 오히려 3배 늘었어요. 평일이고 주말이고 몇년 전에 비해 사람이 반도 안돼요.” (코엑스몰 입점 상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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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뉴스1 안은나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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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임한별 기자 |
◆ 야심 찬 리뉴얼… 빗나간 고급콘셉트
지난 7월22일 오후. 코엑스몰 주변은 그야말로 한산했다. 지하철 2호선 삼성역과 연결된 통로이자 사람들로 넘쳐나던 과거 밀레니엄광장은 텅 비었고 양손 가득 쇼핑백을 들고 삼삼오오 모여 있던 여성들의 모습은 찾아보기 힘들었다. 대형버스에서 우르르 내려 사진을 찍던 중국인관광객(유커)을 포함한 외국인들은 아예 자취를 감췄다.
메르스 여파와 평일 오후인 탓도 있지만 인근 상인들은 “재개장한 이후 6개월 동안 늘 반복된 풍경”이라고 입을 모았다. “2년여를 기다렸는데 장사가 이렇게 안될 줄은 상상도 못했다”며 “기대했던 것과 너무 다른 현실에 하루하루가 고통스럽다”고 토로했다.
새 옷을 갈아입은 코엑스몰. 과연 어떻게 달라진 것일까. 리뉴얼을 통해 구성된 ‘밀레니엄 플라자’, ‘센트럴 플라자’, ‘라이브 플라자’, ‘아셈 플라자’, ‘도심공항 플라자’ 등 5개 공간을 따라 이동해봤다.
밀레니엄 플라자를 지나 코엑스몰 내부인 센트럴 플라자로 들어서자 익숙한 듯 낯선 풍경이 눈앞에 펼쳐졌다. 마치 백화점을 연상시키는 대리석 바닥과 하얀 조명은 이곳이 코엑스몰로 느껴지지 않을 정도로 고급스러웠다.
좁았지만 불편할 정도는 아니었던 이동통로는 예전에 비해 3~4배쯤 넓어졌다. 형태도 직선형에서 사선형으로 바뀌었다. 넓어진 통로를 사이에 두고 양 옆 공간에는 각종 편집숍과 화장품·생활용품 매장이 들어섰다. 25~35세 여성층에 초점을 맞춰 ‘버버리 뷰티박스’, ‘라움’, ‘베르사체진’ 등의 브랜드가 입점했다.
하지만 매장 내부에서는 고객을 찾아보기 힘들었다. 몇몇 여성들이 매장에 들러 돌아보는 모습이 포착됐지만 구매로 이어지지는 않았다.
버버리 뷰티박스 매장 앞에서 만난 30대 여성은 “근처에 볼일이 있어 코엑스몰을 찾았다가 이곳이 전세계 두번째 매장이라고 해서 한번 둘러봤다”며 “괜찮은 제품도 있었는데 브랜드 인지도에 비해 가격이 비싸서 그냥 나왔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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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갈수록 적자… 늘어나는 한숨
상인들의 한숨은 더 깊어질 수밖에 없다. 몰의 중심이자 리뉴얼의 메인인 센트럴 플라자가 확실한 구매고객층을 끌어모아야 매출을 더욱 높일 수 있다고 기대했기 때문이다.
이곳에서 만난 한 상인은 “고급화 전략이라고 하지만 백화점 1층에 비해선 급이 떨어지고 상대적으로 대중화됐거나 브랜드 인지도가 떨어지는 비주류 브랜드들이 들어와 있어 주고객층을 잡지 못하고 있다”며 “게다가 센트럴 플라자 위쪽으로 현대백화점과 연결되는 통로가 있는데 고급스러움을 느끼고 싶으면 백화점으로 가지 왜 이곳으로 오겠느냐”고 꼬집었다.
센트럴 플라자에서 위쪽을 향해 걷다보면 나오는 ‘에어포트 플라자’ 역시 마찬가지다. 이곳은 관광객을 겨냥한 패션·잡화 브랜드로 구성됐지만 관광객의 발길이 끊긴 탓인지 어수선한 분위기마저 감돌았다. 몇몇 매장은 손님보다 매장 직원 수가 더 많을 정도였다.
에어포트 플라자 옆쪽으로는 다양한 외식브랜드가 모여 있어 그나마 활기를 띠었다. 하지만 이마저도 평일 점심에만 볼 수 있는 광경이라는 귀띔이다. 정작 더 많이 붐벼야 할 시기인 주말이나 가족단위 외식이 많은 특별기념일에는 오히려 빈 테이블이 더 많다는 것.
푸드코트를 지나면 나오는 라이브 플라자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코엑스몰 5개 플라자 중 유일하게 2개 층으로 나뉜 라이브 플라자는 당초 가족단위 방문객을 위한 공간으로 마련됐다. 100명이 앉을 수 있는 계단식 공연장이 만들어졌지만 몇몇 커플만 덩그러니 앉아 쉬고 있을 뿐이었다.
몰의 마지막 공간인 아셈 플라자는 식음료 매장을 중심으로 몇몇 패션잡화 매장이 섞인 형태로 이뤄졌다. ‘테이스팅룸’(이탈리안 레스토랑), ‘버거비’(햄버거), ‘스페인 클럽’(스페인요리) 등 유명 맛집과 프랜차이즈 커피전문점이 대거 입점했다. 이곳은 유동인구가 가장 많았지만 사람이 가장 없는 곳이기도 했다.
코엑스몰을 통틀어 ‘누군가 무엇을 사기 위해 줄을 선 풍경’은 프랜차이즈 커피전문점에서만 볼 수 있었다. 그곳을 지나 출구 쪽으로 갈수록 이동하는 사람을 찾기 힘들었다. 그 주변에 위치한 브랜드숍들은 말 그대로 파리만 날리고 있었다.
한 매장 관계자는 “매장에 들어오는 손님 자체가 없어 사장님한테 월급 받기가 미안할 정도”라며 “70~80% 할인을 내걸어도 유독 한산한 곳이어서 매장 입구로 고객을 유인하기가 하늘의 별 따기 수준”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이 라인에 있는 랜드로바는 적자를 이기지 못하고 조만간 매장을 철수할 계획이다. 랜드로바 건너편에 위치한 곳도 당초 바른손이 입점했지만 철수하고 까사미아가 재입점한 상황이다.
상인연합회 한 관계자는 “이 라인은 지하철 9호선과 연결통로가 시작되는 출입문인데 9호선 연결공사가 지연되다 보니 이쪽으로 이동하는 사람을 찾을 수가 없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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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임한별 기자 |
◆ 많아진 기둥·사라진 정체성 ‘흠’
몰을 한바퀴 돌고나니 아쉬운 점이 더 눈에 띄었다. 이동통로를 과거보다 크게 확장함과 동시에 직선형이 아닌 사선형태로 길을 내다보니 과거에는 가려져 있던 기둥들이 노출돼 주변 시야를 가리는 현상이 계속해서 반복됐다.
직장인 김지혜씨는 “과거보다 깔끔해진 느낌이긴 한데 기둥들이 너무 많아 위치나 주변파악이 전혀 안된다”며 “시야가 가려져서 안보이다 보니 길을 잘못 들면 꼭 미로 속에 갇힌 것 같다”고 말했다.
또 다른 매장 관계자도 “통로가 말로만 넓어진 것일 뿐 실질적인 효과가 없고 동선배치도 제멋대로”라며 “과거에 비해 가게 수가 줄면서 규모만 커지고 어마어마한 면적에 비해 효율성은 떨어진다”고 전했다.
획일화된 간판 크기와 매장의 문 디자인도 브랜드 특색을 살리기엔 역부족이다. 과거 ‘코엑스’ 하면 떠오르던 인기매장들이 사라진 것이 아쉽다는 지적도 제기됐다.
리뉴얼 후 매장을 처음 찾았다는 주부 오아름씨는 “과거 코엑스몰은 편집숍 같은 매장을 시작으로 특색 있는 카페, 레스토랑 등이 많았는데 전부 사라져서 씁쓸하다”며 “그 자리에 이제는 어디서나 볼 수 있는 브랜드들만 입점해 있어 굳이 코엑스를 찾을 명분이 사라진 것 같다”고 털어놨다.
전보다 확실히 젊고 밝아진 공간. 리뉴얼된 뉴코엑스몰에는 다양한 브랜드가 들어서고 간판도 새로 달았지만 코엑스몰 특유의 정체성은 살리지 못한 분위기였다. 매출이 절반 이상으로 떨어진 상인들도 답답하긴 마찬가지. 그들이 2년 전 꿈꿨던 ‘3000억의 마법’은 끝내 이뤄지지 않았다.
재개장 후 6개월. 리뉴얼된 코엑스몰이 제자리를 찾지 못하면서 입점 상인과 주인인 무역협회 간 싸움이 극으로 치달았다. 지금의 코엑스몰을 바라보는 양측 입장은 무엇일까.
-평일과 주말의 이용객 수 등 현 상황은 어떤가.
▶상인연합회(상): 기대와는 너무 다르다. 흑자전환은 커녕 누적적자를 감당하기 힘든 상황이다. 이용객이 급감한 게 큰 원인이다. (지하철 승하차 고객을 토대로 조사한 바로는) 하루 평균 6만7000명, 주말 7만8000명 정도가 코엑스몰을 찾는다. 2011년 피크 때에 비해 하루 평균 20% 이상 줄었다.
▶코엑스(코): 2년 정도 리뉴얼한 기간이 있기 때문에 이용객이 줄었지만 점차 과거 수준으로 회복되고 있다. 현재 주중 8만~9만명, 주말은 10만~11만명 정도로 파악된다. 내방객은 앞으로 더 늘 것으로 예상된다.
- 240개의 브랜드 매장 중 17개 매장이 철수했다는데….
▶상: 불과 6개월 만에 17개 매장이 적자를 내고 나갔고 앞으로도 16개 매장이 추가로 문을 닫을 계획인 것으로 안다. 장사가 안된다고 소문이 나고 있는데 앞으로 재입찰할 때 누가 여기에 들어오려고 하겠나.
▶코: 공항터미널이랑 합쳐서 17개가 철수한 것이고 코엑스몰만 보면 8개 매장이 나갔다. 이는 자연스러운 적응기간으로 본다. 나간다는 것 자체가 긍정적인 것은 아니지만 리뉴얼 후 매장이 조율되는 자연스러운 과정이라고 판단한다. 240개 매장 중 8~10개 수준이면 퍼센트로 따졌을 때도 심각한 상황은 아니다.
- 리뉴얼 전략(고급화·동선·MD) 실패라는 말도 나오는데….
▶상: 100%다. 몰의 특성을 전혀 살리지 못한 MD구성, 고급스럽지 않은 고급화 전략, 코엑스몰의 운영능력 미숙이 현 상황을 초래했다고 본다. 높은 관리비와 고율의 수수료도 상인들을 코너로 몰고 있다.
▶코: 그렇지 않다. 고급화 전략 때문에 명품브랜드를 넣은 게 아니라 실질적 구매가 이뤄지도록 구성한 것이다. 구매력 있는 주 연령대를 25~35세 여성으로 잡고 거기에 맞게끔 구색을 갖춘 것이다. 여기에 가족단위 고객을 위한 공간이 더해졌다고 보면 된다.
- 가장 많이 접한 고객들의 반응은?
▶상: 전부 밝고 하얗다 보니 내가 어디 있는지 모르겠다는 반응이 많았다. 출입문도 똑같아서 매장구분이 더 안된다. 또 다른 지적은 가격이 비싸다는 것. 상인들 입장에서는 코엑스몰이 다른 쇼핑몰보다 임대료가 비싸 어쩔 수 없는 부분인데 이런 점들이 고객의 발길을 끊는 데 일조하고 있다.
▶코: 두달 단위로 방문객 모니터링을 하고 있다. 과거보다는 확실히 몰에 대한 방문목적이 쇼핑 쪽으로 늘고 있다. 또 개인 취향이 있겠지만 디자인 요소도 개선됐다고 평가하고 싶다. 리뉴얼 후 브랜드도 과거보다 훨씬 좋아졌다는 평가다.
☞ 본 기사는 <머니위크>(www.moneyweek.co.kr) 제394호에 실린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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