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면서 학교에서 배웠던 것이 새빨간 거짓말이었다는 것을 깨닫는 순간이 있다. 미국 생활 6개월째가 되면서 알게 된 거짓말은 두 가지다. 첫 번째가 삼천리금수강산(三千里錦繡江山)에 대한 믿음이다. 초등학교 때 일이라 기억이 어렴풋하지만 선생님 말씀은 이랬다. “우리나라가 미국이나 선진국보다 잘 살지는 않지만 푸른 산과 맑은 강물은 모두 부러워한다.”


한 때는 맞는 말이었겠지만 지금은 거짓말이다. 한국에서는 도심에서 차로 몇 시간쯤을 달리고 그것도 운이 좋아야만 반딧불을 볼 수 있다. 하지만 기자가 거주하는 뉴저지에서는 밤이면 뒷마당에서 반딧불을 어렵지 않게 만날 수 있다.

또 하나는 바로 ‘단일민족’이다. 단결을 강조하기 위해 군사정권이 만들어 낸 이데올로기 가운데 하나라는 사실을 알면서도 가슴 한 구석에는 아직 자긍심 비슷한 게 남아 있었다. 하지만 미국 사회를 조금만 들여다보면 어서 버려야 할 망상 가운데 하나라는 걸 쉽게 알 수 있다. 어쩌면 다문화 가정에 대한 잘못된 선입견도 여기서 출발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특파원 리포트] 이민으로 성공한 '내슈빌의 기적'

◇ 이민자, 미국 경제 활력소

현재 전세계 중앙은행 가운데 유일하게 금리인상을 저울질하고 있는 곳은 미국밖에 없다. 그만큼 경제 회복에 대한 자신감이 있다는 얘기다. 여러 요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지만 이 가운데 빼놓을 수 없는 것이 이민자들이다.


카프만재단이 지난 2006년부터 2012년까지 실리콘밸리에서 창업한 IT 기업을 조사한 결과 적어도 1명 이상의 외국인 설립자가 포함된 비율이 40%에 달했다. 또 뉴 아메리칸 이코노미의 조사에 따르면 지난 2011년 창업자의 28%가 이민자들이었다.

또 캘리포니아 대학의 지오반니 페리 이코노미스트가 2012년 발표한 연구에 따르면 미국이 취득한 국제 특허의 1/3을 이민자들이 보유하고 있었다. 특히 그는 이민자들이 경제 생산성을 높여주지만 미국인의 일자리에 큰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고 결론 내렸다. 이민자들과 미국인들이 서로 다른 직업군을 형성하고 있어서다.


물론 이민 자체의 부정적인 영향이 없는 것은 아니다. 하버드 대학의 조지 보하스 교수 연구에 따르면 지난 1990년부터 2010년까지 불법 이민자로 인해 미국 태생 고교 중퇴자의 임금이 6% 가까이 감소했다.

하지만 전체적으로는 이민이 노동력을 강화하고 결국 미국의 경제 활동성을 높여준다. 이민자들이 많은 뉴욕과 LA, 시카고, 휴스턴은 미국 경제의 핵심 역할을 하고 국내총생산(GDP)의 20%를 차지한다.


뉴욕의 경우 이민자가 전체 노동시장의 44%(2011년 기준)를 차지한다. LA 역시 경제의 1/3(2007년 기준)을 이민자들이 담당한다.

지난 1월 재정정책연구소(Fiscal Policy Institute)가 미국의 50개 대도시를 대상으로 2013년 '메인 스트리트 비즈니스' 소유주를 조사한 결과도 다르지 않다. 셋 중 하나는 이민자들의 몫이었다. 메인 스트리트 비즈니스는 식당·소매·세탁 등 실생활과 직결된 ‘동네상권’을 말한다.

재정정책연구소가 메인 스트리트 비즈니스를 3개 영역으로 나눠 조사한 결과 숙박 및 음식업은 36%, 세탁업, 세차업 등 이른바 근린 서비스 사업은 31%, 소매업은 24%가 이민자들이 운영하고 있었다.

◇ 내슈빌의 작은 기적, 이민 대표 성공사례

적극적인 이민 정책으로 가장 성공한 도시가 바로 내슈빌이다. 지난 2009년 테네시 주도인 내슈빌에 살고 있는 이민자들은 큰 고민에 빠졌다. 보수적인 의원들이 비용 절감을 이유로 모든 공식 문서를 영어로 쓰도록 관련 규정을 개정하자고 제안했다.

하지만 기업은 물론 종교 단체 등의 강한 반발을 불러오면서 결국 부결됐다. 칼 딘 내슈빌 시장은 “이민 역사의 아주 중요한 순간이었다”며 “그 이후로 내슈빌은 다시 뒤돌아보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내슈빌 도심의 외국인 인구는 지난 2000년 이후 2배 이상 증가했다. 2000년부터 2012년까지 증가한 인구의 60%는 이민자들이 차지했다. 지금은 내슈빌 인구 8명 가운데 1명은 이들이 차지하고 있다. 지난해 12월 오바마 대통령이 새로운 이민정책을 내슈빌에서 발표한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이다.

컨트리 음악의 본고장이었던 내슈빌은 지금 쿠르드족 최대 밀집지이자 미안마와 소말리아 이민자들이 꾸준히 늘고 있다.

이들은 침체에 빠졌던 내슈빌에 활력을 불어넣으며 가장 빠른 성장률을 보이는 도시 가운데 하나로 탈바꿈시켰다. 그들이 지역 경제 성장의 이득만을 누리는 것이 아니라 이에 기여하고 있다. 이민자들은 내슈빌 토박이들보다 2배 가까이 더 창업에 나서고 있다. 또 지역 건설산업과 의료, 숙박 등 분야에서 아주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내슈빌은 이민자들을 적극 포용했고 인근 다른 지역에서도 이를 모방하기 시작했다. 이같은 움직임은 지난 2005년 비영리단체인 ‘웰커밍 테네시’가 이민자들의 공헌과 앞으로의 역할을 강조하면서 시작됐다. 내슈빌 곳곳에는 “이민자들을 환영합니다. 이제는 더 이상 이민자가 아닙니다”라는 간판이 걸려 있다.

심지어 다음 달로 예정된 시장 선거에 나선 후보자들은 어떻게 다양한 이민자들에게 맞는 학교 시스템을 구축하고 이민자들도 공공서비스를 불편함 없이 이용할 수 있도록 할 것인가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테네시에서 시작된 이같은 움직임은 ‘웰커밍(Welcoming) 아메리카’로 발전되고 있다. 전국적인 네트워크를 갖춘 이 단체는 이민의 경제적 효과를 알리고 이민자들이 미국에 정착하는데 도움을 주고 있다. 지난 2009년 이후 샌프란시스코와 필라델피아, 캔자스 등 57개 도시가 ‘웰커밍’ 깃발을 내걸었다. 이는 지방 정부가 이민자들의 정착을 돕는 정책을 실행하고 있다는 의미다.

민간 영역에서도 이민자들에 대한 관심이 크게 늘었다. 씨티그룹은 메릴랜드에서 시민권 취득 방법을 알려주고 있고 BB&T 은행은 남동부 지역에서 이주 증명서가 없는 이민자들을 대상으로 일자리를 합법적으로 얻을 수 있는 방법을 교육하고 있다. 아메리칸 어패럴은 외국인 근로자들을 대상으로 영어 교육은 물론 시민권 취득을 도와주고 있다.

지방정부도 경제적인 필요에 의해 이민자 정책에 적극 나서고 있다. 많은 도시들은 ‘뉴 아메리칸’이라는 부서를 별도로 만들고 있다. 오하이오주 데이턴은 성장하고 있는 터키인 밀집 지역을 재개발하고 있다. 내슈빌은 ‘마이시티 아카데미’ 프로그램을 통해 이민 사회의 지도자들에게 지방 정부를 소개하고 있다.
[특파원 리포트] 이민으로 성공한 '내슈빌의 기적'

내슈빌의 성공 사례가 모든 도시에서 똑같이 재현되기는 어렵다. 하지만 백악관의 시실리아 무노즈 국내정책위원회 국장은 몇 가지 가이드라인을 제시한다. 먼저 이민자들에게 영어를 가르치는 것이 가장 기본 중의 기본이라고 설명한다. 하지만 거기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경제적으로 자립하고 의료 시스템에 접근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한국에서도 이민자나 다문화 가정에 대한 지원과 관심이 커지고 있지만 턱없이 부족한 실정이다. 한국의 내슈빌은 언제쯤 나타날까.

☞ 본 기사는 <머니위크>(www.moneyweek.co.kr) 제395호에 실린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