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면 철거 작업을 준비 중인 삼호가든4차 전경. /사진제공=환경보건시민센터
석면 철거 작업을 준비 중인 삼호가든4차 전경. /사진제공=환경보건시민센터

최근 서울 서초구 재건축아파트 3곳에서 약 215톤의 석면을 해체한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이를 둘러싼 안전문제가 화두로 떠올랐다. 당장 수도권에서만 재개발 대상 주택이 100만가구가 넘어 우려를 씻어낼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는 목소리가 높다.

환경보건시민센터(이하 환경센터) 조사에 따르면 서울 서초구 재건축 정비사업이 진행 중인 잠원동 반포한양아파트와 반포동의 삼호가든4차, 서초한양 등 3곳에서는 지난달 말부터 이달 중순까지 여름방학 기간을 이용해 석면 해체·제거를 진행한다.

애초 여름방학 이전에 석면을 철거하려 했으나 학부모의 반발로 방학 기간으로 미뤄졌다. 이에 한달 안에 대규모 석면을 해체해야 하는 상황이어서 환경오염 우려가 크다는 게 환경센터의 주장이다.


단기간에 많은 양의 석면을 해체하다 보면 안전수칙이 제대로 지켜지지 않을 가능성이 높고 내부를 완전히 차단하고 일정한 압력을 유지하는 장치를 설치해야 하는 등 준비 작업에만 상당한 시간이 걸려 한꺼번에 많은 양의 석면을 제거하려면 무리를 하는 수밖에 없다는 것.

한양아파트 재건축을 진행 중인 GS건설 관계자는 이에 대해 "석면 철거작업을 하면서 석면농도 데이터를 하루에도 몇번씩 서초구에 보고한다. 그 데이터는 서초구 홈페이지를 통해 확인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지난달 29일 고용노동부에서 현장을 점검해 아무 이상 없다는 결론이 났다"면서 "제대로 밀봉한 상태로 작업을 진행했으며 철거가 이미 끝나 논란의 여지가 없다"고 말했다.

대우건설(삼호가든4차) 관계자 역시 "일각에선 석면 해체작업을 '주민에게 알리지 않았다'고 주장하는데 사실이 아니다. 지난 5월8일부터 지난달 22일까지 5~6차례 학교와 주민 등을 상대로 공청회를 열었다"며 "모든 작업은 규정에 맞춰 진행된다"고 해명했다.


서울 마포구 공덕동 재개발 1-54지구에서 발견된 석면폐기물. /사진제공=환경보건시민센터
서울 마포구 공덕동 재개발 1-54지구에서 발견된 석면폐기물. /사진제공=환경보건시민센터

◆ "괜찮다" 해명 믿고 싶지만…

시공사들과 서초구, 감리업체 등은 실외 석면 노출 기준을 준수했기 때문에 문제가 없다는 입장이지만 뒷맛은 개운치 않다. 전문가들은 기준이 허술해 석면 노출 실태를 제대로 감시하지 못한다고 지적한다.


석면안전관리법(2012년 4월29일 시행)에 따라 작업장 입구나 거주자 주거지역 등에서 0.01/cc 이하를 만족해야 하고 대부분 작업장이 이를 지키고 있으나 안전을 장담할 수 있는 수치는 아니어서 더욱 엄격한 안전기준이 필요하다는 것.

한 환경전문가는 "석면이 외부에서 검출됐다는 사실만으로도 안전조치가 충분하지 않았다는 방증"이라며 "뭉진 형태의 석면이 외부로 비산되면 주위로 흩어져 기준치를 넘기 힘들다"고 설명했다.


철거 이후 공사 현장 관리가 제대로 되지 않아 석면이 함유된 폐기물이 방치되는 사례도 있다. 지난 3월 포스코건설이 공사를 진행한 서울 공덕동 한 주상복합 아파트 건축 현장에서 백석면이 함유된 석면 슬레이트 조각이 다수 발견됐다.

이 현장 인근에는 공덕역과 초·중·고교, 대형 아파트 단지 등이 있다. 석면 철거 작업이 올해 초 이뤄졌다는 점을 고려하면 최소 2개월 이상 석면 포함 폐기물에 시민이 무방비로 노출된 셈이다. 고용노동부는 해당 철거업체를 기소의견으로 검찰에 송치했다.

지난 2010년에는 서울 잠실구장과 부산 사직구장 등 프로야구장 곳곳에서 석면 골재가 발견됐다. 문제는 환경부의 대처였다. 환경부는 "야구장 바닥에 물을 뿌리면 괜찮다"며 구단 측의 경기 강행 요구를 수용했다.

경기가 있는 날이면 관객과 선수, 심판을 비롯해 수만명이 3~4시간 동안 석면에 노출된 셈이다. 이른바 '침묵의 살인자'로 불리는 석면은 1급 발암물질이다. 일시적 노출이나 간접 노출로도 15~40년의 잠복기를 거쳐 폐암, 악성중피종, 석면폐 등을 유발한다.

서윤택 한국환경공단 석면구제팀장은 "석면해체작업자나 인근 근로자가 아닌 환경성 노출로 인한 석면 노출 피해자가 최근 5년 새 1700명이나 된다"면서 "도심 재건축·재개발 단지 인근 주민 등도 안전하다고 장담할 수 없다"고 말했다.

◆ '석면공포' 확산… 정부 대책 시급

재건축·재개발사업과 리모델링 과정에서 발생하는 건축폐기물이 재활용되는 것도 문제다. 콘크리트 건축폐기물을 모아 잘게 부서 순환골재라는 이름으로 재활용하는데 석면이 함유된 건축자재를 철저하게 골라내지 않으면 이 과정에서 심각한 석면비산문제가 발생한다.

순환골재들은 주로 주차장이나 운동장 등에서 여러 형태로 사용된다. 이를 조사해 보면 종종 석면슬레이트 조각과 같은 석면 함유물질이 발견된다. 사무실 천장에 사용한 천장텍스의 경우 쉽게 부서지기 때문에 순환골재에 포함되면 더 위험하다.

지난 2011년 남한강과 낙동강 4대강사업 현장 여러 곳에서 석면이 함유된 골재를 자전거길과 바닥골재, 하천조경석 등에 사용한 사실이 드러난 바 있다. 2013년 19대 국정감사에서 문제가 불거졌으나 당시 자치구는 예산을 핑계로 방치했다.

상황이 이렇지만 국회는 지난달 6일에서야 폐기물의 종류와 재활용 유형을 세분화하고 폐기물의 재활용 원칙과 취급 기준 등의 준수사항을 마련한 '폐기물관리법' 일부개정법률안을 통과시켰다. 이 법은 내년 7월에나 시행된다.

임흥규 환경센터 석면팀장은 "현재 석면의 제조·수입·생산, 석면함유 건축물, 석면 해체·철거, 폐석면 처리를 담당하는 정부부처가 여러곳으로 분산돼 관리는 물론 책임소재를 따지기도 어렵다"며 "통합관리를 위해 채널을 단일화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임 팀장은 그러면서 "공사 현장 등에서 석면 농도가 기준치 이상으로 나온다고 해도 과태료 200만원을 내는 것이 고작"이라며 "정부가 하루라도 빨리 실질적이고 효율적인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 본 기사는 <머니위크>(www.moneyweek.co.kr) 제395호에 실린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