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이 지난 17일 10대 그룹 재벌 총수로는 처음으로 국정감사 증인대에 올랐다. 3년 전 국감에 불참해 벌금 1000만원을 냈던 신 회장이 올해는 왜 달라졌을까. 걷잡을 수 없이 번진 反롯데 정서를 총수가 직접 나서 진화해야 한다는 절박한 판단이라는 분석이다. 지난 7월 ‘형제의 난’으로 촉발된 일본기업 논란, 거미줄 순환출자구조 등이 그를 피치 못할 ‘국감 청문회’의 주인공으로 만들었다는 것.


동기야 어쨌건 신 회장의 정면돌파는 성공적이라는 평이 많다. 신 회장은 국감 내내 시종일관 공손한 자세를 유지하면서도 고강도 질문에는 오히려 단호하게 답변하는 모습을 보였다.

“의원님이 지적한 부분에 대해서는 개선하겠습니다”, “저도 공감합니다” 등의 반복적 멘트를 수차례 사용하긴 했지만 답변을 얼버무리거나 감추는 듯한 모습은 그보다 적었다. 당초 통역관을 배치해야 하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나올 정도로 한국말에 서툰 모습이었지만 국회 정무위원회 소속 여야 의원들의 날선 질문을 이해함과 동시에 한국어로 즉답을 이어나가는 데도 큰 무리가 없었다.


신 회장은 이 자리에서 기업 정체성 논란과 기업 지분구조, 순환출자 문제 해소 등에 대한 계획을 구체적으로 밝혔다. 이로써 한 고비는 넘긴 분위기. 하지만 앞으로도 몇차례 고비를 넘어야 한다. 신 회장이 쥐고 있는 롯데 운명에는 어떤 변수가 남아 있을까. 

/사진=임한별 기자
/사진=임한별 기자

◆ 변수1. 10월中 순환출자구조 해소하나

순환출자구조의 해소가 무엇보다 중요하다. 롯데그룹의 경우 416개 계열사가 뒤엉켜 순환출자를 하다 보니 지배구조에 대해 의문이 많았던 상황. ‘롯데家 형제의 난’이 일어난 원인을 본인들도 다 모르는 지배구조 때문이라고 보는 시각도 있었다.

따라서 순환출자를 해소하고 지배구조를 개선하는 게 롯데가 해결해야 할 현안으로 떠올랐다. 신 회장 역시 이 같은 지적을 인지한 상황. 그는 국감에서 “오는 10월까지 그룹 순환출자 80%를 해소하겠다”고 밝혔다.


“롯데가 순환출자 문제가 많은데 이 약속을 지킬 수 있냐”는 우려 섞인 질문에도 “롯데건설이 보유한 롯데제과 지분을 최근 샀다”며 “나머지도 10월 말까지 할 수 있다고 보고 받았다”고 장담했다.

하지만 이는 근원적인 순환출자구조 개선은 아니라는 목소리가 높다. 단기간 안에 80%를 해소한다는 것은 그룹의 기본적인 관계들, 다시 말해 지나치게 전근대적인 구조들을 정비하는 수준일 뿐 근본적인 순환출자구조 자체를 해소하는 건 아니라는 지적이다. 이 경우 롯데의 지배구조 문제가 또 다시 불거질 가능성이 크다. 

/사진=뉴스1 민경석 기자
/사진=뉴스1 민경석 기자

◆ 변수2. 호텔롯데 상장, 방식은?

내년 2분기 안으로 예정된 호텔롯데 상장도 무시할 수 없는 변수다. 이 과정에서 중요한 것은 상장 방식이다. 구주 발행(기존 주주의 주식을 매각) 방식이냐 신주발행이냐에 따라 한국과 일본의 희비가 엇갈리기 때문. 먼저 구주를 팔면 일본주주들이 10조~15조의 상장차익을 가져감과 동시에 국내에는 한 푼의 세금도 내지 않은 채 일본에만 세금을 납부하게 된다. 또 다시 ‘일본기업’ 논란에 휘말릴 수 있는 대목이다.


이 같은 우려는 국감에서도 제기됐다. 김기준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은 “한국에서 돈 벌고 한국에서 키워놨는데 세금은 일본에만 내는 꼴”이라며 “일본기업이 아니라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 추진한 호텔롯데 상장이 되레 일본기업임을 확인시켜 주는 꼴이 될 수 있다”고 역설했다.

신 회장은 이에 “20~30%의 지분을 신주로 발행해 상장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구주매각이 아닌 신주를 확대한다는 것은 상장이익을 국민과 함께 나누고 투자여력을 만든다는 의미에서 재계는 긍정적이라고 보고 있다. 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약속의 실천 여부다. 

정무위원회 공정거래위원회 국정감사에 증인으로 출석하고 있는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 /사진=머니위크 임한별 기자
정무위원회 공정거래위원회 국정감사에 증인으로 출석하고 있는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 /사진=머니위크 임한별 기자

◆ 변수3. 형제의 난 END? AND?

끝난 듯 끝나지 않은 형제의 난이 마지막 변수다. 신 회장은 형제간 경영권 분쟁을 묻는 질문에 “왕자의 난은 끝났으며 경영권 재분쟁 가능성은 없다”고 확신했지만, 여전히 분쟁의 불씨는 남아있다. 롯데그룹 지배구조 정점에 있는 광윤사가 그 핵심.

이날 국감에서 밝혀진 광윤사 지분구조를 보면 신 회장이 38.8%, 신 회장의 형인 신동주 전 일본롯데홀딩스 부회장이 50%를 소유하고 있다. 나머지는 신격호 총괄회장과 그의 부인, 장학재단이 소유하고 있다. 형제의 한국 상장 계열사 지분은 거의 비슷하다. 

현재로서는 형이 유리하다. 신 회장이 지분상 형을 압도하지 못했고 광윤사의 경영권 역시 장악하지 못해 지분싸움이 빚어질 여지가 크다. 신 회장이 승리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일본롯데홀딩스 종업원지주, 임원지주 등 계열사 주주들의 협조를 받는 것. 일본 종업원과 임원들에게 의지할 수밖에 없다는 말이다. 종업원 수는 밝혀지지 않았지만 실제 이들 중에는 지분이 10%가 넘는 이사도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전문가들은 이런 형태의 지분구조로는 롯데의 경영권 분쟁을 종식시킬 수는 없다고 입을 모은다. 다만 신 회장은 “경영능력으로 (이러한 분쟁을) 안정시킬 수 있다”는 입장이다.

하지만 신 회장이 일본 종업원들의 마음을 얻지 못할 경우 애매해진다. 형의 반격을 대비해야 하기 때문이다. 결국 예상된 변수를 얼마나 잘 대응하느냐에 신 회장이 거머쥔 롯데의 운명이 달려있는 셈이다.

☞ 본 기사는 <머니위크>(www.moneyweek.co.kr) 추석합본호(제402호·제403호)에 실린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