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커스] 보험사 '가격 자율화', 누가 웃을까
박효선 기자
10,107
공유하기
보험사 무한경쟁시대가 막을 올렸다. 보험상품 개발과 보험료 결정에 대한 금융당국의 각종 규제가 폐지된다. 임종룡 금융위원장이 던진 금융개혁 승부수다. 규제완화를 통해 보험사 간 자율경쟁을 유도하고 소비자의 편익을 늘리겠다는 취지에서다.
업계에서는 기대와 반감이 교차한다. 일각에서는 보험소비자의 혼란만 가중시킬 것이란 지적도 나온다. 특히 가격 자율화가 앞으로 어떤 영향을 미칠지 관심이 쏠린다.
![]() |
보험사 CEO만난 임종룡 금융위원장. /사진=뉴스1 DB |
◆22년 만의 보험업 개혁 ‘통제→자율’
이달 중순 ‘보험산업 경쟁력 제고방안’이 발표된다. 이에 앞서 지난 1일 임종룡 금융위원장은 정부가 구상해온 방안을 일부 공개했다. 임 위원장이 발표한 보험개혁방안에는 보험업계의 요구사항이 대부분 담겼다. 상품과 가격에 대한 규제와 통제를 사실상 없애 보험업계의 경쟁력을 끌어올린다는 게 주요 골자다. 당국이 일일이 간섭하지 않겠다는 얘기다.
우선 인가제도처럼 운영돼온 보험상품 사전신고제를 폐지하고 사후보고제로 전환하기로 했다. 표준약관제도는 단계적으로 없앨 계획이다. 실손·자동차보험을 제외한 8개 표준약관(생명·손해·질병·상해 등)은 2017년 초까지, 나머지는 2018년 초까지 단계적으로 자율화된다. 사전신고제와 현재 표준약관제도가 보험사들의 다양한 상품 출시를 막는다는 판단에서다.
특히 표준이율을 내년 1월부터 폐지해 보험료 산정에 대한 재량권을 보험사에 모두 넘기기로 결정했다. 다만 가입자가 많고 국민생활과 밀접한 관계가 있는 의료실손보험과 자동차보험은 2년 동안의 유예기간을 두고 단계적으로 자율화할 방침이다.
보험사들은 환영하는 분위기다. “지금까지 당국이 한 일 중 가장 마음에 든다”고 입을 모았다. 한 대형보험사 관계자는 “다른 금융권에 비해 보험권은 강한 규제를 받아왔다”며 “그런데 이번 제도 시행으로 다양한 상품을 시장에 내놓을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되면 소비자에게 다양한 선택권을 제공할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했다. 이어 “대신 규제 탓을 할 수 없는 만큼 오로지 실력으로 승부해야 한다”며 “상품경쟁이 심화될 것으로 예상돼 앞으로 누가 살아남을지 장담할 수 없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양극화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도 적지 않다. 신상품 개발과 보험료경쟁이 치열해질수록 자본력과 많은 인력을 갖춘 대형사가 우위를 점할 가능성이 높아서다. 따라서 중소형보험사들은 바짝 긴장하는 모습이다. 한 중소형보험사 관계자는 “솔직히 크게 기대하지 않는다”며 “가격경쟁력을 내세웠던 중소형사로서는 오히려 최악의 상황을 맞닥뜨릴 수 있다”고 우려했다.
보험연구원도 경쟁력을 확보하지 못한 보험사들은 앞으로 살아남기 어려울 것으로 내다봤다. 보험연구원은 지난 8일 ‘보험산업 전망과 과제’ 발표에서 “보험시장 경쟁이 본격화될 것으로 보여 보험사는 상품개발·자산운용·판매채널 등에서 강점을 부각시켜 고유 경쟁력을 갖춰야 한다”며 “판매자 책임도 강화해 보험산업의 신뢰도를 높여야 한다”고 제안했다.
![]() |
/사진=뉴스1 DB |
◆선택권 넓혔지만… 소비자 보호 ‘소홀’·혼란 가중 지적도
관건은 소비자에게 얼마나 유리한 혜택이 주어지느냐다. 다양한 보험상품을 다양한 가격에 판매해 소비자의 선택 폭이 넓어질 전망이지만 실제로 소비자에게 많은 혜택이 돌아갈지는 미지수다. 자율화의 허점이 악용될 소지가 있다는 시각이 만만찮다. 가장 논란이 되는 부분은 보험료 자율화다. 표준이율 폐지로 부담을 덜게 된 보험사들이 예정이율을 내려 보험료를 올릴 것이란 전망에 무게가 실린다. 그동안 많은 보험사가 당국의 규제를 의식해 손실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한 것도 보험료 인상요인 중 하나다.
그러나 보험사들은 시장경쟁 논리에 따라 적정선을 찾을 것이라며 보험료가 무작정 오르지는 않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보험사 한 관계자는 “비슷한 상품이 출시되면 시장의 기능에 따라 가격은 자연스레 적정선을 찾아가기 때문에 보험료가 무턱대고 오르지는 않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설령 보험료가 비싼 상품이 나오더라도 그 상품이 높은 가격만큼의 가치를 지녔다면 소비자에게는 좋은 상품일 것”이라며 “상품의 보험료와 가치에 대한 판단은 소비자의 몫으로 돌려야 한다”고 강조했다.
사후신고제에 대한 실효성 논란도 제기됐다. 보험업계 한 관계자는 “사실 그간의 사전신고제가 독창적 상품 출시를 막았다고 보기는 어렵다”며 “따라서 사후신고제가 다양한 상품 출시에 얼마나 많은 도움이 될지 알 수 없다”고 지적했다. 그는 “보험사 입장에서도 독창적이라고 생각한 상품을 출시했다가 이 상품이 부실상품으로 드러난다면 사후신고제로 인해 더 큰 제재를 받을 수 있어 차라리 사전신고제가 서로에게 도움이 된다”고 덧붙였다. 사후신고제로 바뀌더라도 결국 사전신고제에 대한 업계 관행이 지속될 것이라는 얘기다.
무엇보다 소비자 보호대책이 보강돼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금융소비자원 관계자는 “보험상품은 일반 제조업체의 상품과 달라 부작용이 발견돼도 리콜할 수 없는 특성을 가졌는데 사전규제가 아닌 사후규제를 강화하겠다는 금융당국의 입장을 이해할 수 없다”며 “당국의 규제완화는 업계에만 권한을 잔뜩 쥐어줄 뿐 소비자에 대한 배려는 찾아보기 힘들다”고 비판했다. 이번 보험개혁방안이 소비자 보호가 아닌 선택권만 넓히는 수준에 그친다는 지적이다.
이어 그는 “선택의 폭을 넓히려면 소비자가 상품을 쉽게 비교하고 판단할 수 있도록 소비자의 눈높이에 맞춰 정보를 제공해야 하는데 오히려 혼란만 부추기게 생겼다”며 “특히 온라인보험슈퍼마켓을 통해 단순히 몇개의 상품을 저렴한 순서대로 나열해 비교해준다는 것은 말이 안된다”고 일갈했다. 일부 상품의 가격만 단순하게 비교 공시한다면 오히려 왜곡된 정보를 제공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런 지적에 대해 당국은 소비자 보호를 강화하겠다는 입장을 내놨다. 금융위 관계자는 “아직 세부적인 내용을 검토 중이어서 자세한 내용을
언급하기는 어렵지만 소비자에게 손실을 끼친 보험사에는 강력한 처벌을 내릴 계획”이라고 전했다.
☞ 본 기사는 <머니위크>(www.moneyweek.co.kr) 제405호에 실린 기사입니다.
<저작권자 ⓒ ‘성공을 꿈꾸는 사람들의 경제 뉴스’ 머니S,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보도자료 및 기사 제보 ( [email protected]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