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버스토리] 사랑도 도망갈 것 같은 '사랑길'
'위례길'이 사라졌다 / 르포 - 쑥대밭이 된 현장
차완용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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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
팔당대교 아래 한강변을 바라보며 검단산과 남한산의 정취를 만끽할 수 있는 아름다운 ‘위례길’. 하지만 어느 날 갑자기 길 허리가 파헤쳐지고 끊어졌다. 1600년 전 백제의 숨결을 간직한 이 곳이 어쩌다 이렇게 된 걸까. <머니위크>는 개발이라는 미명 아래 사라져가는 그 현장을 찾아 무엇이 문제인지 집중 조명해봤다.
아쉬웠다. 안타까웠다. 그리고 무엇보다 화가 났다. 하고 싶은 이야기는 많지만 ‘한낮의 어둠’을 봤다는 표현이 가장 적절할 듯싶다.
지난 2월 ‘위례사랑길’ 중간쯤 위치한 경기도 하남시 배알미동 169번지 일대 3491㎡의 소유자가 변경된 후 석연치 않은 인허가와 개발이 진행된 현장을 둘러보며 느낀 솔직한 심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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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머니위크 성동규 기자 |
◆ 강변 아름다움 품은 ‘위례사랑길’
지난달 13일 오후 2시, 유난히도 화창하고 구름이 높게 떠있는 가을날에 하남시를 대표하는 관광명소 위례길을 걸었다. 덥지도 춥지도 않았던 이날, 취재차이긴 하지만 매캐한 매연이 가득한 서울도심을 벗어나 푸른 숲의 맑은 공기를 즐기며 ‘하남위례길’을 거닐 생각을 하니 발걸음에 흥이 났다.
위례길은 사랑길, 강변길, 역사길, 둘레길 등 4코스가 있다. 이 가운데 최근 일부 부지가 개발되면서 논란이 일고 있는 사랑길을 택해 걸었다. 일명 위례길 1코스라 불리는 사랑길은 산곡천이 한강과 만나는 지점에서 팔당댐에 이르는 5㎞ 구간이다. 닭바위, 연리목, 도미나루, 두껍바위, 배알미동을 지나게 된다. 산곡천을 기점으로 동쪽이 사랑길, 서쪽이 강변길이다.
본격적인 취재를 위해 사랑길 출발점인 닭바위부터 걷기 시작했다. 한강을 옆에 끼고 걷는 코스라 그런지 강바람이 시원하고 시야가 확 트인다. 두명이 나란히 걸을 수 있는 사랑길 왼편으로 펼쳐진 한강은 그야말로 예술이다. 왜 이곳을 사랑길이라고 명명했는지 알 수 있었다.
이렇게 길을 조금 걷다 보니 사랑길이 한 건물로 이어졌다. 이곳은 다름 아닌 카페. 강변을 배경으로 한 사랑길이 중간에 끊기는 점은 아쉬웠지만 산책하며 마시는 커피도 나름 괜찮겠다 싶었다.
◆ 사랑길 끊긴 자리 ‘출입금지’ 팻말
카페가 있는 사랑길을 빠져 나오자 문제의 부지가 나타났다. 사랑길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우회할 길을 표시한 이정표조차 보이지 않는다. 대신 ‘출입금지’라는 새빨간 글씨의 푯말이 엉성하게 세워져 있다.
사랑길이 끊기는 길 앞에는 검정색 띠가 사람의 출입을 막고 있다. 왠지 스산하다. 취재차 이곳을 방문한 기자조차 발길을 옮기기 꺼려질 정도다. 그래도 들어가 봤다.
출입을 막은 부지 안쪽으로 사랑길에서 가장 유명한 도미부인의 설화가 깃든 ‘도미부인 나루터’를 소개하는 안내판이 보였다. 또 도미부인 나루터로 내려가는 나무계단이 눈에 띄었지만 곳곳이 파손됐고 내려가는 입구와 주변은 이미 땅이 파헤쳐진 상태였다. 주변상황을 볼 때 한동안 이곳을 찾아온 이들이 없었음을 짐작할 수 있었다.
이렇듯 망가진 사랑길과 도미부인 나루터를 보니 시민들의 불만이 이해가 됐다. 이때 조금 전 지나쳐온 카페 앞에 한 남자가 보였다. 출입금지구역을 빠져나와 그에게 어찌된 영문인지를 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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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머니위크 성동규 기자 |
◆ 길 끊긴 후 찾지 않는 사람들
그는 ‘영농을 위한 성토 및 석축설치’라고 쓰인 플래카드를 가리키며 “지난 7월 갑자기 건장한 체격의 사람들이 몰려와 땅에 말뚝을 박고 자신들의 사유지라며 굴삭기를 가져와 사랑길을 망가트렸다”며 “여기는 분명 그린벨트지역으로 개발이 제한된 곳인데 어찌된 영문인지 허가가 났다”고 설명했다.
이어 “그동안 진행된 공사가 위례길을 망가트리고 대지가 낮은 하천에는 흙을 부어 대지를 높였다”며 “말이 영농을 위한 성토지 누가 봐도 투기나 다른 속셈이 있는 행위로 보인다”고 주장했다. 그의 말을 듣고 문제의 땅을 둘러보니 한편에 심어진 십여포기의 배추만 초라하게 땅위를 차지하고 있었다.
사랑길을 계속 이용하기 위해선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물었다. 그는 카페로 들어가는 차량용 출입구를 가리키며 “저쪽으로 나가 다음 사랑길 출입구가 나올 때까지 국도 가변 인도를 이용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그는 이어 “사랑길의 핵심인 도미부인 나루터가 있는 땅에 출입이 제한된 다음부터는 사랑길을 찾는 발길이 뚝 끊겼다”고 덧붙였다.
그의 말을 듣고 보니 강변을 둘레로 한 수려한 산책로를 이용해 여기까지 오는 동안 마주친 사람이라곤 노부부로 보이는 할머니와 할아버지뿐이었음이 떠올랐다.
그의 설명대로 국도 가변 인도를 이용해 다음 출구까지 걸었다. 7분가량 걸리는 인도 옆에는 수십대의 차량이 매연을 내뿜으며 빠른 속도로 지나쳐갔다. 그 좋은 강변 사랑길을 놔두고 차량이 쏜살같이 지나다니는 이곳을 걸어야 하는 현실이 아쉬웠다.
다시 사랑길로 들어서 두껍바위 표지를 지나 옹벽 옆으로 난 길을 따라갔다. 눈앞에는 배알미대교와 팔당댐이 보였다. 그리고 수자원공사 담벼락을 따라난 길엔 담쟁이덩굴이 울창하게 뻗어 있었다. 벌써 단풍이 들기 시작해 조만간 담벼락 전체를 붉게 물들일 기세다.
담벼락이 끝날 즈음에 나타나는 시멘트로 된 계단을 올라가면 배알미동이다. 여기서 몇걸음만 더 가면 사랑길의 끝지점인 팔당댐이다. 여기까지 오는 동안 아름다운 경치에 몇번을 감탄했는지 모른다.
사랑길을 거닐며 내내 머릿속에 맴도는 의문이 있었다. 개인의 재산권이 먼저인지, 많은 이들이 함께 자연을 나누고 공유할 수 있는 환경조성이 먼저인지. 답을 찾을 수 없었지만 한가지 결론에는 도달했다. 누군가 기자에게 현재 상태의 사랑길을 다시 찾겠냐고 묻는다면 두번 다시 찾지 않겠노라고 답변할 것이라는 사실이다.
☞ 본 기사는 <머니위크>(www.moneyweek.co.kr) 제408호에 실린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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