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버스토리] '벽돌밀기 게임'하는 주차 전쟁터
대한민국은 주차 전쟁중 / 르포 - 전쟁터 가보니
최윤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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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
대한민국은 지금 ‘주차전쟁’ 중이다. 지난해 자동차 등록대수가 2000만대를 돌파했지만 주차장이 그 속도를 따라잡지 못하기 때문이다. <머니위크>는 주차 스트레스에 몸서리치는 운전자들을 조명하고 불법주차로 발생하는 보상과 견인문제를 살펴봤다. 아울러 주차비용을 줄일 수 있는 방법도 모색해봤다.
지난 11월17일 아침 5시30분, 한창 출근준비를 하는데 전화벨이 울린다. 고개를 갸우뚱하며 전화를 받으니 수화기 너머에서 대뜸 “차 빨리 빼주세요”라는 날선 목소리가 날아온다.
아차 싶었다. 지난 밤 술을 마시고 대리운전으로 귀가했는데 주차장에 공간이 없어 이면주차를 했던 것이 생각났다. 주차 후 기어를 중립으로 맞춰놔야 하는데 대리운전 기사에게 이를 부탁한다는 걸 잊은 것이다.점퍼를 대충 걸쳐입고 헐레벌떡 1층 주차장으로 내려가니 이웃집 아저씨가 잔뜩 찌푸린 표정으로 서있다. “이렇게 주차하면서 사이드까지 채워 놓으면 어쩌냐”는 아저씨의 핀잔에 연신 사과하며 차를 이동했다.
◆오래된 아파트단지, ‘중립주차’ 기본
기자가 사는 집은 지은 지 30년이 다 된 오래된 아파트로 지하주차장이 없다. 아파트 앞에 마련된 50여대를 수용할 수 있는 지상주차장이 전부다.
퇴근시간, 먼저 들어오는 차량이 칸을 차지하면 나머지 차량들은 주차구획선이 그려지지 않은 곳에 제각기 주차한다. 쓰레기장 근처에 차 한대가 들어설 공간까지 모두 차면 주차구획에 직각주차된 차 앞뒤로 평행주차를 해야 한다. 평행주차 시에는 차를 밀어 직각주차 차량이 빠져나갈 수 있도록 기어레버를 ‘N’(중립)으로 맞추는 것이 이곳에서는 상식이다.
하지만 중립주차가 되지 않는 차량도 있다. 얼마 전 취재를 위해 고가의 수입자동차를 빌린 적이 있는데 ‘중립’ 상태에서 시동이 꺼지지 않을 뿐 아니라 시동을 끈 후 시프트록(브레이크 페달을 밟지 않으면 변속레버가 작동되지 않도록 하는 안전장치) 해제를 통한 기어변경도 불가능해 요금을 내고 근처 공영주차장에 주차할 수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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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프트록 해제 버튼. /사진=최윤신 기자 |
차후 문의를 통해 이 차량의 경우 기어노브 내부에 시프트록 해제버튼이 있다는 사실을 알았지만 이렇게 꽁꽁 숨겨놓은 것으로 미뤄볼 때 ‘중립주차’를 위한 기능이라기보다는 차량에 문제가 발생한 상황이나 엔지니어를 위한 기능인 것으로 판단된다.
통상 독일차와 미국차의 시프트록 해제버튼은 내부에 숨어있는데 자동차업계는 이를 “해당국의 주차여건과 중립주차에 대한 인식이 우리와 다르기 때문”이라고 본다. 이들 국가의 주차여건이 우리나라보다 상대적으로 낫기도 하지만 ‘중립주차’의 안전문제에 대한 경각심이 크다는 것.
중립주차의 안전문제는 자주 지적돼왔다. 기자가 사는 아파트단지에서도 중립주차로 인한 사고가 적지 않았다. 특히 주차장 입구 부근의 지면에 약간의 경사가 있어 중립주차 차량을 밀다가 화단을 들이받은 일도 있었다.
따라서 몇몇 수입차 소유자들은 아파트단지 외부의 대로변에 차를 주차하기도 한다. 수입차를 보유한 한 주민은 “현실적으로 중립주차가 불가능한 데다 남의 손에 차가 밀려다니는 것도 싫다”며 “대로변에 덤프트럭 등이 주차된 곳이 있어 그곳에 차를 주차하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벽돌밀기 게임’ 하는 주차장
◆‘벽돌밀기 게임’ 하는 주차장
주차관련 사례를 수집하던 중 지인을 통해 ‘독특한 광경’을 볼 수 있는 곳을 제보받았다. 성남시의 ‘황새울 공원’ 주차장이 그곳. 서현역과 수내역 사이에 위치한 이 주차장은 근방의 유일한 무료주차장이어서 근처의 직장인들이 주차하는데 퇴근시간만 되면 진풍경이 벌어진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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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새울 공원 주차장 전경. /사진=최윤신 기자 |
퇴근시간 이전인 오후 4시쯤 이곳을 찾았다. 차량 30대를 주차할 수 있는 구획선이 있었는데 60대가 넘는 자동차가 서 있었다. 구획선에 직각주차된 차량 뒤로 3겹의 차량이 평행주차돼 있고 입구와 출구부분을 제외하고는 더 이상 자동차가 들어설 공간이 없었다.
쌀쌀한 날씨에 공원 이용객은 찾아볼 수 없는 상황. 심지어 공원매점도 문을 닫아 말 걸어볼 사람이 없었다. 찬찬히 주차장을 둘러보니 ‘공원 이용목적 외 주차를 자제해달라. 이중주차를 하지 말라’는 현수막이 입구에 걸려있었다. 이곳의 주차된 차량들이 ‘공원 이용목적’이 아니라는 것을 간접적으로 보여준다. 차를 오래 방치하는 경우도 있는지 공원주차 이용안내 표지판에는 “48시간 이상 방치한 경우 견인조치 할 것”이라는 내용이 빨간 글씨로 강조돼 있다.
이렇게 주차된 차들은 어떻게 주차장을 나서는 것일까. 입구나 출구 근처에 있는 차량들은 나갈 수 있겠지만 중간에 박힌 차들은 도무지 나갈 방도가 보이지 않는다. 관리인에게 차키를 맡기고 운영하는 주차장의 경우 차를 넣고 뺄 수 있겠지만 자기 앞의 모든 차주를 호출하지 않고서는 도무지 뺄 방법이 없어 보인다.
그러던 찰나 한 남성이 뛰어왔다. 공원 근처 건물 입주사에서 근무하는데 장모님이 편찮으시다는 연락을 받고 퇴근을 서둘렀다는 A씨(38)는 발을 동동거리면서 주차장 한가운데 박힌 차를 빼낼 방법을 강구하더니 맨 앞차부터 차례로 밀기 시작한다.
갈 길이 급하다기에 일단 그가 하는 대로 도왔다. 출구쪽 공간으로 맨 앞줄의 차부터 차례로 밀기를 수차례. 자신의 차를 움직일 공간이 생기자 차에 올라타 오른쪽으로 차량을 움직여 놓고 다시 내려 밀었던 차를 다시 당긴다. 20분간 차에 오르고 내리기를 6차례가량 반복하자 드디어 자동차가 나갈 길이 생긴다. 마치 어린 시절 하던 ‘벽돌밀기 게임’을 보는 듯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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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단 넘어 출차하는 모습. /사진=최윤신 기자 |
6시가 넘어가니 하나둘씩 사람들이 밀려온다. 도로방면 주차구획선에 주차된 차로 걸어가는 사람에게 차 미는 것을 도와주겠다고 했더니 “괜찮다”며 이내 차에 탑승한다. 눈앞에 첩첩산중으로 차가 주차돼 있는데 어떻게 나갈 생각인 걸까 싶어 지켜봤다. 그는 시동을 걸더니 후진으로 화단 턱을 넘어 인도로 진입했다. 이런 일이 처음이 아닌 듯 차량 뒷범퍼 아래쪽에는 긁힌 자국이 가득했다. 이후로는 벽돌게임이 반복됐고 오후 8시가 넘어가자 30여대의 차량이 빠져나가 주차장 내 모든 차량은 한번만 차를 밀면 쉽게 빠져나갈 정도가 됐다.
취재 중 만난 B씨(45)는 매일같이 이런 고생을 하는 것이 힘들지 않냐는 기자의 질문에 “회사 주차장을 이용하려면 정기권을 끊어야 하는데 비용이 만만찮다”며 “아이 학원비와 맞먹는 돈을 주차에 쏟아붓는 것이 너무 아깝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이렇게나마 주차할 수 있어서 다행”이라며 쓴 웃음을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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