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커스] ‘거래소’를 위한 상장입니까
장효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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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증시에 상장한 새내기주의 주가가 곤두박질치고 있다. 시초가가 공모가를 밑도는 것은 다반사고 주가가 공모가의 절반을 못따라가는 경우도 종종 발생했다. 시장에서는 증시가 하락국면으로 접어들었기 때문에 공모주가 탄력을 받지 못한 것으로 본다.
하지만 최근 코스피·코스닥지수는 지난해에 비해 높은 수준으로 올랐다. 상장종목들이 평균적으로 상승세를 보였다는 뜻이다. 결국 신규상장사의 부진이 과잉공급에서 비롯됐다는 목소리가 커지는 상황. 특히 한국거래소가 금융위원회의 경영평가에서 좋은 등급을 받기 위해 무리하게 상장을 추진한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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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상장은 ‘후다닥’, 주가는 ‘그닥’
지난달 20일까지 코스피시장에 13개, 코스닥시장에 38개 등 총 51개의 기업(스팩 제외)이 증시에 상장했다. 올해가 한달 정도 남은 상황에서 지난해 전체 상장종목 개수인 56개를 바짝 따라잡았다. 상장을 위해 증권신고서를 제출한 기업까지 포함하면 지난해 수준을 훌쩍 뛰어넘을 것으로 예상된다.
하지만 새내기주의 주가는 암울하다. 올해 상장한 51개 종목 중 시초가가 공모가를 밑돈 종목은 19개에 달한다. 지난해 전체를 통틀어 12개에 불과한 것에 비하면 상당히 많은 수다. 통상 공모주는 상장 후 차익실현을 목적으로 투자한다. 시초가가 공모가를 하회한 종목이 많은 것은 투자자들이 매도기회를 잃은 것으로 풀이된다.
상장 이후 주가는 더 씁쓸하다. 지난달 23일 주가를 기준으로 공모가를 넘지 못한 종목이 27개로 집계됐다. 이들은 평균 10~50%에 달하는 낙폭을 보였다. 특히 부진한 성적을 보인 대다수의 종목은 지난달에 상장된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달 11일 코스피시장에 상장된 금호에이치티를 시작으로 이후 상장된 10개 종목의 주가는 모두 공모가를 넘지 못했다. 시초가 또한 엠지메드 한 종목을 제외하고 모두 공모가를 밑돌았다.
증권업계 관계자는 “이 같은 상황은 기관 및 개인투자자가 앞서 투자했던 공모주에서 자금을 회수하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먼저 상장된 공모주가 부진한 모습을 보여 차익실현을 할 수 없게 되자 이도 저도 못한 채 놔두는 상황이라는 것. 이는 결국 한국거래소가 시장 상황을 고려하지 않고 상장 목표치를 맞추는 데만 급급해 벌어진 사태라는 지적이다.
최경수 한국거래소 이사장은 지난달 한 세미나에서 “올해 코스피에 상장하는 기업은 20여곳이고 코스닥에도 140여개 기업이 상장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당초 거래소가 목표로 삼은 것은 올해 코스피 20개, 코스닥 100개 상장이다. 지난해 거래소는 72개의 기업(스팩 포함)을 증시에 상장시켰다. 올해는 두배가 넘는 목표치를 제시한 것이다.
많은 양을 채우기 위해 최경수 이사장은 직접 기업을 방문하기도 했다. 지난 4월 최 이사장은 소셜카지노업체인 더블유게임즈를 찾아 상장을 적극 독려했다. 거래소 이사장이 일반기업을 찾은 것은 처음이다.
이후 국내 매출이 전혀 없어 해외상장을 고려하던 더블유게임즈는 지난달 코스닥시장에 상장됐다. 하지만 시가총액 1조1000억원을 기록하며 화려하게 등장한 더블유게임즈의 주가는 지난달 23일 기준 공모가를 17% 밑돌았다. 시가총액도 8900억원으로 쪼그라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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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거래소, 이익만 챙기면 그만?
신규상장된 종목의 주가와는 상관없이 거래소의 수익은 늘어난 것으로 추정된다. 상장이 늘면서 거래소의 수익을 가늠할 수 있는 거래대금이 눈에 띄게 불어났기 때문이다. 주식거래를 할 때는 유관기관수수료 명목으로 거래소가 거래대금의 일정부분을 가져간다.
코스피시장의 일평균 거래대금은 지난해 3조9834억원에서 지난달 23일 5조4921억원으로 38%가량 늘었다. 상반기 증시가 활황을 보여 거래대금이 늘어난 영향도 있지만 주가가 꺾인 지난 7월부터 월별 일평균 거래대금을 봐도 5조원 안팎에서 움직였다. 코스닥시장의 거래대금은 더 큰 폭으로 늘었다. 지난해 1조9664억원에서 올해 3조5340억원으로 80% 가까이 증가한 것. 코스닥시장의 전체 시가총액은 지난해 연말에 비해 50조원 넘게 늘었다.
이렇게 거래소가 벌어들인 수익은 금융위원회의 경영평가 시 긍정적으로 받아들여질 것으로 보인다. 실제 지난 2013년 32개 준정부기관 가운데 유일하게 최하등급인 E등급을 받았던 거래소는 지난해 기업공개(IPO) 활성화 노력을 인정받아 B등급으로 올랐다.
하지만 시장 상황에 아랑곳하지 않는 거래소의 ‘상장사 모시기’에 대한 부작용은 고스란히 투자자에게 돌아갈 것으로 예상된다. 새내기주의 주가가 벌써부터 떨어지고 있는데 상반기 상장한 종목의 보호예수 물량까지 풀리면 더 하락할 수 있다.
보호예수란 대주주나 특수관계인 등의 지분이 일정기간 동안 유통되지 않도록 막는 것을 말한다. 상장 후 바로 대규모 물량이 시장에 나오면 주가가 폭락할 수 있기 때문이다. 통상 보호예수기간은 6개월에서 1년 정도로 설정된다. 다시 말해 지난해 11~12월 상장한 33개 종목의 1년 보호예수 물량과 지난 5~6월 상장한 12개 종목의 6개월 보호예수 물량이 연말에 단번에 풀릴 수 있다는 뜻이다.
한 증권업계 관계자는 “물량 부담으로 단기간에 주가가 급락할 우려가 있어 투자자의 주의가 요구된다”며 “미리 보호예수가 해제되는 시점을 파악해 대비해야 할 것”이라고 조언했다.
또 많은 상장을 추진하다 보면 상장심사가 허술해져 덜 성숙한 기업이 상장할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된다. 실제 코스피시장에 연말 상장을 앞둔 잇츠스킨의 경우 상장 예비심사기간이 20여일에 불과한 것으로 알려졌다. 거래소는 절차상 문제없다는 입장이지만 통상 30~45일 걸리는 심사기간에 비해 너무 빠른 터라 주먹구구식 심사가 이뤄진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전문가들은 이 같은 우려가 결국 시장에 대한 불신으로 연결되고 자본시장의 발전을 저해한다고 입을 모은다. 거래소가 단기적 관점으로 둔 무리수가 결국 부메랑처럼 돌아온다는 사실을 인지해야 하는 이유다.
☞ 본 기사는 <머니위크>(www.moneyweek.co.kr) 제412호에 실린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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