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 '전신 몰카 무죄'와 촬영당하지 않을 자유
서대웅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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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신 몰카’
다른 사람에게 카메라를 무작정 들이대도 될까. 특정 신체 부위만 아니라면 괜찮은 걸까. 이와 관련한 법원 판결이 나왔다.
지난달 16일 서울북부지법은 수십차례 여성의 몸을 찍은 미술강사 A(36·남)씨에게 징역 8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했다. 법원은 A씨가 찍은 58장의 사진 중 16장은 무죄로 판단했다. 재판부는 A씨가 촬영한 사진들을 놓고 성적 욕망 또는 수치심을 유발할 수 있는 타인의 신체를 적극 규정하기 보단 소극적 제거방식을 택했다. 처벌 여부가 애매한 사진은 모두 무죄로 판단한 것이다.
성폭력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 제14조 1항에 따르면 타인의 신체 중 성적 욕망 또는 수치심을 유발할 수 있는 신체를 촬영한 경우 징역 5년 이하의 징역 또는 10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그러나 타인의 신체를 무단 촬영하는 것은 따로 처벌하는 규정이 없다. 때문에 재판부는 몰카 사진이라 할지라도 ‘성적 욕망 또는 수치심을 유발할 수 있는 신체’를 촬영하지 않았다면 처벌할 수 없다고 판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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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신 몰카' 재판부는 몰카 사진이라 할지라도 ‘성적 욕망 또는 수치심을 유발할 수 있는 신체’를 촬영하지 않았다면 처벌할 수 없다고 판시했다. /자료사진=이미지투데이 |
재판부는 성적 욕망 또는 수치심을 유발할 수 있는 사진으로 피해자의 신체 중 일부를 부각하거나 피해자들이 대체로 짧은 치마 또는 반바지 차림일 경우, 발목부터 허벅지까지 맨살 노출·근접한 촬영거리·촬영 의도 등을 기준으로 처벌 대상 사진을 추려냈다. 반면 무죄로 판단된 16장은 불특정 피해자가 여럿이 모여 있는 사진이거나 대부분 뒷모습의 전신사진들이었다.
이에 대해 재판부는 “오늘날 시스루, 핫팬츠, 미니스커트 등 다양한 형태의 여성 의류가 나오고 있고 사회적으로도 이를 수용하는 형국”이라며 “이 경우 여성의 무단 촬영에 대해 어떤 경우까지 처벌할 수 있는 지는 그 구별이 매우 어렵고 처벌규정이 없는 한 형사처벌은 불가능”하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우리 형사법은 타인의 신체를 무단 촬영하는 것은 처벌하는 규정이 없어 성폭력처벌법에 따라 성적 욕망 또는 수치심을 유발할 수 있는 신체를 촬영한 경우에 한해 처벌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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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신몰카' “우리 형사법은 타인의 신체를 무단 촬영하는 것은 처벌하는 규정이 없어 성폭력처벌법에 따라 성적 욕망 또는 수치심을 유발할 수 있는 신체를 촬영한 경우에 한해 처벌할 수밖에 없다” /자료사진=이미지투데이 |
그러나 판결 후 온라인상에서는 갑론을박이 오갔고, 전문가들조차 판결 내용에 대한 평가가 갈렸다. 가령 이미경 한국성폭력상담소 소장은 “법원에선 촬영자의 의도도 고려했다지만 자신의 의도를 진실대로 밝히는 가해자가 얼마나 될지 모르겠다”며 “몰카는 나도 모르는 사이에 내 신체 일부 혹은 전부가 찍히는 행위고, 유포까지도 우려되는 범죄인데 신체 부위가 어디냐는 기계적 기준이 객관성의 이름으로 얘기되는 현실이 문제”라고 비판했다.
그렇다면 서울북부지법의 해당 판결을 어떻게 봐야할까. 이에 형법이론에서의 ‘객관주의’와 ‘주관주의’에 대한 이해가 필요해 보인다. 객관주의는 평등한 인간상을 전제로 객관적으로 관찰할 수 있는 범죄행위와 그 결과를 중시한다. 책임의 본질이 ‘비난가능성’에 있는 것으로 보며, 윤리·개인 등 도의적 책임론을 따른다. ‘무죄추정의 원칙’이 객관주의의 일환이라 할 수 있다. 유죄의 확정판결 시까지 무죄의 추정을 받으므로 제2심 또는 제2심 판결에서 유죄의 판결이 선고되었다고 하더라도 확정되기 전까지는 무죄의 추정을 받기 때문이다.
반면 주관주의는 불평등한 인간상을 전제로, 행위자의 인격이나 범죄의사 등에서 나타나는 사회적 위험성과 같은 주관적·인적 요소를 중시한다. 또한 책임의 본질이 반사회적 성격의 위험성에 있는 것으로 보며, 일반인의 사회적 책임론을 따른다. 예컨대 극단적 주관주의에 의하면 관광지에서 사진을 찍었는데, 카메라 앵글 속에 들어온 불특정 다수의 시민 중 한명이 성적 수치심을 느꼈다며 소송을 낼 수 있는 셈이다. 이렇게 되면 관광지에서 사진을 찍기 전, 카메라 앵글 속에 들어오는 모든 사람들에게 일일이 다가가 사전 동의를 구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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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신 몰카' 극단적 주관주의에 따르면 관광지에서 사진을 찍기 전, 카메라 앵글 속에 들어오는 모든 사람들에게 일일이 다가가 사전 동의를 구해야 할 것이다. /자료사진=이미지투데이 |
서울북부지법 형사9단독이 판결에서 “신체를 촬영한 모든 사진이나 영상물이 수치심이 든다는 주관적 감정으로 인해 범죄화될 수 있으며, 짧은 치마나 반바지를 입은 여성은 그 자체로 성적 욕망 또는 수치심을 유발할 수 있는 신체에 해당한다는 해석까지 가능하다”며 “이는 결국 초상권 문제와 같은 민사적 문제이거나 처벌입법의 공백 문제로 접근해야 한다”고 판시한 이유가 여기에 있는 셈이다.
물론 시민들이 이 판결에 전적으로 동의하지는 않는 모양새다. 법원도 이를 예상했는지 “여성을 무단 촬영했을 때 구체적으로 어떤 경우까지 형사처벌할 수 있을지 구별이 어려워졌다”고 솔직하게 털어놨다. “평상복을 입고 거리를 활보하는 여성의 전신까지 형법상 처벌 대상인 ‘성적 욕망 또는 수치심을 유발할 수 있는 신체’로 해석하는 것은 비논리적인 해석”이라고 판시하기까지 했다.
그럼에도 이미경 한국성폭력상담소 소장은 이번 판결에 대해 “재판부는 성적 굴욕감을 줄 수 있는 신체를 특정했지만 중요한 것은 고소자가 이 행위에 문제를 제기한 것이다. 그 부분에서 본다면 아쉬운 판결이라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현행 형법은 객관주의와 주관주의를 절충하고 있다지만, 이번 판결에 대한 논란은 당분간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여기서 잠깐. 서두의 질문으로 돌아가 보자. 다른 사람에게 카메라를 들이대도 무관한 걸까. 그렇진 않다. 현행법에 따르면 함부로 촬영당하지 않을 자유를 침해하는 촬영행위를 처벌하고 있다. 즉, 형사처벌은 용케 피했더라도 민사 법정에서 손해배상 판결을 받을 수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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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신 몰카' 다른 사람에게 카메라를 들이대도 무관한 걸까. 형사처벌은 용케 피했더라도 민사 법정에서 손해배상 판결을 받을 수 있다. /자료사진=이미지투데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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