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철도공사(코레일) 자회사 중 한 곳인 코레일네트웍스에서 무기계약직으로 3년 째 근무 중인 박조한씨(35, 가명). 그는 최근 모회사 노동단체의 조언을 구하기 위해 서울 용산의 철도노조 사무실 문을 두드렸다. 세 살 난 아이의 아버지인 박씨는 "회사에서 임금을 받고 있는데도 정상적인 생활이 불가능할 정도로 삶이 고되다. 아이를 생각해 힘을 내보려고 하지만 희망이 없다"며 울분을 토했다.


박씨는 코레일이 '예산 절감'이라는 명목으로 진행한 저임금과 비정규직 양산정책의 직접적인 피해자다. 그가 한 달을 꼬박 일하고 받는 월급은 세금을 제하고 나면 130만원 남짓. 고용노동부 산하 최저임금위원회가 조사한 3인 가구 한달 생계비(336만3000원)의 약 38%에 불과하다. 그나마 차상위계층으로 분류돼 관할구청의 지원금으로 근근이 생계를 잇고 있다.

이는 1인 가구 생계비(155만3000원)보다도 낮다. 코레일네트웍스는 300개의 공공기관 중 임금이 가장 낮은 편이다. 공공기관 경영정보 공개시스템에 따르면 코레일네트웍스의 평균 연봉(근속연수 5년7개월 기준)은 2766만원으로 300개 공공기관 중 가장 낮다.


한 청소노동자가 열차 역사 계단 난간에서 안전창지도 없이 위태롭게 청소를 하고 있다. /사진출처=온라인 커뮤니티
한 청소노동자가 열차 역사 계단 난간에서 안전창지도 없이 위태롭게 청소를 하고 있다. /사진출처=온라인 커뮤니티

◆ 경영정상화의 이면 '저임금·비정규직'

현재 코레일네트웍스 비정규직 노동자는 전체 1562명 중 657명(41.9%)이다. 이들의 평균 임금은 집계조차 되지 않는다. 코레일 자회사 5곳 중 코레일네트웍스, 코레일관광개발, 코레일로지스 등 3사는 평균 연봉이 공공기관 하위 10곳에 속한다.


그럼에도 코레일은 공기관 평균 임금의 60% 이하인 기관은 임금을 5.3% 인상하라는 '기획재정부의 2015 공기업·준정부기관 예산편성지침'을 무시했다. 더욱이 최연혜 사장 취임 후 코레일 전체 노동자들의 임금이 아예 줄거나 인상이 됐다고 해도 여전히 생계를 꾸리기에도 빠듯한 수준이다.

코레일이 자회사 노동자들의 복지를 쥐어짜 실적개선을 꾀하려는 움직임도 감지됐다. 코레일은 올해 연 24만원에 불과한 코레일네트웍스의 복리후생비를 9만원으로 대폭(65%) 삭감했다. 이런 식으로 아낄 수 있는 돈은 매년 2억3430만원에 불과하다.


지난해 9월 감사원의 감사결과 코레일네트웍스가 수익 다각화 사업을 진행한다면서 사업성 검토 소홀과 전문성 부족으로 2010년부터 2013년까지 총 32억원의 영업손실을 기록한 것에 비교하면 턱없이 적은 금액이다.

다른 코레일 자회사들도 처지는 비슷하다. 코레일이 지난 4월 자회사에 배포한 '방만경영 정상화 이행계획'을 보면 사실상 노동자들의 복지를 축소한다는 내용 외에는 특별한 계획이 없다.


이행계획을 살펴보면 ▲업무상 부상사망 때 산재보상 외의 퇴직금 가산 지급 및 유족보상 유가족 학자금 지원 금지 ▲가족에 대한 무상 건강점진 및 의료비 지원 금지 ▲단체상해보험 선택적 지원수준 운영 등이 주요내용이다.

관련 업계 관계자는 "코레일이 자회사들에게 부담을 떠 넘기는 상황"이라며 "코레일에서 자회사 노동자들의 '코 묻은 돈'까지 쓸어가는 꼴"이라고 지적했다. 코레일이 방만경영의 책임을 노동자들에게 돌렸다는 비판을 받는 대목이다.
정상화이행계획서
정상화이행계획서

그러나 코레일 방만경영의 근본적인 원인은 정부의 실패한 정책과 연결고리가 깊다는 게 철도 전문가들의 중론이다. 한 철도전문가는 "지난해 코레일 부채 17조원 중 인천공항철도 인수, 용산개발 대손충당금과 법인세 등 10조원 정도는 영업활동과 관계없는 것이었다"고 설명했다.

따라서 코레일은 장기적 관점에서의 해결책이 아니라 노동자에게 주어지던 것을 빼앗는 쉽고 빠른 방법을 택했다는 지적을 받는다. 코레일이 최근 5년간 정규직 2924명을 줄이고 이들의 빈자리를 비정규직 1189명으로 채운 것도 책임 떠넘기기 정책 기조의 연장선으로 평가된다.

현재 코레일 자회사의 비정규직 비율을 보면 코레일테크가 95.4%(880명)로 가장 높고 코레일유통이 60.6%(483명), 코레일네트웍스 41.9%(657명), 코레일로지스 20.4%(18명), 코레일관광개발 10.4%(105명) 순이다.

노동자 대다수가 비정규직인 코레일테크는 정규직(44명) 대비 비정규직 비율이 2000%를 넘어 공공기관 중 가장 비정규직 비율이 높다는 불명예를 안기도 했다. 이것이 코레일이 "지난해 첫 흑자를 달성했다"는 자화자찬 이면에 숨겨진 불편한 진실 가운데 하나다.

◆ "탄압 배후엔 최연혜 사장"

정부지침을 무시하는 코레일은 노동자의 목소리에도 귀를 막고 있다. 단체교섭권은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에서 보장하는 권리지만 코레일관광개발은 상식적으로 이해하기 어려운 이유를 들어 이를 부정하고 있다.

노조는 지난 4월 임단협 교섭을 요청했으나 코레일관광개발은 이를 거부했다. 이에 따라 노조는 서울지방노동위원회(지노위)에 교섭요구 사실의 공고에 대한 시정신청을 냈고 지노위에선 노조의 손을 들어줬다.

코레일관광개발은 이에 불복해 중앙노동위원회(중노위)에 재심을 신청했다. 지난 6월 중노위에서도 노조와 교섭하라는 결정이 나오자 이번에는 "노조가 정당한 자격요건을 갖추지 않았다"며 행정소송을 제기했고 노조도 이에 맞서 노동부에 사측을 부당노동행위로 고소했다.

노동부는 지난 9월 코레일관광개발의 행위가 위법하다는 결론을 내리고 검찰에 기소의견을 송치한 상태다. 이런 일련의 과정은 코레일관광개발이 노동자들의 최소한의 권리마저 인정하지 않으려는 것으로 종국에는 노조를 해체하기 위한 꼼수라는 게 노조의 주장이다.

김영준 철도노조 미비국장은 "코레일관광개발의 배후에 윗선이 개입됐다"면서 "수익의 극대화를 위해 비정규직을 늘리는 것도, 이들이 노조를 구성하지 못하도록 방해하는 것도 본사인 코레일, 즉 최 사장의 지시가 없으면 불가능하다"고 지적했다.

김 국장은 이어 "특히 이건태 코레일관광개발 사장은 지노위와 중노위의 결정으로 노조의 정당성이 확보됐음에도 최 사장의 눈치를 보며 이달 끝나는 자신의 임기까지만 노조를 인정하지 않겠다는 일념으로 무책임한 태도로 일관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한편 코레일관광개발은 노동자들의 근로조건 개선을 위해 국회 간담회와 토론회 등에 참석한 노조 간부 2명을 해고했다. 중노위에서 "징계 사유에 정당성이 없다"면서 코레일관광개발의 징계가 부당하다는 결정이 나왔으나 해당 간부는 여전히 회사로 돌아가지 못했다.

중노위 결정을 따르지 않아 코레일관광개발은 앞으로 이들 2명에 대해 2년에 걸쳐 4차례 이행강제금(1인당 250만∼500만원)을 내야 한다. 노조와의 갈등에 따른 소송비용도 부담해야 한다.

☞ 본 기사는 <머니위크>(www.moneyweek.co.kr) 제414호에 실린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