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철도공사(코레일)의 ‘탈선’이 무섭다. 여기서 말하는 탈선은 기차나 전차 따위의 바퀴가 선로를 벗어나는 것을 뜻하는 것이 아니다. 말이나 행동 등이 나쁜 방향으로 빗나감을 의미한다. 그런데 어찌된 영문인지 최근 코레일은 외형적(?)으론 쾌속질주를 하고 있다. 혁신적인 부채감축과 조직혁신을 이뤄냈다며 국내외에서 경영혁신 관련 상을 휩쓸고 있는 것. 이상하지 않을 수 없다. 코레일의 불편한 속사정을 알아봤다.


국회는 수년 간 국정감사에서 코레일의 ‘낙하산 인사’ 문제를 입이 닳도록 비판했다. 코레일에 불거진 모든 부실의 근원이 ‘불건전 인사’에서 시작된다는 판단에서였다.


줄기차게 논란이 된 탓에 코레일의 ‘낙하산 문제’는 겉으로는 개선된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낙하산은 세간의 눈을 피해 코레일의 출자회사 요직으로 더욱 깊숙이 내려앉았다. 정치권 낙하산뿐 아니라 모회사인 코레일 퇴직 직원들의 재취업 창구로 전락한 자회사들은 곪을대로 곪아 만신창이 신세다.


2014년 국정감사에서 답변하고 있는 최연혜 코레일 사장. /사진=뉴시스 김기태 기자
2014년 국정감사에서 답변하고 있는 최연혜 코레일 사장. /사진=뉴시스 김기태 기자

◆자회사·민자역사 요직 '돌려먹기'

하태경 새누리당 의원이 코레일 자회사들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지난 9월 기준 코레일 자회사의 역대임원 203명 중 187명이 외부출신이었고 내부 승진인사는 16명에 불과했다. 특히 2004년과 2007년 각각 설립된 코레일관광개발과 코레일네트웍스는 아예 내부출신이 전무했다.

이와 관련 하태경 의원실 관계자는 “내부 출신 임원을 찾아보기 힘든 근본적 이유는 정치권과 코레일을 통해 내려가는 낙하산 인사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실제 자회사 대표이사의 면면을 살펴보면 코레일관광개발, 코레일로지스, 코레일테크의 경우 코레일 퇴직자 일색이다. 코레일네트웍스와 코레일유통의 경우 새누리당 정책연구소인 여의도연구원 출신의 대표이사가 지난해 3월 나란히 선임됐다.

민자역사도 코레일 퇴직자들의 재취업창구다. 지난 9월말 기준 17개 민자역사 중 11곳에 코레일 혹은 정치권의 낙하산 임원이 1~2명씩 포진돼 있다. 한 민자역사에는 청와대 경호실장을 지낸 인물이 감사를 맡고 있다. 사실상 현재 운영 중인 모든 민자역사에 낙하산 인사가 뿌려진 셈이다.


코레일 출신 직원들이 자회사와 민자역사의 임원직을 번갈아 가며 맡아온 정황도 드러났다. 지난 3월 임명된 백종찬 코레일테크 대표이사는 코레일 전남본부장을 지내고 퇴직해 지난 2012년부터 2년간 롯데민자역사에서 상임고문직을 지냈다. 그가 있던 롯데역사 이사 자리에는 코레일 광주지역본부장을 지내고 지난 3월 퇴직한 반걸용씨가 선임됐다. 사실상 ‘코레일 퇴직자들이 돌려먹는 자리’ 아니냐는 의혹을 지울 수 없다.


반대로 자회사 대표이사를 지내고 민자역사 감사로 간 경우도 있다. 박복규 전 코레일로지스 대표이사는 지난해 1월 임기를 채우지 못하고 해임됐지만 채 다섯달이 되지 않아 신세계 의정부 민자역사 감사로 임명됐다.

이와 관련 이미 코레일은 지난 2013년 국정감사에서 출자회사 요직에 낙하산이 임명되는 문제를 시정할 것을 요구받은 바 있다. 코레일 측은 이에 대해 조치를 취했다고는 했으나 코레일이 내놓은 ‘시정·처리결과 및 향후추진계획’은 허울뿐인 대책에 불과하다.


출자회사 임원 추천은 2년 이상 정년을 남겨두고 명예퇴직하는 임직원을 대상으로 하겠다는 게 조치의 요지인데, 민자역사와 자회사 요직을 돌아가며 맡는 상황에서 실효성 있는 조치라고 보기는 어렵다.


이와 함께 코레일은 향후계획으로 ‘임원추천심의위원회(임추위) 개최’를 공언했지만 이 또한 현실성이 떨어진다. 코레일 자회사의 한 관계자는 “임추위가 열린다고는 하는데 확실히 어떻게 추진되는지는 알 수 없다”며 “사실상 코레일 측에서 절대적인 권한을 가진 것에는 변함이 없는데 실효성이 있을리 만무하다”고 말했다. 본지는 코레일 측에 임추위 관련 업무와 추천·심의 과정에 대해 물었으나 답변을 들을 수 없었다.

◆‘2년 주기 낙하산’의 폐해

코레일의 이러한 무차별 낙하산 인사로 인한 폐해는 실적에서 그대로 드러난다. 전계열사가 비정규직과 용역 비중을 늘리고 코레일의 철도인프라를 기반으로 한 독점사업 단가를 높여 영업이익을 늘리고 있지만 전문성 없는 인사가 요직을 점하며 시작된 적자사업에 대한 개선은 제대로 이뤄지지 않는 실정이다.

[코레일의 탈선②] '낙하산 적폐'에 자회사는 만신창이

김희국 새누리당 의원실로부터 제공받은 ‘코레일 자회사 신규 및 외부진출사업 주요 손익 현황’에 따르면 ▲코레일네트웍스 ▲코레일관광개발 ▲코레일로지스 ▲코레일유통 ▲코레일테크 5곳의 자회사가 지난 2010년부터 지난해까지 추진한 12개 사업에서 5년간 100억원의 영업손실이 발생했다.

이를 두고 내부에서는 사업성에 의문이 제기됐는데도 불구하고 자회사 ‘낙하산’들의 ‘치적 쌓기용’으로 사업을 무리하게 추진했기 때문이라는 평가를 내린다. 대표이사를 비롯한 임원들이 2~3년을 버틴 뒤 다른 출자회사 임원직을 다시 꿰차기 위해 필요한 대외적 명분을 쌓는데 자회사 사업이 악용된 셈이다.

코레일네트웍스가 지난 2013년부터 시작한 카셰어링 ‘유카’ 사업이 대표적이다. 쏘카, 그린카 등 민간 업체가 이미 카셰어링 시장을 점유한 상황에서 뒤늦게 시작된 유카 사업에 회사 내부적으로 회의가 많았지만 ‘윗선’의 의지로 이 사업은 강행됐다.

특히 코레일 측은 김오연 코레일네트웍스 사장 취임과 동시에 언론에 대대적인 홍보를 시작하며 ‘공유경제 활성화’라는 그럴듯한 명분을 씌워 마치 김 사장의 치적인양 포장했다. 사업이 2년간 17억원의 적자를 냈다는 사실은 찾아보기 어렵다. ‘공유경제’라는 화두를 타고 언론으로부터 주목받을 수 있다는 이유로 사업을 철수하지 않고 지속한 것으로 판단된다.

이러한 낙하산 임원들의 경우 임기가 끝날 무렵이면 본 업무보다는 대외기관 수상, 언론사 인터뷰 등에 주력한다. 코레일 출신 한 임원은 임기만료를 앞두고 자신의 자서전 편찬 등의 업무를 직원에게 지시하기도 한 것으로 전해진다.

코레일 자회사 한 관계자는 “보통 새 임원이 오면 6개월 정도 업무를 파악하고 1년쯤 의욕적으로 ‘삽질’을 하다가 남은 6개월간 이러한 내용을 자신의 성과로 포장해 다른 기관으로 떠난다”며 “떠난 임원들의 지시로 벌어진 일은 회사에 남아있는 직원들의 책임이 돼버린다”고 한탄했다.

그는 “이런 적폐가 코레일 자회사 직원들의 사기를 저하시키고 모든 업무에서 자신의 ‘책임회피’만을 우선 생각하게 만드는 것 같다”고 안타까워 했다.

☞ 본 기사는 <머니위크>(www.moneyweek.co.kr) 제413호에 실린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