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만섭 빈소 찾은 김무성·원유철, "계산하지 않는 정치 해야한다"
문혜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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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만섭' '김무성' '원유철' '박정희'
새누리당 김무성 대표와 원유철 원내대표가 나란히 15일 고 이만섭 전 국회의장의 빈소를 찾았다.
김 대표는 조문 후 "이만섭 의장께서 목숨을 걸고 3선 개헌을 반대하신 것에 평소 복종했다"며 "청년 시절 평의원으로 계실 때 의원회관을 찾아 인사를 드렸던 기억이 있다"며 고인을 회상했다.
이어 "그 뒤로 계속해서 이 의장과 많은 대화를 나누고 가르침을 받았다"며 "의장 퇴임 이후에 정치권이 여러가지 잘못된 길을 갈 때면 야단을 치고 가르침을 주셔서 (고인을) 큰 스승으로 존경한다"고 말했다.
원 원내대표 역시 초선의원 때부터 이 전 의장과 인연을 맺었다고 소개하면서 "'국회의장으로서 의사봉을 칠 때 한번은 여당을, 한번은 야당을, 한번은 국민을 보고 친다'는 고인의 말씀이 굉장히 마음에 남는다"고 고인을 기렸다.
원 원내대표는 "객관적이고 중립적이면서 항상 국민을 중심에 두는 정치, 계산을 하지 않는 정치를 해야 한다는 말씀을 자주 하신 고인을 받들겠다"고 했다.
이 전 의장은 1963년 제6대 국회의원으로 정치권에 발을 들인 이후 7대, 10대, 11대, 12대, 14대, 15대, 16대 등 8선 국회의원을 지냈다. 14·16대 국회 두 차례에 걸쳐 국회의장을 역임했다.
이 전 의장과 박정희 전 대통령과의 일화는 유명하다. 동아일보 정치부 기자 시절 당시 박정희 최고회의의장이 울릉도를 시찰할 때 그가 탄 배에 몰래 승선하면서 박 전 대통령과 첫 인연을 맺었다. 박 의장을 단독 인터뷰 하면서 그의 자립 경제와 자주국방 구상에 매료됐고 1963년 대선에서 박 의장의 선거운동을 돕겠다고 나서며 정계에 입문했다. 이후 박정희 대통령에 의해 정계에 발탁됐으면서도 3선 개헌 당시에는 개헌을 반대하다가 김형욱 당시 중앙정보부장의 지시로 암살당할 뻔한 일도 있었다.
새누리당 김무성 대표와 원유철 원내대표가 나란히 15일 고 이만섭 전 국회의장의 빈소를 찾았다.
김 대표는 조문 후 "이만섭 의장께서 목숨을 걸고 3선 개헌을 반대하신 것에 평소 복종했다"며 "청년 시절 평의원으로 계실 때 의원회관을 찾아 인사를 드렸던 기억이 있다"며 고인을 회상했다.
이어 "그 뒤로 계속해서 이 의장과 많은 대화를 나누고 가르침을 받았다"며 "의장 퇴임 이후에 정치권이 여러가지 잘못된 길을 갈 때면 야단을 치고 가르침을 주셔서 (고인을) 큰 스승으로 존경한다"고 말했다.
원 원내대표 역시 초선의원 때부터 이 전 의장과 인연을 맺었다고 소개하면서 "'국회의장으로서 의사봉을 칠 때 한번은 여당을, 한번은 야당을, 한번은 국민을 보고 친다'는 고인의 말씀이 굉장히 마음에 남는다"고 고인을 기렸다.
원 원내대표는 "객관적이고 중립적이면서 항상 국민을 중심에 두는 정치, 계산을 하지 않는 정치를 해야 한다는 말씀을 자주 하신 고인을 받들겠다"고 했다.
이 전 의장은 1963년 제6대 국회의원으로 정치권에 발을 들인 이후 7대, 10대, 11대, 12대, 14대, 15대, 16대 등 8선 국회의원을 지냈다. 14·16대 국회 두 차례에 걸쳐 국회의장을 역임했다.
이 전 의장과 박정희 전 대통령과의 일화는 유명하다. 동아일보 정치부 기자 시절 당시 박정희 최고회의의장이 울릉도를 시찰할 때 그가 탄 배에 몰래 승선하면서 박 전 대통령과 첫 인연을 맺었다. 박 의장을 단독 인터뷰 하면서 그의 자립 경제와 자주국방 구상에 매료됐고 1963년 대선에서 박 의장의 선거운동을 돕겠다고 나서며 정계에 입문했다. 이후 박정희 대통령에 의해 정계에 발탁됐으면서도 3선 개헌 당시에는 개헌을 반대하다가 김형욱 당시 중앙정보부장의 지시로 암살당할 뻔한 일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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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 이만섭 전 국회의장의 빈소 모습. /사진=뉴스1 임세영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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