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병신년(丙申年)은 ‘원숭이 해’다. 자연스레 재계에서 활약할 '원숭이 CEO'들이 주목받는 가운데 그 중에서도 단연 눈에 띄는 인물은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다. 40대 후반에 접어든 그는 경영승계를 목전에 두고 가장 중요한 시기를 ‘자신의 해’로 맞게 됐다. 그의 2016년이 유독 기대되는 이유다.


삼성이 명실상부한 '이재용 시대'를 맞았다. 2015년부터 사업구조 재편작업과 구조조정이 잇따르고, 실용주의 원칙이 적용되는 등 ‘이재용식 경영 스타일’이 점차 색깔을 드러내고 있다. 와병 중인 아버지 이건희 회장의 부재 속에 지휘봉을 잡았지만 ‘갤럭시S6’의 성공적인 시장 안착, 삼성페이를 통한 모바일 결제 생태계 구축 등 굵직한 성과를 이뤄온 터라 그의 행보에 이목이 집중된다.

◆ “바이오 잡아라”…'1등 DNA' 드러내다


가장 먼저 시동을 건 사업은 ‘바이오’다. 이 부회장은 2015년 3월 열린 ‘2015년 보아오포럼’ 개막연설에서 바이오 의약에 대한 육성의지를 밝혔다.

“IT, 의학, 바이오의 융합을 통한 혁신에 큰 기회가 있을 것입니다.” 

그의 비전은 연말 인사와 대규모 투자결정을 통해 드러났다. 고한승 삼성바이오에피스 부사장을 사장으로 승진시켰고, 세계 최대 바이오의약품수탁생산 기지 구축을 위한 삽을 떴다.


삼성바이오로직스 제3공장 기공식은 2015년 12월21일 인천 송도경제자유구역에서 열렸다. 이날 기공식에는 박근혜 대통령뿐 아니라 황우여 교육부총리, 정진엽 보건복지부 장관 등을 비롯해 신학용 새정치민주연합 의원, 류정복 인천시장까지 총출동해 삼성의 도약을 응원했다.

삼성바이오로직스의 제3공장은 송도 경제자유구역내 9만7000㎡, 세계최대 규모로 건설된다. 2018년 말 완공 예정인 3공장이 본격적으로 가동되면 삼성바이오로직스는 단숨에 세계 1위의 바이오의약품 생산 전문기업으로 도약한다. 3공장에서 생산할 수 있는 18만ℓ의 바이오의약품 원액에 현재 가동 중인 1공장과 오는 3월 가동 예정인 2공장을 합치면 모두 36만ℓ를 동시에 생산할 수 있는 규모를 갖추게 된다.


글로벌 의약품 위탁생산업체인 스위스 론자(26만ℓ), 독일 베링거인겔하임(24만ℓ)을 뛰어넘는 규모다. 이런 계획이 순조롭게 진행되면 삼성바이오로직스는 매출 2조원, 영업이익 1조원을 달성할 전망이다.


/사진=머니투데이 임성균 기자
/사진=머니투데이 임성균 기자

바이오사업은 삼성이 2010년부터 추진한 5대 신수종사업 가운데 하나다. 당시 삼성그룹은 새로운 미래 먹거리로 바이오와 제약, 자동차용 전지, 의료기기, LED, 태양광사업 등을 선정하고 오는 2020년까지 매출 50조원, 고용창출 4만5000명을 달성하겠다는 청사진을 제시했다.

이 가운데 가장 기대가 컸던 분야가 바로 바이오사업이다. 삼성은 해당 분야에 대한 경험이 없지만 위험을 감수하고 도전할 만큼 바이오사업은 큰 시장을 형성하고 있다. 삼성이 세계 1위를 장악하고 있는 메모리반도체시장 규모보다도 2배 이상 큰 1790억달러(210조원) 규모다.

이 부회장은 메모리반도체의 성공 노하우와 '1등 DNA'를 바이오사업에 그대로 이식한다는 전략이다. 재계에선 이 부회장 체제에서 강하게 드라이브를 걸고 있는 사업인 만큼 바이오에 얹힌 중요도가 남다르다고 입을 모은다.

‘바이오사업’이 성공하느냐 마느냐가 이 부회장의 경영능력 평가를 좌우할 중요한 잣대가 될 것이라는 의견도 나온다. 사업 성패 여부가 이 부회장 시대를 순탄하게 여는 상징적 의미가 될 것이라는 분석이다.

업계 한 관계자는 “이 부회장은 지난해 그룹을 진두지휘하며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을 합병했고 통합 삼성물산의 최대주주로 올랐다”며 “바이오사업의 양대 축인 삼성바이오로직스와 바이오에피스는 삼성물산의 자회사와 손자회사로, 향후 바이오사업의 성과가 곧 삼성물산 기업가치로 연결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이 관계자는 “삼성전자에 치우쳐 있는 사업구조에서 탈피해 이 부회장의 그룹 지배력을 높이는 데도 바이오사업이 가지는 의미는 크다”며 “그룹차원에서도 전자산업의 성장 둔화로 인한 차세대 성장 동력이 필요한 시점”이라고 덧붙였다.

◆ 아버지와 닮은꼴… 첫 사업부터 '뚜렷한 색깔'

삼성은 일단 성공을 자신하는 분위기다. 이 부회장의 ‘바이오사업’이 아버지 이건희 회장이 일군 ‘메모리 반도체사업’과 닮은 부분이 많아서다.

이 회장은 지난 1974년 사재를 털어 한국반도체 지분 50%를 인수했다. 당시만 해도 삼성이 TV조차 제대로 만들지 못했던 시기. 주변의 반응은 부정적이었다. 선진국과의 기술격차뿐 아니라 막대한 투자금, 고급기술 인력 확보 등이 발등에 놓인 난제였다. 이후 삼성반도체가 64K D램 개발계획을 내놨을 땐 삼성 내부직원들까지 반대할 정도였다.

하지만 고비 때마다 시장 흐름을 먼저 내다본 결정으로 1992년 삼성전자는 메모리반도체분야 세계 1위로 올라섰다. 스마트폰시장 정체로 ‘이중고’를 겪고 있는 현시점에 반도체사업은 꾸준히 매출을 내며 그룹의 든든한 버팀목이 되고 있다.

이 부회장은 이러한 ‘반도체 성공’을 바탕으로 미래 성장동력 발굴과 관계사들과의 협력, 시너지창출 등으로 바이오산업 1등을 달성하겠다는 의지를 보이고 있다.

재계 관계자는 “이 회장에게 ‘반도체’가 있었다면 이 부회장은 '바이오'로 승계단계에서의 변화와 혁신을 주문한 것으로 보인다”며 “이 부회장의 경영철학이 향후 삼성그룹을 어떻게 변화·성장시킬지 지켜볼 일”이라고 말했다.

‘1등 DNA’를 강조하고 나선 이 부회장. 자신의 띠와 같은 원숭이 해에 어떠한 ‘1등 전략’을 펼쳐나갈지 재계의 시선이 온통 그를 향하고 있다.

☞ 본 기사는 <머니위크>(www.moneyweek.co.kr) 제416호에 실린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