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삼구 금호아시아나그룹 회장이 그룹 창립 70주년이 되는 올해 재도약의 발판을 마련했다. 박 회장은 최근 설립한 지주회사인 금호기업을 통해 채권단에 금호산업 인수대금 7228억원을 납입하며 경영권을 되찾았다.


박 회장은 금호아시아나그룹 지배구조의 정점에 있는 금호산업 인수를 위해 많은 고초를 겪었다. 그가 가진 것은 ‘우선매수청구권’이라는 단 하나의 카드였지만 그야말로 모든 것을 내건 끝에 금호산업을 다시 손에 넣었다. 이 과정에서 수많은 말들이 나돌았고 엄청난 ‘수 싸움’이 진행됐다.

채권단 산하에서 정상적인 경영이 힘들었던 금호아시아나그룹은 주인을 찾으며 내년부터 본격적인 성장에 박차를 가하겠다는 입장이지만 낙관할 수 있는 상황은 아니다. 그룹계열사의 경영상황이 녹록지 않고 금호타이어와 금호고속을 또 사들여야 한다는 부담도 따른다.


/사진=뉴시스 조성봉 기자
/사진=뉴시스 조성봉 기자

◆1년간의 줄다리기 끝났다

지난해 1월 채권단이 금호산업 지분의 매각공고를 낸 시점부터 박 회장이 금호산업을 다시 품에 안기까지 꼬박 1년이 걸렸다. 특별할 것 없는 중견건설사인 금호산업이지만 이 회사가 가진 아시아나항공 경영권은 금호아시아나그룹의 지배를 뜻하기 때문에 재계의 시선은 그 어느 때보다 뜨거웠다.

하지만 본입찰은 당초 예상과는 달리 싱겁게 끝났다. 수많은 기업이 관심을 보였지만 본입찰에 참여한 것은 호반건설뿐이었다. 재계에서는 국내외를 가리지 않고 다양한 방면에서 활동하며 인맥을 구축한 박 회장의 ‘물밑작업’이 있었을 것이라고 본다. 호반건설도 본입찰에서 채권단의 기대에 미치지 못하는 가격(6009억원)을 제시해 결국 유찰됐다.


채권단은 유찰 후 재입찰보다는 우선매수청구권을 가진 박 회장과의 수의계약으로 가닥을 잡고 가격 줄다리기를 시작했다. 6000억원대를 주장하는 박 회장 측과 1조원대를 주장하는 채권단의 입장차는 쉽게 좁혀지지 않았고 수차례의 협상 끝에 결국 7228억원이라는 가격이 도출됐다.

가격 협상이 끝난 뒤부터는 박 회장이 이 자금을 어떻게 마련할지에 세간의 관심이 집중됐다. “지루하게 협상해놓고 결국 기간 내에 자금마련을 못하는 것 아니냐”는 비웃음도 있었다. 박 회장은 우선매수청구권 외에는 별달리 가진 것이 없던 상황이었기 때문이다.


지난 2010년 11월 금호산업 무상감자에서 박 회장은 일반주주(4.5대 1)와 달리 경영책임을 지고 100대 1의 감자를 실시했다. 당시 박 회장의 손실분은 303억원에 달했다. 이듬해엔 보유 중이던 금호석유화학 지분을 모두 팔아 금호산업(2200억원)과 금호타이어(1130억원) 유상증자에 참여했다. 손실이 날 것을 알면서도 회사를 살리기 위해 사재를 쏟아 부었다. 채권단이 박 회장에 준 ‘우선매수청구권’은 공짜가 아니었던 셈이다.

박 회장은 대외적으로는 지속적으로 “도와주시는 분들이 많아 잘 될 것”이라는 긍정적인 말만 내놨지만 엄청난 고심이 있었을 것이라는게 재계의 추측이다. 


/사진=뉴시스 고승민 기자
/사진=뉴시스 고승민 기자

◆7228억원 어떻게 마련했나

그렇다면 박 회장은 7228억원의 인수금액을 어떻게 마련한 것일까. 우선 박 회장은 금호산업을 인수할 주체인 ‘금호기업’을 설립했다. 이와 별도로 ‘아시아펀드’라는 이름의 SPC를 설립하기도 했다.

장남인 박세창 금호타이어 부사장과 자신이 소유한 금호산업 지분과 금호타이어 지분을 매각해 1521억원을 마련한 박 회장은 금호기업을 통해 자본을 확보하고 우선주와 보통주를 발행해 코오롱 등 다수의 전략적투자자(SI)와 케이에이, 금호문화재단 등을 주주로 확보했다.


이어 아시아펀드를 통해 모은 370억원의 자금도 유증을 통해 투자했다. 정확히 얼마의 자금이 모였는지는 알려지지 않았으나 보통주와 우선주 발행으로 모집한 자금은 3300억원 수준으로 추산된다.

CJ대한통운이 별도로 사들인 500억원의 지분을 제외하면 3300여억원의 자금이 더 필요한 상황. 박 회장은 남은 자금은 NH투자증권의 인수금융을 통해 마련했다. 투자은행(IB)업계에 따르면 NH투자증권은 금호산업 지분 46.54%를 담보로 금호기업에 3300억원을 지원했다. CJ대한통운 지분을 제외하고 인수하는 금호산업 지분을 담보로 제공한 것으로 알려졌다.

NH투자증권 쪽 대출의 경우 금리는 5.5% 수준으로 최근 인수금융 대출금리보다 높으며, 대출기간은 1년6개월로 통상의 인수금융에 비해 단기로 설정됐다는 내용 정도만 알려졌다. IB업계 한 관계자는 “NH투자증권 측에서 이 정도 규모의 인수금액 대출결정이 쉽지는 않았을 것”이라며 “업계에서는 박 회장이 경영권 포기각서를 썼다든지 제3자 보증이 포함됐다는 이야기들이 나돈다”고 말했다.


◆인수했지만… 재건은 이제 시작

박 회장은 인수금액을 납부한 뒤 ‘창업초심’으로 돌아가겠다는 각오를 밝혔지만 현재 금호아시아나그룹 계열사 대부분 경영사정이 좋지 못하고 무리한 인수의 후유증에 대한 우려도 제기된다.

금호아시아나그룹은 항공·타이어·건설을 3대핵심사업 축으로 구성해 안정과 내실을 다진다는 계획이지만 세가지 사업분야 모두 상황이 썩 좋지 않다. 특히 주력인 항공사업은 아시아나항공이 경영정상화 방안을 발표할 정도로 어려운 상황이고 건설사업도 아파트 분양시장 악화로 올해 전망이 밝지 않다.

또한 아직 채권단에 있는 금호타이어와 칸서스에 되판 금호고속을 되찾아야 한다는 과제도 남아있다. 특히 그룹 핵심사업 축인 금호타이어의 경우 워크아웃 이후 노사갈등의 골이 깊어지는 상황이다. 노조가 노사갈등의 원인으로 박삼구 회장을 지목하고 있어 갈등회복이 쉽지 않아 보인다. 여기에 금호산업 인수에 투입된 자금 가운데 박 회장의 자금 1500억원 수준을 제외한 나머지 5700억원이 ‘빚’과 다름 없다는 점을 고려하면 완전한 그룹재건의 길은 멀게만 느껴진다.

☞ 본 기사는 <머니위크>(www.moneyweek.co.kr) 제417호에 실린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