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모씨(33)는 최근 황당한 일을 겪었다. 급히 선물해야 할 일이 있어 눈에 보이는 화장품가게에 들어갔는데 내국인에게는 판매하지 않는다는 말을 들은 것. 가게에서 쫓겨 나와 점원이 가리킨 곳을 보니 ‘Tax Free’란 문구가 표시돼 있었다. 김씨는 “택스 리펀드(Tax Refund) 안해도 되니 구입을 원한다”고 말했지만 점원은 “내국인에게는 판매하지 않는다”는 답변만 반복했다.

# 임모씨(40)는 요즘 길가에 서 있는 버스만 보면 화가 난다. 몇년 새 길가를 점거하는 대형버스가 부쩍 늘어 교통체증이 심해졌기 때문이다. 이런 생각은 임씨만 하는 것이 아니다. 실제로 다산콜센터에는 차로를 정복하고 늘어선 버스행렬에 대한 민원이 부쩍 늘었다.


최근 중국인관광객(유커)의 급증과 함께 주목받는 사후면세점. 하지만 중국소비자들과 지역주민들, ‘면세점’이라는 이름에 혹해 투자를 감행한 투자자까지 사후면세점에 대한 원성이 자자하다. 서울 시내 곳곳의 사후면세점을 돌아다니며 어두운 그늘을 살펴봤다.

/사진=최윤신 기자
/사진=최윤신 기자

◆유커에게 수익 내는 사후면세점?

1월의 명동거리. 한파에도 불구하고 삼삼오오 짝지어 다니는 유커로 붐빈다. 중심가에 늘어선 화장품판매점에서 점원이 나와 유창한 중국어로 유커를 모은다. 거리 곳곳의 화장품가게부터 옷가게, 심지어 편의점까지 수많은 매장에 ‘Tax Free’라는 간판이 걸려있다.

사후면세점임에도 무관세를 의미하는 ‘Duty Free’라는 단어를 매장간판에 사용한 곳도 눈에 띄었다. ‘Duty Free’라는 간판을 사용한 홍삼·인삼제품 판매장은 내국인인 기자의 입장 자체를 거부했다. 해당 매장의 종업원은 “이곳은 외국인 전용 면세점이라 내국인 입장이 불가하다”고 거듭 주장했는데 조사결과 해당업체는 사후면세점으로 등록한 업체였다.

주변 상인에 의하면 해당 점포는 특정시간에만 손님이 몰린다. 유커들이 가이드를 따라 줄지어 몰려 올라갔다가 20~30분 후 양손가득 쇼핑백을 들고 내려오는 것이다. 이렇게 하루에 10여차례 단체관광객이 오간다. 이 업체에서 판매하는 제품은 해외에 잘 알려진 국내 유명 브랜드의 제품이 아니다.


입장이 금지돼 이 점포가 해당 제품을 얼마에 판매하는지 파악 할 수 없었지만 이는 사후면세점업자들이 말하는 공통적인 ‘수익공식’이다. 여행사와의 커넥션을 통해 해당 점포 방문을 단체관광 코스로 편성하는 것. 단체관광 온 유커들에게 싼 제품을 유명한 브랜드의 제품인 것처럼 속여 시중 유명제품보다 약간 저렴한 가격에 팔아 치운다. 이 방법이 아니면 유커만을 상대로 큰 수익을 거둔다는 것은 ‘환상’에 가깝다는 게 그들의 말이다.

이런 소수의 업체를 제외하고 명동거리 대부분의 사후면세점은 내국인과 외국인에게 모두 판매한다. 한 화장품 사후면세점업자는 “사실상 일반적인 사후면세점은 면세점이라기보다는 관광객에게 약간의 ‘인센티브’를 주는 정도라고 여기는 게 맞다”며 “우리 점포의 경우 내국인과 외국인 판매비중이 비슷한 수준이고 사후면세점으로 신청한 이후 판매량이 급증하지는 않았다”고 말했다.


이유는 중소형 사후면세점의 경우 판매대상이 ‘개별관광객’이기 때문이다. 최근 유커는 젊은 개별관광객이 늘어나는 추세인데 이들의 중소형 사후면세점에서의 소비는 단체관광객보다 적다. 중국에서도 인터넷 직구 등 한국제품을 면세점 가격과 비슷하게 구매할 창구가 여러개 생겼기 때문이다. 일부 관광객은 매장에서 샘플을 사용해보곤 인터넷을 통해 이를 구매해 체류기간 동안 숙소에서 택배를 수령한 후 중국으로 돌아가기도 한다.

/사진=최윤신 기자
/사진=최윤신 기자

◆‘유해시설’ 전락한 사후면세점

취재과정에서 사후면세점이 지역주민들에게 ‘유해시설’로 여겨지는 모습도 볼 수 있었다. 지난 5일 서울 서대문구청 앞에는 10명 남짓의 젊은 학부모들이 추운 날씨에도 불구하고 피켓시위를 벌였다.

이들은 연희초등학교 학부모들로 학교 옆에 들어서는 대형 사후면세점 건립 반대를 위해 비상대책위원회를 결성하고 지난해 12월17일부터 릴레이 시위를 벌이는 중이다. 최근 사후면세점 앞에 무분별하게 주차한 관광버스에 대한 민원이 끊이지 않는 실정이지만 사후면세점 건립 자체를 주민이 단체로 반대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비대위는 학교 맞은편에 사후면세점이 들어선 뒤 아이들의 안전은 물론 교통혼잡, 환경 등 수많은 문제가 발생했다고 주장한다.


한 학부모는 “초등학교 건너편에 사후면세점이 들어온 이후 아이의 알림장에 ‘길가 버스 조심’이라는 문구가 쓰였고 잘 막히지 않던 도로인데 면세점을 드나드는 버스로 인해 교통체증이 생겼다”며 “초등학생들이 지나다니는 도로에 이런 시설이 하나 더 들어선다고 하는데 학부모로서 어찌 반대하지 않을 수 있겠냐”고 하소연했다.

기자는 해당 지역에서 사후면세점이 어떤 문제를 일으키는지 살펴봤다. 연희초등학교 맞은편에는 건강식품을 판매하는 대형 사후면세점이 들어섰다. 주차공간을 갖췄지만 관광객을 태운 대형버스는 주차공간에 진·출입하며 편도 2차선 도로를 모두 사용해야 했다. 해당 면세점의 주차요원은 버스가 들어오고 나갈 때마다 임의로 교통을 통제한다.

바로 맞은편에 이보다 5배나 더 큰 대형 사후면세점이 또 생긴다면 극심한 교통난과 함께 아이들의 안전이 위험할 수 있는 상황. 특히 주변에는 연희초등학교뿐 아니라 외국인학교, 어린이집 등이 위치해 방학이 끝나면 교통량이 훨씬 늘어날 전망이다.

이런 문제는 사후면세점에 대한 규제가 전무한 데서 파생한다. 허가제로 운영되는 사전면세점과 달리 사후면세점은 신고제로 운영되는데 지난해 국감에서 지적된 것처럼 각 세무서에서 면세점을 관리하는 인력이 부족해 신고의 적절성을 제대로 확인하지 못하는 실정이다.

시위 중인 학부모는 “지역공동체를 고려하지 않고 무분별하게 이를 처리한 당국에 화가 치민다”며 “사후면세점 입점이 철회될 때까지 시위를 계속할 것”이라고 말했다.

☞ 본 기사는 <머니위크>(www.moneyweek.co.kr) 제418호에 실린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