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15년 7월. 종합식품기업인 아워홈이 술렁였다. 구자학 회장(고 구인회 LG그룹 창업주의 3남)의 막내딸인 구지은 부사장이 갑작스레 구매식재사업본부장 자리에서 해임돼서다. 부사장 취임 4개월 만에 벌어진 일. 그는 원로 경영진과의 불화설이 나도는 어수선한 분위기 속에서 쓸쓸히 회장실로 자리를 옮겼다. 말이 회장실 발령이지, 그동안 야심차게 추진했던 업무에서 손을 떼야 했다.


#. 구 부사장의 해임으로 아워홈은 반년 사이 대표이사가 세번이나 바뀌는 혼란을 겪었다. 지난해 1월 이승우 전 사장이 임기 2년을 남기고 돌연 교체된 데 이어 6월에는 CJ출신 인사인 김태준 전 사장이 취임 4개월 만에 사표를 냈다. 구 부사장은 이 두 명의 사장 교체의 핵심에 있던 인물. 그가 떠난 보름 뒤엔 이 전 사장이 다시 복귀하는 사태가 벌어졌다. 그야말로 내홍의 연속이었다.

아워홈에 또 한번의 인사파동이 불어 닥쳤다. 물러났던 구지은 부사장이 경영에 복귀한 것이다. 구자학 회장의 1남3녀 중 유일하게 경영에 참여하고 있는 만큼 그의 복귀는 어느 정도 예정된 수순이었다는 분석이다. 다만 아워홈 내부 갈등의 불씨가 여전한 상황. 원로 경영진과의 불편한 재동거가 시작됐다는 관측도 조심스레 나온다.


◆ 1년 만에 재현된 '불편한' 동거

관련업계에 따르면 아워홈은 지난 1월18일 구 부사장을 구매식재사업본부장으로 발령했다. 보직 해임된 지 6개월여 만이다. 이번 인사는 아버지인 구 회장이 직접 단행한 것으로 전해진다.


구 부사장이 복귀하면서 그가 해임되기 전 주도적으로 추진한 아워홈의 외식사업부문이 탄력을 받을 것으로 예상된다. 아워홈은 캘리스코를 통해 키사라, 사보텐, 싱카이, 타코벨, 손수한 등 50여개의 브랜드를 선보이며 외식사업을 확장했다. 업계에서는 구 부사장이 이 같은 사업 확장을 주도한 것으로 본다.


/사진제공=아워홈
/사진제공=아워홈

외식업계 한 관계자는 “구 부사장은 새로운 메뉴를 개발할 때도 직접 시식하고 세부 사항까지 꼼꼼하게 챙기는 것으로 유명하다”며 “최근 아워홈이 외식사업 강화에 초점을 맞추고 있고 구 부사장 스스로 외식사업에 대한 열정이 남다른 만큼 경영 전면에 나선 뒤 본격적으로 외형을 키울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하지만 내부 상황은 그리 녹록지 않다. 인적 갈등을 비롯해 여러 걸림돌이 산재해서다. 우선 사임했다 복귀한 이승우 사장과 다시 손발을 맞춰야 한다. 그동안 아워홈은 이 사장이 단체급식부문을, 외식사업 등 그 외 나머지 사업을 구 부사장이 총괄하는 투트랙 경영체제를 이어왔다. 이 과정에서 두 사람은 크고 작은 마찰을 빚었던 것으로 전해진다.

유통업계 관계자는 “지난해 초 이 사장이 물러나게 된 배경에도 구 부사장과의 갈등이 크게 작용한 것으로 안다”며 “아워홈 원로 경영진은 이 사장을 신임하고, 사내 영향력은 구 부사장이 더 큰 상황에서 1년 만에 재현된 만남이 결코 순탄치 않을 것이라는 우려가 나온다”고 말했다.


구 부사장과 경영진과의 갈등은 지난해 일부 드러나기도 했다. 구 부사장은 지난해 7월 보직에서 돌연 해임된 직후 자신의 페이스북에 “그들의 승리∼평소에 일을 모략질 만큼 긴장하고 열심히 했다면 아워홈이 7년은 앞서 있었을 것”이라며 “외부는 인정, 내부는 모략. 열심히 일만 하는 인재들은, 일 안 하고 하루 종일 정치만 하는 사람들을 이길 수 없다”는 글을 올려 내부 불화설을 증폭시켰다.

당시 업계는 구 부사장이 사업구조개편과 더불어 CJ출신 등 외부 인사를 영입하는 과정에서 기존 경영진과 갈등을 빚었던 것으로 해석했다. 문제는 과거의 갈등이 해결되지 않았다는 점. 일각에서는 아직 기존 경영진이 남아있는 만큼 내부 구조조정 등으로 아워홈이 또 한번 내홍을 겪을 가능성에 무게를 싣는다.

내부 사정에 밝은 업계 관계자는 “서로 자신들의 입맛에 맞는 인사들로 채우려다 보니 아워홈 내부에 각기 다른 생각을 하는 세력들이 생겨난 것”이라며 “구 부사장의 복귀로 행여 자리가 위태해지지 않을까 일부 직원들 사이에선 팽팽한 긴장감이 돌고 있다”고 귀띔했다.

아워홈 관계자는 “내부 경영진과의 갈등이나 구 부사장의 인사 배경에 대해서는 회사 측의 별다른 공식 입장이 없다”며 “구 부사장은 구내 물류파트를 총괄하는 임원으로 식품 쪽 중요한 인프라를 담당하게 된다. 현재 업무를 파악하고 있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아워홈 승계작업에 대해서도 “아직 정해진 것이 없어 답변할 수 없다”고 말했다.

◆ 중심에 선 후계구도… 막내딸로 속도 내나

구 부사장은 구 회장의 막내딸로, 형제들 중 유일하게 경영에 참여한 인물이다. 오너 일가 중 여성의 경영참여가 없는 범 LG가에서도 홍일점이다.

그는 서울대 경영학과를 졸업한 뒤 삼성인력개발원과 왓슨 와이트 코리아 수석컨설턴트를 거쳐 2004년 아워홈 구매물류사업부장으로 입사했다. 2009년 아워홈에서 분할된 자회사 캘리스코 대표를 맡으며 본격적으로 경영자의 길을 걸었다. 현재 캘리스코 지분율을 46%까지 끌어올린 구 부사장은 최대주주이자 대표이사로서 영향력을 키워가고 있다.

다만 구 부사장의 아워홈 지분율은 오빠인 구본성씨(38.5%)에 비해 낮은 20.67%다. 나머지는 장녀인 구미현씨가 19.28%, 차녀인 구명진씨가 19.6%를 보유 중이다. 업계는 그러나 ▲장남이 경영에 참여하지 않는 점 ▲구 부사장이 알짜 계열사의 최대 주주인 점 ▲그룹 내 입지가 확고한 점을 들어 구 부사장이 후계자가 될 가능성이 큰 것으로 보고 있다.

이제 시선은 구 부사장에 쏠렸다. 논란의 중심이냐 변화의 중심이냐의 기로에 선 아워홈. 구 부사장은 과연 어떤 수를 둘 것인가. 진짜 밥그릇 싸움의 ‘주사위’가 던져졌다.

☞ 본 기사는 <머니위크>(www.moneyweek.co.kr) 제420호에 실린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