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은 좋은 먹잇감이다.”

2011년 4월 한국을 방문한 우쓰노미야 겐지 일본변호사연합회장의 말이다. 그는 일본에서 ‘대부업체 피해 전문가’로 활약했으며 일본 법정 최고금리와 대출이자 낮추기 운동을 주도한 인물이다.


우쓰노미야 회장은 “1998년 일본 최대 야쿠자 조직의 하나인 야마구치 조직의 고히시회가 한국에 진출했다”며 “한국정부가 대부업체의 대출금리를 낮추지 않으면 빈부격차가 더 벌어지는 부작용을 낳을 수 있다”고 우려했다.

그가 방한했던 당시 우리나라의 법정 최고금리는 연 44%였다. 반면 일본은 이보다 낮은 연 15~20% 수준이었다. 일본 대부업계 입장에서 한국은 ‘기회의 땅’이었던 셈이다. 그로부터 약 6년 후 일본계 대부업은 한국에서 승승장구했다. 2011년 저축은행 부실사태를 기회로 일부 대부업체가 부실 저축은행을 인수해 당당히 제2금융권으로 급성장했다.


서민금융지원강화방안 발표하는 임종룡 금융위원장. /사진=뉴시스 조성봉 기자
서민금융지원강화방안 발표하는 임종룡 금융위원장. /사진=뉴시스 조성봉 기자


불행인지 다행인지 일본 대부업체들의 놀이터였던 우리나라 대부업시장은 조금씩 규제를 강화하는 추세다. 지난 3일 정부가 ‘대부업법 개정안’을 통해 법정 최고금리를 연 27.9%로 낮춘 것이 근거다. 우리나라 법정 최고금리는 연 44%에서 2011년 6월 연 39%, 2014년 연 34.9%로 낮아졌다. 급기야 지난 3일 또 다시 연 7%포인트가 내렸다. 이번 대부업법 개정안의 유효기한은 2018년 12월31일까지다.

◆정부, “더 낮춰야”… 대부업계 반발


정부는 이번 금리인하 시행으로 330만명의 이자부담이 줄어들 것으로 예상했다. 또 일본(연 16.5%)과 미국(연 16%), 프랑스(‘평균시장금리+3분의 1수준’까지 허용) 등 주요 선진국의 상한금리가 우리나라보다 낮아 장기적으로 더 낮춰야 한다는 입장이다.

이에 대부업계는 반발한다. 법정 최고금리를 내리면서 저신용자들이 아예 돈조차 빌리지 못하는 상황으로 몰릴 수 있다는 게 이들의 주장이다. 대부업계에 따르면 법정 최고금리가 연 39%일때 대부업계에서 취급한 평균 신용등급이 7.8등급이었지만 연 34.9%로 낮아진 뒤에는 7.3등급으로 높아졌다. 연 27.9%까지 내려가면 6등급대로 더 높아질 것이란 분석이다. 그동안 저축은행을 이용했던 금융소비자가 이젠 대부업체의 문을 두드려야 하는 상황이다.
대부업계의 대출 문턱이 높아지는 이유는 금리인하로 수익성 하락이 우려돼서다. 이에 대출심사를 강화하고 신용등급이 높은 고객 위주로 대출을 진행해 부실률을 낮추는 전략을 펼 것으로 보인다.


한국대부금융협회 관계자는 “이번 법정 최고금리 인하로 가장 큰 피해를 입은 곳은 대부업계”라며 “대출을 통해 수익을 챙길 수 있는 손익분기점이 연 30.65%인데 연 27.9%로 낮추면 사실상 적자다. 현 기준으로 볼 때 매출이 7000억원가량 줄어들 것”이라고 말했다.

위기의식을 느낀 대부업계는 세미나를 통해 최고금리 인하에 따른 피해사례를 적극 알리고 이른바 ‘언론플레이’를 펼쳤다. 대부금융협회는 지난 12일 도우모토 히로시 도쿄정보대학 교수를 초청, 세미나를 열고 일본을 사례로 들며 법정최고금리 인하의 부작용을 설명했다.


도우모토 히로시 교수는 “(일본의 경우) 과도한 상한금리 인하가 소비를 줄이고 계층 간 신용격차를 늘렸다”며 “이는 결국 경제성장률 저하와 불법사금융 확대를 초래하게 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일본과 다른 한국 대부업 금리체계

대부업계가 법정 최고금리 인하에 따른 부작용의 사례로 제시한 일본은 2010년 대부업 상한금리를 연 29.2%에서 연 20%로 9.2%포인트 인하했다. 이후 단계적으로 금리를 낮춰 현 수준인 16.5%에 이르렀다.

대부업협회의 자료에 따르면 일본 대부업 시장규모는 2006년 20조9000억엔에서 2014년 6조2000억엔으로 70%가량 급감했다. 불법 사금융도 이전보다 증가했다. 일본 경찰청에 따르면 금리인하 이후 불법사금융 피해액은 2011년 117억엔에서 2013년 150억엔으로 늘었다. 따라서 최근 일본에선 상한금리를 다시 올려야 한다는 여론이 거세졌다는 게 대부업계 관계자의 설명이다.

도우모토 교수는 “(일본은) 금리인하로 계층 간 신용격차가 확대돼 공무원과 대기업 직원 등은 저금리로 대출을 받는 반면 자영업자와 영세기업 종사자 등은 대출을 받지 못하는 문제가 발생했다”고 지적했다.

하지만 금융당국의 생각은 다르다. 금융위원회 관계자는 “우리나라와 일본 대부업계는 규제와 금리체계가 다르다”며 “일본에서 금리인하로 부작용이 생겼다고 해서 우리나라도 같은 현상이 나타날 것이라고 예측하는 것은 무리가 있다”고 강조했다. 즉 일본을 사례로 불안감을 키우는 것은 현실과 맞지 않는다는 뜻이다.

오히려 법정 최고금리 인하로 긍정적 요인이 많을 것이라는 목소리도 있다. 대표적인 것이 열악한 대부업체가 점차 설 곳을 잃을 것이라는 점이다. 이른바 대부업계의 ‘교통정리’가 가능해진다.

금융위원회 관계자는 “일본은 일정규모의 자본금을 갖춰야 대부업 등록이 가능한데 우리나라는 지자체에 신고하면 상대적으로 쉽게 대부업을 할 수 있다”며 “따라서 수시로 개업하고 폐업하는 사례가 부지기수다. 법정 최고금리를 낮추면 이 부작용을 줄일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일본의 법정 최고금리 인상여론에 대해서도 금융당국은 반대로 해석했다. 이 관계자는 “일본에서 상한금리를 인상해야 한다는 여론은 일부 기업들이 조장하는 것”이라며 “현재 일본 국회에 (관련 법안이) 상정조차 되지 않았다. (상한금리가 올라가는 일은) 현실적으로 어렵다고 본다”고 덧붙였다.

박진우 KB금융지주경영연구소 연구원은 “앞으로 우리나라도 금융소비자 보호가 점점 더 강화되는 추세로 갈 것”이라며 “이런 흐름을 볼 때 (대부업계 바람과 달리) 법정 최고금리는 계속해서 인하될 수밖에 없다”고 전망했다.

☞ 본 기사는 <머니위크>(www.moneyweek.co.kr) 제427호에 실린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