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료사진=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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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권사가 주가연계증권(ELS) 상환과 관련된 주식을 대량 매도한 것은 정당한 거래행위로 볼 수 없다는 판결이 나왔다. 이번 판결은 ELS 시세조종 사건에서 투자자가 손해를 배상받는 첫 사건이다.

특히 지난해 법원이 증권집단소송을 허가한 이후 여러 소송에서 집단적 움직임을 보이고 있어 남은 소송에 귀추가 주목된다. 하지만 법원이 사안마다 다른 판단을 내릴 수 있어 대우증권 판례만 믿고 승소를 기대하기에는 무리가 따른다는 지적이다.

◆대우증권, 피해자에 보상금 57억원 지급


대법원 2부(주심 이상훈 대법관)는 장모씨(62) 등이 “중도상환 조건이 성취됐지만 대우증권이 ELS 상품의 중도상환을 막기 위해 시세를 조종해 손해를 입었다”며 대우증권을 상대로 낸 상환금 청구소송에서 원고 승소 판결한 원심을 확정했다고 지난 7일 밝혔다.

이번 상환금 청구소송의 원고는 2005년 대우증권이 발행한 195회 ‘삼성SDI 신 조기상환형 ELS’를 매입한 투자자들이다. ELS는 투자한 기초자산이 일정한 조건을 만족하면 약속된 수익률을 지급하는 파생상품이다.


이 ELS는 계약 후 4개월마다 삼성SDI의 주가를 평가해 기준가인 10만8500원과 같거나 이보다 높을 경우, 또 기준가격 결정일부터 중간평가일 사이에 단 한번이라도 기준가격의 110% 이상 상승한 적이 있으면 연 9%의 수익률로 중도 상환되는 상품이다.

소송을 낸 장씨 등은 “대우증권이 상환시기마다 삼성SDI 주식을 다량 매도했다”며 “이로 인해 수익률 조건을 달성하지 못했고 대우증권은 상환금을 지급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장씨 등은 투자원금 약 2억3600만원에서 30%의 손실을 본 것으로 알려졌다.


실제 이 ELS의 중간평가일에 삼성SDI의 주가는 장중 기준가격을 넘어선 10만9000원을 기록했다. 하지만 대우증권이 장 종료 10분 전 8만6000주를 한번에 던지면서 삼성SDI의 주가는 기준가격 아래인 10만8000원에 장을 마감했다.

대우증권 측은 이날 주식을 대량 매도한 것이 델타헤지(위험회피)를 위한 정당한 거래행위라고 주장했지만 재판부는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델타헤지란 기초자산과 옵션의 계약수를 변화시켜 가격 변화를 막는 투자전략이다.


앞서 1·2심 재판부는 “대우증권의 매도행위로 삼성SDI 보통주의 종가가 기준가격 미만으로 결정됐다고 보인다”며 “대우증권의 행위로 주가연계증권의 중도상환 조건의 성취가 방해됐다고 봄이 타당하다”고 판단했다.

이어 “대우증권 측의 대량매도행위는 장씨 등에 대한 투자자 보호의무를 게을리한 것으로 신의성실에 반한다”며 “민법 제150조 제1항이 조건의 성취로 인해 불이익을 받을 당사자가 신의성실에 반해 조건의 성취를 방해한 때는 상대방은 그 조건이 성취된 것으로 주장할 수 있다”며 원고승소 판결을 내렸다.

대우증권은 판결에 따라 지난달 말 피해자 21명에게 57억원가량의 보상금을 지급했다.

◆ELS 소송, 사안에 따라 ‘승패’ 갈려

대우증권 판결에서 대법원이 투자자의 손을 들어주면서 다른 소송을 진행 중인 피해자들의 기대감도 커졌다. 하지만 비슷한 사건처럼 보여도 사안에 따라 승패가 갈릴 수 있어 섣부른 기대감은 금물이라는 지적이다.

실제 지난 10일 대법원은 2006년 발행된 ‘신영증권 제136회 ELS’ 투자자들이 시세조종 혐의로 글로벌투자은행인 BNP파리바와 판매사인 신영증권에 제기한 손해배상소송에서 원고 패소 판결을 내렸다.

투자자들은 BNP파리바가 이 ELS의 상환기준일인 2006년 9월4일에 조기상환이 유력한 상황에서 장 막판 기초자산인 기아차 매물을 쏟아내 수익 확정을 무산시켰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대법원은 이를 합리적인 헤지운용으로 판단했다. 

이에 따라 현재 진행 중이거나 소송이 제기될 가능성이 높은 사안들에 대한 관심도 높아졌다. 법무법인 한누리에 따르면 지난 1월29일 서울고등법원은 ‘한국투자증권 부자아빠 ELS 289호’ 집단소송에 관한 허가 결정을 내렸다. 이 상품에 투자한 투자자들은 한국투자증권이 ‘백투백헤지’를 맡긴 도이치뱅크가 기초자산을 대량 매각하며 손실이 났다고 주장했다.

또 ‘한화스마트 주가연계증권(ELS) 제10호(원금비보장형)’와 관련해 상품위험 헤지를 담당한 로열뱅크오브캐나다(RBC)를 상대로 "만기상환금의 지급위험을 피하기 위해 주가 조작을 했다"고 주장하는 피해자들이 손해배상 청구 집단소송을 진행 중이다.

법조계 관계자는 “ELS 관련 소송은 사안에 따라 승패가 갈리는 경향이 있어 대우증권 판결로 다른 소송을 예단하기는 이르다”며 “증권집단소송은 시간과 비용이 너무 오래 걸리기 때문에 이번 판결로 활성화되기는 힘들 것”이라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