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 되는' 고급브랜드… 판 바뀐 글로벌시장

 

글로벌 완성차업체들이 ‘고급브랜드’를 잇따라 내놓았다. 신흥시장 경기침체가 지속되고 기존 주력시장에서도 치열한 경쟁을 벌여야 해서다. 꾸준히 성장 중인 고급차시장을 정조준해 새로운 판로 찾기에 나선 셈이다. 나아가 고급브랜드를 통한 후광효과까지 노리고 있어 업체들의 치밀한 전략대결이 흥미롭다. 

 

업체들이 고급차시장에 눈독을 들인 배경은 ‘꾸준한 성장률’과 ‘높은 수익성’에서 찾을 수 있다.


렉서스 LC500h. /사진제공=렉서스
렉서스 LC500h. /사진제공=렉서스

◆ 까다로운 소비자 요구 '고급차 경쟁' 촉발

글로벌 시장조사업체 IHS와 현대자동차그룹 등에 따르면 전세계 고급차시장은 2010년부터 2014년까지 연평균 10.5%의 판매증가율(CAGR 기준)을 기록해 대중차시장의 6.0% 증가율을 크게 웃돌았다. 전체 판매량은 대중브랜드보다 적지만 판매증가율은 고급브랜드가 높다.


자동차업계에선 사람들이 개인적인 만족과 경험을 중시하는 쪽으로 성향이 변하면서 고급차 선호도가 높아졌다고 분석한다. 자신의 가치를 높여주는 제품과 경험에 투자한다는 것. 완성도가 높은 제품만 인정받기에 이를 충족시키지 못하면 뒤처질 수밖에 없다는 설명이다.

꾸준한 성장률 외에도 완성차업체들이 고급차시장에 눈독을 들이는 건 ‘수익성’ 때문이다. 고급차가 주력인 브랜드들의 영업이익률이 대중차를 파는 브랜드보다 높은 것으로 알려졌다.

◆고급브랜드 인수하거나 만들거나



최근 프랑스 자동차회사 르노는 지난달 고급브랜드 '알피느'(alpine) 출범을 알렸다. '국민차'로 굳어진 이미지를 벗어나기 위해 1995년 운영이 중단된 브랜드를 살려냈다. 엄밀히는 고급스포츠카브랜드 성격을 띤다. 1970년대 모터스포츠로 쌓은 명성을 이어감은 물론 르노-닛산 얼라이언스 내에서 세단, SUV 중심의 '인피니티'와 차별점을 두기 위해서다.

또 하나의 프랑스업체인 PSA(푸조·시트로엥그룹)는 시트로엥 차종인 DS를 별도의 고급브랜드로 분리했다. 그동안 푸조와 시트로엥을 앞세운 투 트랙 전략을 펼쳤지만 비슷한 시장을 공략한 탓에 간섭을 피할 수 없었다. 이에 PSA는 DS로 고급차시장을 노리며 푸조는 중급, 시트로엥은 보급형 모델로 각자의 타깃시장을 맡는다.

현대자동차도 지난해 제네시스브랜드를 내놓으며 고급차시장에 도전장을 던졌다. 그동안 현대차는 ‘에쿠스’나 ‘쏘나타’처럼 개별차종을 브랜드로 써왔다. 제네시스도 원래 차 이름이었지만 고급브랜드 필요성과 해외에서의 인지도를 고려해 브랜드명으로 정했다. 강력한 브랜드가 뒷받침되지 못하면 앞으로의 경쟁에서 뒤처질 것을 우려한 결정이다.

 

인피니티 Q50. /사진제공=인피니티
인피니티 Q50. /사진제공=인피니티

세 회사의 고급브랜드 전략 선택에는 일본차업체들의 성공도 한몫했다. 1980년대 북미시장에 ‘렉서스’라는 별도 고급차브랜드를 내놓은 토요타나 이에 대응하기 위해 ‘인피니티’를 앞세운 닛산, ‘어큐라’로 맞선 혼다가 대표적이다.

고급차시장을 노린 인수·합병(M&A)도 활발했다. 2000년대 후반 재규어랜드로버는 인도 완성차업체 타타모터스로 넘어갔고, 스웨덴 볼보자동차는 중국의 토종 완성차업체 지리자동차에 인수됐다.

◆ ‘플랫폼 공용화’
대중브랜드 경쟁력 높여


요즘 자동차 설계에 있어 화두는 ‘플랫폼 공용화’다. 차를 구성하는 기본적인 요소들을 차종마다 따로 개발하지 않는다. 제품을 비슷한 크기나 성격으로 묶어 같이 쓸 수 있는 요소를 늘리는 데 주력한다. 높은 생산성은 제조원가를 줄일 수 있고 품질 상향평준화를 가능케 한다.

럭셔리카의 대명사 롤스로이스. 이 브랜드의 막내 ‘고스트’는 BMW 7시리즈와 여러 요소를 공유한다. 하지만 같은 차로 보는 사람은 없다. 어떻게 성격을 달리 표현하느냐가 관건인 셈이다. 결국 차별화 요소는 감성이며 이를 자극하기 위한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고급화’라는 게 업계의 공통된 목소리다. 폭스바겐그룹, BMW그룹, FCA, PSA 등 글로벌업체들은 그룹 단위 움직임이 뚜렷하다.


롤스로이스 고스트 시리즈 II. /사진제공=롤스로이스
롤스로이스 고스트 시리즈 II. /사진제공=롤스로이스


고급차의 품질력을 유지하기 위해 ‘자국내 생산’을 유지하는 점도 눈여겨 볼 점이다. 고급기술을 개발하며 얻은 노하우는 곧 협력업체들의 경쟁력으로 이어질 수 있어서다. 협력업체들의 기술력이 높아지면 완성차 품질이 좋아지는 건 당연하다. 롤스로이스와 벤틀리는 전량 영국생산이고, 렉서스는 일본에서의 생산비율이 80% 이상이다. 벤츠나 BMW도 핵심 차종은 독일에서 만든다.


이와 관련 현대자동차의 한 연구원은 “고급차에 먼저 쓰인 기술은 점차 대중차로 옮겨간다”면서 “값이 비싼 고급차에 선행기술이 들어간 뒤 양산효과로 단가가 떨어지면 추후 그 기술이 대중차에 적용될 수 있다”고 전했다.

또 다른 관계자는 “고급기술을 개발하는 데 돈이 많이 들지만 폭넓게 활용되면 결국 제품력으로 이어진다”며 “늘어난 판매량에 따른 수익은 결국 다시 고급차 연구개발비로 쓸 수 있다”고 고급차 개발 선순환효과를 강조했다.  

 

☞ 본 기사는 <머니위크>(www.moneyweek.co.kr) 제428호에 실린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