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니 포커스] 되살아나는 '연대보증 망령'
성승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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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정 최고금리를 낮추는 대부업법 시행령이 도입된 지 약 한달이 지났다. 정부는 지난 3월3일 법정 최고금리를 연 34.9%에서 연 27.9%로 연 7%포인트 인하했다.
아직 시행 초기인 만큼 외형적으로는 큰 변화가 나타나지 않는 모양새다. 하지만 내부적으로는 변화가 감지된다. 대형대부업계와 중소형대부업계는 법정 최고금리 인하를 계기로 주판알을 튕기며 각자 제 살길을 모색하고 나섰다. 불행하게도 이 같은 움직임이 소비자들에겐 달갑지 않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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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감원 /사진=머니투데이 이동훈 기자 |
◆연대보증제도 부활하나
가장 우려되는 점은 연대보증제도 부활이다. 연대보증이란 금융기관이 기업(개인)에 돈을 빌려줄 때 원래 채무자가 갚지 못할 경우 이 빚을 대신 갚을 제삼자를 미리 정해놓는 제도다. 정부는 연대보증으로 전재산을 잃고 파산하는 피해자가 늘자 2012년부터 시중은행과 제2금융권 연대보증제도를 폐지했다. 그러나 대부업체나 사금융은 이 대상에서 제외됐다.
이에 따라 대부업체나 사채시장에선 공공연하게 연대보증을 시행했다. 실제 신용보증기금에 따르면 연대보증으로 파산한 사례가 연간 1만명이 넘은 것으로 나타났다. 개인뿐만 아니라 중소기업도 여전히 연대보증이 횡행했다. 기술보증기금에 따르면 연대보증 늪에 빠진 중소기업의 피해규모는 지난해 말 2조원에 달했다.
문제는 법정 최고금리가 내려가면서 이 같은 피해가 더 늘 것이란 점이다. 대출문턱이 높아지고 수익이 줄면서 일부 대부업체가 연대보증 대출영업에 나서고 있어서다. 특히 현행법상 대부업체가 연대보증제도를 부활해도 금융당국이 이를 막을 수 있는 법적 권한이 없어 심각성을 더한다. 실제 일부 대부업체는 저신용자를 대상으로 연대보증을 서면 대출이 가능하다고 안내한다.
A대부업체 관계자는 “신용불량자 혹은 신용등급 7등급 이하면 신용등급 5등급 이상 혹은 소득이나 재산이 있는 사람이 보증을 설 경우 원하는 한도 내에서 대출이 가능하다”고 설명했다.
강형구 금융소비자연맹 사무국장은 “(대부업계의) 대출심사가 강화되면서 연대보증을 서는 이용자가 늘고 있다”며 “아직은 법정 최고금리 인하정책이 시행된 지 얼마 되지 않아 수치로 확인할 수 없지만 우려가 되는 것은 사실”이라고 지적했다.
이와 관련 김지훈 금융위원회 선임조사역은 “법의 사각지대에 놓인 대부업체들이 보증인을 세워 대출하는 사례가 충분히 발생할 수 있다”며 “(법정 최고금리 인하에 따른) 부작용을 최소화하기 위해 대부업체의 모니터링을 강화하는 등 대책을 마련할 것”이라고 말했다.
물론 모든 대부업체가 연대보증을 도입하는 것은 아니다. 아프로파이낸셜대부(러시앤캐시)와 산와대부(산와머니), 웰컴크레디라인대부(웰컴론), 바로크레디트대부(바로바로론), 리드코프 등 대형대부업체는 2013년 자율적으로 연대보증제도 폐지에 동참했다.
대부업계 관계자는 “대형대부업체는 신용불량자의 경우 대출이 안되고 보증인이 있다고 해도 대출한도를 늘리지 못한다”며 “제삼자에게 빚을 떠넘기는 사례는 없다”고 강조했다.
◆대형사, ‘대부업’ 명칭 변경 추진
대형대부업체는 ‘대부업’ 이미지 탈피작업에 나섰다. 금리가 연 20%대로 기존 제2금융권 수준으로 낮아졌고 오는 7월부터 금융감독원의 감독을 받는 만큼 금융업의 지위를 인정받아 불법 사채시장과 구분짓겠다는 입장이다. 대부업법에 따르면 올해 7월25일부터 자산규모가 120억원 이상이고 2개 이상의 시·도에 영업점을 낸 대부업체는 금감원의 감독을 받는다.
대부업은 금전의 대부(돈 빌려주기) 또는 그 중개업무를 사업으로 하는 것을 의미한다. 사채업자뿐만 아니라 신용카드 연체대납업자, 대출중개업을 하는 사람도 대부업자로 표현된다. 또 불법사채와 불법추심, 불법(금융)영업 등 불법과 합법을 구분하지 않고 모두 대부업으로 통일해 사용한다.
한국대부금융협회는 부정적인 내용이 담긴 대부업 대신 소비자금융·생활금융·생활여신 등 새로운 용어로 바꿔야 한다고 주장했다. 협회 관계자는 “대부업은 불법과 합법을 구분하지 않고 모든 내용이 담긴 단어”라며 “불법사채도 대부업으로 표현하면 제도권에 진입을 준비 중인 대형대부업체로서는 상대적인 차별을 받을 수밖에 없다. 사회적 공감대를 형성해 명칭을 개선하는 작업에 나설 계획”이라고 설명했다.
대부업을 의무적으로 사용하는 법체계도 개선할 것을 요구했다. 시중은행과 제2금융권은 금융권이라는 용어를 사용하지 않아도 법적으로 문제되지 않는다. 하지만 대부업은 ‘대부업’ 용어를 의무적으로 사용해야 한다. 즉 강제사항이다. 만약 이를 지키지 않으면 2000만원 이하의 벌금과 1회 적발 시 3개월 영업정지, 2회 적발 시 6개월 영업정지, 3회 적발 시 등록취소 등의 처벌을 받는다.
한 대부업체 관계자는 “제도권 금융은 제1·제2금융권이라는 용어를 사용하지 않아도 무관한데 대부업은 명칭을 쓰지 않으면 비교적 무거운 처벌을 받는다”며 “중장기적으로 대형대부업체에 한해서 이 규정을 완화하는 방안이 모색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대부업계가 요구한 명칭교체가 현실화되기는 힘들 전망이다. 이를 위해선 대부업법을 개정하고 국회에 상정, 통과하는 작업이 필요하다. 현재의 흐름으로 볼 때 여론의 공감대를 형성하기 힘들 것으로 보인다. 앞서 지난 18대 국회에서도 대부업을 ‘소비자금융업’으로 바꾸는 내용의 대부업법 개정안이 발의됐으나 여론의 반대로 무산됐다.
대부업협회 관계자는 “저축은행도 상호금고에서 지금의 명칭으로 바뀌는 데 30년이 걸렸다”며 “이번 명칭변경은 중장기적으로 접근할 계획”이라고 한발 물러서는 태도를 보였다.
강형구 금융소비자연맹 국장은 “대형대부업체가 명칭을 변경하려는 움직임은 충분히 공감한다”면서도 “이를 위해선 우선 대부업의 민원을 줄이고 사회적 공감대를 얻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아직까지 대부업을 이용하면서 고통받는 서민들이 적지 않다”며 “단순히 사회공헌·이미지 광고에만 치중하지 말고 실질적인 서민 금융기관으로서의 모습을 보여야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 본 기사는 <머니위크>(www.moneyweek.co.kr) 제429호에 실린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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