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차가 2014년 제네바모터쇼에서 선보인 콘셉트카 인트라도. 탄소섬유로 만든 차체가 특징이다. /사진=현대자동차 제공
현대차가 2014년 제네바모터쇼에서 선보인 콘셉트카 인트라도. 탄소섬유로 만든 차체가 특징이다. /사진=현대자동차 제공

경량화(輕量化)는 자동차 업계의 딜레마다. 반드시 추구할 가치면서도 무조건 좇기엔 포기해야할 것들이 적지 않다. 특히 ‘동력성능’과 ‘환경’이라는 가치 중 어느 한쪽만을 고르기가 점점 어려운데다, 자동차의 필수요소인 ‘안전’까지 고려하면 더욱 그렇다.

금융위기 이전엔 자동차회사들은 ‘성능’에 집중했다. 더 빠르게, 더 우렁차게 달릴 수 있다는 점을 강조하며 사람들을 유혹했다. 차 덩치가 커지면서 무게가 늘면 배기량을 키우는 단순한 계산법으로 대응했다. 따라서 최고출력이나 최대토크, 최고시속처럼 동력성능을 가늠하는 숫자들에 주목할 수밖에 없었다.

금융위기 이후엔 ‘효율’이 핵심과제로 떠올랐다. '큰 배기량'이 선택기준이 아니라 같은 연료로 얼마나 더 달릴 수 있는지에 대한 관심이 늘기 시작했다. 디젤차와 하이브리드차 보급도 이와 맞물렸다. 배기량이 적은 차를 타는 게 부끄러운 행동이 아니라 오히려 자랑거리로 바뀌었다.

배기량이 줄어든다는 건 그만큼 덜 먹고 덜 내보낸다는 의미여서 큰 힘을 내는 데 한계가 생긴다. 일반적인 내연기관 자동차들엔 더 많은 산소를 들이마셔 폭발력을 높이도록 돕는 터보차저 따위의 과급기를 붙이면 쉽게 해결되지만, 전기모터가 힘을 내는 전기차나 하이브리드차엔 적용하기가 쉽지 않다. 게다가 배터리 무게도 만만치 않아서 보다 근본적인 처방이 필요해졌다. 그래서 업체들은 '경량화'를 재정의했다.

◆글로벌 자동차회사들은 ‘소재’와 ‘설계’ 경쟁 중

포르쉐나 아우디, 재규어-랜드로버, BMW 등 프리미엄 브랜드는 물론 현대·기아차도 신소재 개발과 적용에 많은 공을 들이고 있다.

BMW i3 CFRP /사진=BMW 제공
BMW i3 CFRP /사진=BMW 제공


업계에서 요즘 가장 각광받는 건 탄소섬유강화플라스틱(CFRP)이며,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회사는 BMW와 현대·기아차가 대표적이다. CFRP는 철보다 절반가량 가볍지만 강도는 같거나 그 이상으로 알려졌다. 플라스틱의 단점을 탄소섬유가 보완해준다.

BMW는 전기차 'i' 시리즈를 선보이며 차의 골격을 CFRP로 만든 점을 적극 내세웠다. 그동안 전기차나 하이브리드차들이 무거운 배터리 탓에 차의 움직임이 둔해진 점을 주목했고, CFRP를 뼈대부터 적극 활용했다. 그 결과 적은 힘으로도 놀라운 성능을 낼 수 있게 돼 경량화를 통해 ‘역동’을 강조하는 회사의 철학을 실현했다.

현대·기아차는 파노라마 루프 프레임을 CFRP로 만들고 있다. 예전엔 이 부품을 무거운 강철로 만든 탓에 성인 1명을 지붕에 얹고 다니는 것과 마찬가지였고, 무게중심도 그만큼 높아지며 차의 핸들링 성능에 불리하게 작용했다. 그런데 CFRP로 소재를 바꾸면서 성인 여성이 혼자 들 수 있을 만큼 가벼워졌다. 핸들링 성능이 개선되는 건 물론 전체 무게도 줄어드는 효과를 가져왔다. 반대로 다른 부분에서 무게가 늘어나더라도 상쇄하는 여지가 생긴다.



알루미늄 소재가 많이 쓰인 기아 니로 /사진=기아차 제공
알루미늄 소재가 많이 쓰인 기아 니로 /사진=기아차 제공

그리고 무거운 ‘철’을 가벼운 ‘알루미늄’이나 ‘마그네슘’ 합금으로 대체하려는 움직임도 꾸준하다. 값이 비싸지만 엔진과 섀시 구조 등 주요 부위 소재를 바꿈으로써 무게를 가볍게 하고 물성을 유지하려는 노력이다.

철을 고집하던 현대·기아차는 ‘아이오닉 하이브리드’와 ‘니로’에 새로운 플랫폼으로 높은 차체강성과 경량화를 동시에 추구했다. 후드나 테일게이트처럼 면적이 넓은 곳은 물론 백빔과 로워암 따위의 섀시부품에도 알루미늄 소재를 적용해 무게를 줄였다.

값이 더 비싼 마그네슘은 보이지 않는 주요 부위에 쓰이고 있다. 포르쉐는 새로운 컨버터블 차종 지붕 구조물을 마그네슘으로 대체했다. 알루미늄보다 강하고 가볍다. 그렇지만 성형이 어려워서 생산 단가가 비싸 알루미늄처럼 두루 쓰이진 않는다.

이와 함께 설계도 경량화를 추구하고 있다. 엔진이나 변속기의 구조를 바꿔 부품수를 줄이거나 차체구조 설계를 새롭게 하는 노력은 필수다.

아우디 스페이스 프레임(ASF) /사진=아우디 제공
아우디 스페이스 프레임(ASF) /사진=아우디 제공

아우디는 알루미늄을 가장 잘 활용하며, 이와 관련된 설계기술을 꽤 보유한 회사다. 플래그십 SUV Q7도 2세대 모델을 내놓으며 325kg을 줄였다. 배선과 엔진, 변속기, 냉각장치, 연료탱크 구조 등 14가지 부품 무게를 줄여 압도적인 덩치에도 무게는 2224kg에 불과하다.

그리고 아우디의 스페이스 프레임(ASF)도 주목할만하다. 차체강성은 높이면서 무게는 오히려 줄이는 기술이다. 알루미늄 프레임은 스틸구조의 일반차체보다 약 120~140kg까지 무게를 줄이는 효과를 낸다.

ASF는 스틸 차체에 비해 비틀림 강성이 약 60% 이상 향상돼 주행안정성도 좋아진다. 가공하기도 쉬워 충격에 강한 구조로 설계하기 쉽다. 소재 특성상 노면으로부터 오는 진동을 흡수해 승차감도 좋아진다. 게다가 알루미늄은 부식이 적고 재활용이 쉬워서 여러모로 환경오염을 줄이는 데 도움을 준다.

인피니티는 용접방법을 바꾸고 고장력강을 써서 차체를 가볍게 만들었다. /사진=인피니티 제공
인피니티는 용접방법을 바꾸고 고장력강을 써서 차체를 가볍게 만들었다. /사진=인피니티 제공

인피니티는 초고장력강(AHSS, Advanced High Tensile Strength Steel)의 사용을 늘리면서 용접방법도 바꿨다. 스포츠 세단 Q50은 기존대비 약 40kg의 경량화를 실현했지만 전면부 강성은 60% 개선됐다.

그리고 영국 수제 스포츠카 회사 ‘로터스’는 경량화를 추구하며 성능을 높인다. 고성능 스포츠카지만 경차수준의 무게를 자랑한다. 차체 소재를 플라스틱으로 바꾸고 운전에 불필요한 요소를 모두 걷어낸 탓이다. 주행시엔 공기흐름을 이용해 차체를 눌러주며 안정감을 더한다. 첨단 공학기술의 극단적 예다.

이처럼 자동차 회사들이 ‘새로운 방식’의 경량화에 집중하는 배경은 플랫폼 공용화와도 맞물린다. 엄격해진 환경규제를 충족시키면서도 다양해진 제품라인업에 유연하게 대응하기 위해 새로운 시도를 거듭하는 상황이라고 볼 수 있다.

업계 관계자는 “예전 경량화는 친환경을 핑계 삼아 원가절감을 노리는 목적이 있었지만 요즘엔 경쟁제품과의 차별화 요소로 작용한다”면서 “환경규제를 충족하면서도 운전 본연의 즐거움을 해치치 않아야 하는 숙제를 어떻게 해결하느냐가 앞으로 성패의 관건”이라고 평했다.


아우디 Q7 경량화 기술 /사진=아우디 제공
아우디 Q7 경량화 기술 /사진=아우디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