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버스토리] 2016 대한민국 출산 보고서
박찬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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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수록 줄어드는 아기 울음소리. 정부는 출산을 장려하지만 연애·결혼·출산을 포기한 ‘3포세대’라는 말까지 회자되고 있다. <머니위크>는 2016 대한민국 출산 보고서를 통해 출산 현주소를 짚어보고 아기 울음소리를 늘리기 위한 대안을 살펴봤다.
#1 “이제 ‘얼집’ 끝났어. 2시에 ‘문센’에서 만나~” 모르는 사람에게는 마치 외계어처럼 들릴 법하지만 요즘 엄마들의 평범한 대화다. ‘얼집’은 어린이집, ‘문센’은 문화센터의 줄임말이다. 전업주부들의 유일한 탈출구여서일까. 남들이 쉽게 알아차리지 못하게 암호화하는 버릇이 생긴 듯하다. 아이의 첫돌이 갓 지난 엄마 다섯명이 모였다. 나이도 제각각이고 태어난 곳도 다르다. 처음엔 어색한 ‘남’이었지만 지금은 둘도 없는 ‘자매’다. 모두 같은 산후조리원 출신(?)이다. 좋은 정보는 ‘단톡방’에서 공유한다. 당연히 시시콜콜한 얘기도 오간다. 남편이 회사에 간 동안 집에 남은 유일한 대화상대는 아이뿐이니 육아 스트레스를 풀기엔 조리원 동기가 최고다.
#2 김모씨(36)는 육아휴직 후 업무에 복귀한 뒤 스트레스가 이만저만이 아니다. 8개월여의 짧은 시간이었지만 아이를 키우는 게 생각처럼 쉽지 않았고 다시 일을 시작하면서 아이 얼굴이 자꾸 떠올라 집중력이 흐트러졌다. 최근 스마트폰으로 집을 살필 수 있는 IP카메라(CCTV)를 설치해 마음이 조금 놓이지만 여전히 불안감을 떨칠 수 없다. 그는 결혼할 때 집을 장만하며 생긴 대출금을 갚기 위해 다시 일을 시작했다. 남편 혼자 버는 걸로 생활하기 빠듯해 예정보다 빨리 복귀했다. 시부모와 상사의 눈치를 보며 일과 가정을 모두 챙겨야 해 여러모로 고민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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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이미지투데이 |
결혼과 출산, 육아에 이르는 과정이 개인만의 문제가 아닌 사회적 문제로 확대됐다. 예전엔 직장에 취직한 다음 적당한 때가 되면 결혼하고 아이를 낳아 기르는 게 당연했다. 그러나 요즘엔 ‘적당한 때’가 늦춰지고 결혼 후 살 집을 마련하는 데 진이 빠진다. 아이를 낳고 기르는 문제는 자연스레 뒷전이 될 수밖에 없다.
저출산으로 인한 미래 국가경쟁력 하락을 우려한 정부의 발걸음도 빨라졌다. 아이를 낳은 가정에 단순히 돈 몇푼 쥐어주는 것보다 본질적인 문제를 찾아나섰다. 나아가 출산과 관련한 책임을 ‘여성’의 몫이 아닌 ‘가족’에 맞추고 판을 새로 짜고 있다. ‘워킹맘’ 외에 ‘워킹대디’의 어려움에도 주목하며 일과 가족이 양립할 수 있는 사회를 그리는 중이다.
◆늦어지는 초혼 시기, 출산율 낮춰
예전엔 30세를 넘으면 노총각·노처녀 소리를 들었지만 이제는 오히려 ‘결혼할 때가 됐다’는 인식이 강하다. 취업 문턱이 높아진 점은 늦은 결혼으로 이어지고 그만큼 여성들의 가임시기가 줄어들어 출산 가능성이 낮을 수밖에 없다. 통계자료도 이런 변화를 반영한다. 통계청의 2014년 ‘인구동향조사’에 따르면 1990년 초혼연령은 26세였지만 2014년에는 31세로 높아졌다.
젊은 층이 결혼과 출산을 싫어하는 건 아니다. 서울시가 지난해 펴낸 ‘서울 여성과 남성의 일, 쉼, 삶 이야기’ 보고서에 따르면 서울시민의 희망 자녀 수는 2.72명이다. 일본 2.65명, 미국 2.55명, OECD 평균인 2.25명보다 높다. 또 결혼하는 것이 좋다는 대답도 과반수를 넘겼다. 그럼에도 상황이 개선되지 않는 건 경제적 부담과 함께 일과 가족 양립의 어려움 때문이라고 답했다.
사람들이 결혼과 육아에서 가장 큰 걸림돌로 꼽은 건 ‘집’이다. 주택구입비를 대출로 충당하는 경우가 많아서 경제적 부담이 오랫동안 이어질 수밖에 없다는 게 이유다. 따라서 맞벌이를 생각하지만 아이를 키우며 직장생활을 할 엄두가 나지 않는다는 얘기도 쉽게 들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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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뉴시스 DB |
◆문제 해결 위해 지자체도 나섰다
정부와 지자체도 고민이 많다. 출산율을 높이기 위해 출산장려금도 주고 여러 혜택과 각종 정책을 내놨지만 상황이 크게 나아지지 않아서다. 이에 정부와 지자체는 보다 근본적인 원인을 찾고 대책을 마련하는 데 바쁜 모습을 보였다.
경기도가 지난달 31일 발표한 ‘경기도 인구변화- 출생’ 보고서에 따르면 출산장려금, 양육수당 등의 출산지원정책은 출산율에 별다른 영향을 주지 않는 반면, 남성과 여성의 고용률 차이와 여성고용률은 출산율에 큰 영향을 미쳤다. 이 조사는 2004년부터 2014년까지의 경기도 인구·지역별 출산 변화와 사회요인, 출산율과의 관련성을 분석한 결과다.
김수연 경기도 인구정책TF 팀장은 이번 분석결과를 토대로 출산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요소로 총고용률과 주택값, 결혼율, 지역 내 총생산을 꼽았다. 그는 “이번 빅데이터를 기반으로 하반기 정책수립을 위해 연구용역을 맡긴 상황”이라며 “토론회를 열어 사람들의 목소리도 반영할 예정”이라고 전했다.
아울러 행정자치부도 지난달 31일 ‘정부3.0 행복출산 원스톱서비스’를 전국적으로 실시한다고 밝혔다. 출생신고와 함께 양육수당, 출산지원금, 다자녀 공공요금 감면 등 각종 출산지원서비스를 한꺼번에 신청할 수 있어 긍정적인 평가를 받았다.
서울시의 직장 내 일과 가족 양립제도 인지조사에서 서울 남성 대다수가 ‘남성육아휴직제도’를 알았지만 실제 사용률은 3%에 불과했고 여성들의 가사 및 육아시간이 2시간17분 더 긴 것으로 나타났다. 남성과 여성 모두 육아에 책임이 있다고 생각하지만 현실과는 거리가 있었다. 이에 정부는 출산과 육아의 책임주체를 ‘여성’에서 ‘가족’으로 바꾸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변화하는 엄마들… 정보 공유
요즘 엄마들의 대표적 커뮤니티 중에는 ‘산후조리원 동기’ 모임이 있다. 아이의 성장과정이 비슷해서 서로 공유할 수 있는 정보가 많아 요즘 엄마들 사이에선 산후조리원이 필수코스로 꼽힌다. 또 인터넷이나 지역 커뮤니티, SNS에서도 다양한 임신·출산·육아 정보를 쉽게 얻을 수 있다. 좋은 내용은 주변에 공유하기도 한다.
필요한 물건을 서로 주고받기 쉽고 어차피 오래 쓰지 못하기에 굳이 새 것이 아니어도 된다는 생각으로 중고물품거래를 하기도 한다. 일정금액을 내고 아이의 장난감을 주기적으로 빌리는 경우도 늘었다.
여러 부정적인 숫자만 보면 한숨이 절로 나오지만 긍정적인 신호도 많다. 어렵게 결혼하고 어렵게 얻은 아이를 쉽게 키울 리 없다. 부족한 육아 노하우는 여러 커뮤니티를 통해 채우면 된다. 아이를 키우기 힘든 만큼 비슷한 환경의 사람들끼리 쉽게 친해지고 정보공유도 활발하다.
정부도 이런 흐름에 발맞춰 그동안 흩어진 정보들을 한데 모으는 작업을 진행했다. 이미 한 세대가 지나버린 어른들도 제대로 알지 못했던 내용과 새로 추가된 혜택들을 한눈에 파악할 수 있다. 출산과 육아문화도 인터넷과 함께 ‘스마트’해지는 셈이다.
☞ 본 기사는 <머니위크>(www.moneyweek.co.kr) 제431호에 실린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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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찬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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