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정위, ‘재벌 봐주기’ 역풍 피할 묘수 찾기 골머리

7년째 5조원의 틀에 묶인 대기업집단 지정기준이 조만간 변경될 예정이다. 범부처 태스크포스(TF)팀이 대기업집단 지정기준 개선 방안을 검토 중인 가운데 6월 중 결론이 나올 것으로 알려졌다. 거론되는 개선안은 크게 2가지다. 자산기준을 7조~10조원으로 올리거나 상위 30대 그룹으로 한정하는 안이 유력하다. 각각의 경우의 수에 따른 대기업집단 변화를 전망해봤다.


◆‘5조원 룰’ 7년 만에 손본다
 
지난 4월1일 공정거래위원회가 발표한 2016년 대기업집단은 삼성, 현대자동차 등을 포함해 65개다. 6개 기업(SH공사, 하림, 한국투자금융, 셀트리온, 금호석유화학, 카카오)이 신규로 지정됐고 2개 기업(홈플러스, 대성)이 제외되며 전년 대비 4개가 증가했다.


5차 규제개혁장관회의. /사진=뉴시스DB
5차 규제개혁장관회의. /사진=뉴시스DB

전국경제인연합회가 발표한 ‘대기업집단 규제 현황’ 자료에 따르면 대기업집단으로 지정될 경우 공정거래법, 자본시장법 등 27개 법률에 걸쳐 60건의 규제를 받는다. 상호·순환출자 금지, 채무보증 금지, 신탁재산 의결권 제한 등이 대표적 규제다.

‘5조원 룰’을 아슬아슬하게 넘은 카카오(자산 5조1000억원), 셀트리온(5조9000억원) 등 신생 대기업이 자산이 200조가 넘는 삼성(348조원), 현대차(209조원)와 같은 규제를 적용받게 된 것이다. 당장 이들을 중심으로 대기업집단 지정기준 상향이나 업종의 특성을 고려한 선별적 규제가 이뤄져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여기에 박근혜 대통령도 지난 5월18일 제5차 규제개혁장관회의에서 “(대기업집단 제도는) 시대에 안 맞고 다른 나라에는 없는 제도인데 우리만 꽁꽁 묶고서 산업이 발전되길 바라는 것은 말이 안 된다”며 “이 시대에 맞게 고쳐야 한다”고 개선안 마련에 힘을 실었다.
 
정부와 재계 등에 따르면 대기업집단 제도 개선안은 자산기준을 7조~10조원으로 상향하거나 상위 30대 그룹으로 한정하는 안이 유력하다.


이 중 재계와 기획재정부가 선호하는 방안은 자산기준을 10조원으로 높이는 것이다. 국내총생산(GDP)이 2008년 1104조원에서 2015년 1558조원으로 454조원이나 늘어난 만큼 현재 기준에서 최소 2배는 늘려야 한다는 게 이들의 주장이다.

전경련 관계자는 “경제 규모가 커짐에 따라 자산총액 5조원 이상이란 기준을 10조원 이상으로 확대해야 한다”며 “장기적으로는 세계적으로 유례가 없는 자산규모 기준의 대기업집단 규제를 폐지해야 한다”고 말했다.


기재부는 대기업집단 기준을 5조원에서 10조원으로 상향조정하는 안을 6월 경제장관회의에서 논의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특히 기재부 안팎에선 대기업집단 지정기준 변경은 공정거래법 시행령 개정만으로 가능하기 때문에 6월 중 기준 변경 후 즉시 시행할 가능성도 거론된다. 


서정진 셀트리온그룹 회장. /사진=뉴시스DB
서정진 셀트리온그룹 회장. /사진=뉴시스DB

이 경우 새롭게 대기업집단에 포함된 ▲하림 ▲셀트리온 ▲금호석유화학 ▲카카오 등을 포함해 28개 그룹사가 대기업집단에서 해제된다. 다만 한번에 너무 많은 대기업이 빠져나갈 경우 ‘재벌 봐주기’ 논란이 불거질 수 있다. 또 세금문제도 간과할 수 없는 부분이다. 대기업집단에서 빠지는 기업들은 조세특례 적용대상인 중소·중견기업으로 분류되기 때문에 가뜩이나 부족한 세수확보에 차질이 불가피하다. 


김범수 카카오 이사회 의장. /사진=뉴시스DB
김범수 카카오 이사회 의장. /사진=뉴시스DB

이에 따라 제도의 실효성을 살리면서 재계의 요구를 일정부분 반영해 자산기준을 7조원까지만 늘리는 방안도 거론된다. 이 경우 ▲태영 ▲아모레퍼시픽 ▲현대산업개발 ▲셀트리온 ▲카카오 등 12개 기업이 제외된다. 하지만 이 정도 수준에서 개선안이 확정될 경우 몇년 뒤 똑같은 문제가 또 다시 발생할 가능성이 커 임시방편에 불과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기준 상향 놓고 복잡한 셈법

공정위에 따르면 자산기준을 상향 조정하되 일감몰아주기 등 일부 규제는 자산규모별로 차등 적용하는 방안도 검토 중이다. 이는 규제별 대기업집단 지정 자산기준을 다르게 해 대기업집단 내 격차를 감안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자산기준 상향을 놓고도 여러가지 안들이 논의되는 셈이다.

자산규모보다 상위 30대 그룹을 기준으로 하자는 의견도 있다. 이 제도는 경제성장에 맞춰 자산기준을 매번 조정할 필요도 없고 소수재벌에 대한 경제력 집중을 완화한다는 대기업집단 제도 본연의 취지에도 부합한다. 하지만 이 경우 자산기준을 10조원으로 올리는 것보다 더 많은 35개 기업이 한번에 대기업집단에서 빠져나가기 때문에 반대 여론이 거셀 가능성이 짙다.


재계 한 관계자는 “자산규모를 기준으로 한 현행 규제방식은 주기적으로 기준을 바꿔줘야 하는데 그때마다 이런저런 얘기가 나올 수밖에 없다”며 “단기적으로는 지정기준을 높이는 것이 필요하지만 장기적으로는 시장규율 중심의 사후규제로 전환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공정위 경쟁정책국 기업집단과 관계자는 “현재 대기업집단 지정기준 개선 방안과 관련해 다양한 안을 놓고 논의 중이지만 구체적 내용이나 일정이 결정된 것은 없다”며 “최대한 빠른 시일 내에 결론을 내겠다”고 말했다.

한편 재벌에 대한 경제력 집중에 따른 폐해를 막기 위해 1987년 처음 시작된 대기업집단 지정제도는 경제성장에 따른 시대적 요구 변화에 발맞춰 ▲자산 4000억원 이상(1987~1992년) ▲상위 30대 그룹(1993~2001년) ▲자산 2조원 이상(2002~2008년) ▲자산 5조원 이상(2009년~현재)으로 기준이 바뀌었다.

☞ 본 기사는 <머니위크>(www.moneyweek.co.kr) 제438호에 실린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