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면초가. 이동걸 KDB산업은행 회장의 최근 행보를 보면 떠오르는 사자성어다. 불과 취임 4개월 만에 해운업계 구조조정 실패와 강압적 성과연봉제 도입 등으로 논란의 중심에 섰다. 특히 성과연봉제를 두고 노조로부터 고소를 당하는가 하면 조선과 해운 등 산업계 구조조정이 본격화되면서 구조조정을 지휘할 자격이 없다는 비판이 쏟아지는 형국이다. 내부 안팎으로 불만이 터져 나오면서 그의 리더십이 갈림길에 섰다.


이동걸 KDB산업은행 회장. /사진=머니투데이 이명근 기자
이동걸 KDB산업은행 회장. /사진=머니투데이 이명근 기자

◆STX조선 결국 ‘부도’… 채권단 책임론 ‘솔솔’

지난달 25일 주채권은행인 산은과 주요 채권단은 STX조선해양을 부도처리하기로 했다. 산은은 추가자금을 지원하면서 자율협약을 지속할 명분과 실익이 없고 회사도 회생 절차신청이 불가피할 것으로 판단했다고 설명했다. STX조선의 익스포저(위험노출액)는 6조원 수준. 산업은행 3조원, NH농협은행 1조1000억원, 수출입은행 1조원이다. 이외에도 다른 금융기관에 9000억원의 채무를 가지고 있다.


금융권에선 STX조선의 최종 부도처리로 국내은행의 추가손실이 수조원에 이를 것으로 본다. 당연히 주채권은행인 산은의 부담이 가장 크다. 산은이 쌓아야 할 익스포저는 2조5000억원에 달할 것으로 전망된다. 산은은 앞서 STX조선 부실로 1조5000억원의 충당금을 쌓은 것으로 알려졌다.

상황이 최악으로 치달으면서 채권단의 책임론이 불거졌다. 그도 그럴 것이 산은은 그동안 STX조선의 정상화를 자신했다. 나아가 채권은행의 추가지원 동의를 이끄는 데 성공했다.


산은은 STX조선이 국가산업에서 차지하는 비중과 지역경제, 고용 효과 등을 고려할 때 자율협약을 통해 추가 지원해야 한다는 입장이었다. 하지만 불과 3년 만에 태도를 바꿨다. 조선경기 침체 장기화를 주된 이유로 꼽았다. 결국 산은을 믿은 채권은행과 동반 위기에 놓인 셈이다.

논란의 핵심은 구조조정을 진두지휘하는 데 산은이 과연 제대로 된 역할을 했는지 여부다. STX조선이 부도처리 되기까지 결국 국민 혈세만 쏟아부은 것 아니냐는 지적이다. 해운업계 전망을 제대로 분석하지 못한 책임도 벗기 힘들 것으로 보인다.


당연히 이동걸 회장의 책임론도 수면 위로 떠올랐다. 이번 STX조선 부도는 이 회장이 주도한 것으로 알려졌다. 산은 관계자는 “회장의 결단 없이는 내릴 수 없는 결과”라고 말했다. 이를 두고 일각에선 산은 회장으로 선임된 지 4개월 만에 결단을 내린 것은 다소 무리가 있는 것 아니냐는 지적이다.

하지만 이에 대해 누구도 책임을 지지 않을 것이란 게 금융권의 시각이다. STX조선은 정부 주도로 이뤄졌고 자신감을 내비친 홍기택 전 회장은 이미 물러난 상태기 때문. 금융권 관계자는 “구조조정 실패로 국책은행이 떠안은 빚은 사실상 국민의 세금”이라며 “혈세를 맘대로 썼는데 책임지는 이는 없는 것 같다”고 씁쓸해했다.


◆매각 실패했는데… 현대상선·한진해운도 불안

현대상선도 불안하긴 매한가지다. 현대상선은 컨테이너 용선료 협상을 두고 치열한 기 싸움을 벌이는 중이다. 현대상선은 영국계 조디악과 그리스계 다나오스 등 해외선주들과 용선료 인하방안을 놓고 협상 중이다. 현대상선은 용선료 인하를, 선주는 인하 불가 입장인 것.

만약 현대상선이 용선료 협상에 실패하면 결국 법정관리 순서를 밟아야 한다. 상황은 순탄치 않다. 이미 한계선을 넘었다. 현대상선은 애초 지난달 20일까지 용선료 협상을 마무리 짓기로 했다. 한진해운 역시 현재 1100억원의 용선료를 연체한 상태고 이달이면 2000억원대로 불어난다. 만약 두 기업이 협상실패 등으로 STX조선처럼 부도 처리된다면 산은의 부실은 천문학적으로 늘어난다.

이 가운데 자회사 매각도 속도가 나지 않는다. 산은은 지난달 24일 산은캐피탈 매각을 위한 본입찰을 마감한 결과 3개 입찰적격자 중 1개사만 최종입찰에 참여해 유효경쟁이 성립되지 않았다고 밝혔다. 국가계약법 시행령 제11조에 따라 2인 이상이 참여해야 유효한 입찰이 성립된다. 산은은 지난해 8월부터 산은캐피탈 매각을 추진했는데 아직도 매각을 위한 뾰족한 해법을 제시하지 못했다.

자본확충도 마찬가지다. 정부는 산은을 비롯한 국책은행의 유동성 공급을 위해 자본확충 방안을 제시했지만 한국은행의 반대로 지지부진한 상태다. 유동성 부족과 자회사 매각까지 실패하면서 이동걸 회장의 리더십도 삐걱거리는 양상이다.

◆노조의 고발, 성과연봉제 논란 ‘시끌’

설상가상 성과연봉제 논란도 확산되는 추세다. 이 회장은 성과연봉제 도입을 직원에게 강요했다는 의혹으로 노조로부터 고발을 당하는 수모를 겪었다. 특히 사측이 직원들에게 성과연봉제 동의서에 서명하라고 요구하는 사진이 언론에 공개돼 파문이 일기도 했다.

지난달 13일 전국금융산업노동조합은 한장의 사진을 언론에 공개했다. 6명의 직원이 손을 앞으로 모은 자세로 사무실에 한줄로 서 있는 모습이 담긴 사진이다. 사진 속 한 여성은 울고 있는 듯 손으로 얼굴을 가렸고 표정은 매우 침통해 보였다.

금융노조는 “산업은행 사측이 직원들에게 성과연봉제 동의서에 강제로 서명하라고 요구하는 사진을 몰래 찍은 것”이라고 설명했다. 앞서 산은은 4급 이상 행원을 대상으로 성과연봉제 도입 동의서를 받았다. 국책은행 가운데 가장 먼저 성과연봉제를 도입한 것이다.

금융노조는 “산은은 노조의 동의서도 받지 않고 일방적으로 이사회를 열어 성과연봉제 도입을 의결했다”며 “이는 명백한 불법행위”라고 주장했다. 노조는 이동걸 회장을 비롯한 점포장급 이상 간부 180명 전원을 서울고용노동청에 고발했다.

이와 관련 이 회장은 “부서 회람을 통해 찬성하는 직원이 서명하도록 했을 뿐 불법은 없었다”고 해명했지만 논란은 사그라들지 않았다. 취임 전부터 낙하산 논란에 휩싸이고 지금은 산적한 과제로 난항을 겪고 있는 이동걸 회장. 그가 이끄는 ‘산은호’가 앞으로 거센 폭풍을 이겨내고 순항할지, 아니면 침몰할지 금융권의 시선이 그를 향하고 있다.

☞프로필
▲1948년생 ▲영남대 경제학 학사 ▲신한은행 홍콩현지법인 사장 ▲신한은행 부행장 ▲신한캐피탈 대표 ▲신한캐피탈 대표 ▲굿모닝신한증권 대표 ▲신한금융투자 부회장 ▲산업은행 회장

☞ 본 기사는 <머니위크>(www.moneyweek.co.kr) 제438호에 실린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