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오리건주 포틀랜드에 위치한 움프쿠아은행(Umpqua Bank)의 문을 열면 그윽한 커피향기가 퍼진다. 이 은행을 방문한 고객은 소파에 편히 앉아 커피를 마시고 공짜 아이스크림을 먹을 수 있다. 테이블에는 포틀랜드 지역 중소상인들이 만든 상품이 진열돼 매주 다른 상품을 쇼핑할 수도 있다.


움프쿠아은행은 고객이 점포에서 금융거래는 물론 여유로운 시간과 쇼핑을 즐길 수 있는 차별화된 은행으로 손꼽힌다. 우리나라 은행들도 이 같은 해외은행의 점포를 벤치마킹해 이색점포를 설치하고 고객을 향해 손짓한다.

국내은행이 연 이색점포는 점포와 커피숍을 결합한 ‘카페 인 브랜치’, 이동식 무인점포, 은퇴고객·고액자산가를 대상으로 한 VIP라운지, 외국인을 위한 인터내셔널 PB(프라이빗뱅킹)센터 등이 대표적이다. 고객이 단순한 금융거래를 넘어 지점환경에 흥미를 느끼고 여유로운 시간을 보내는 곳으로 점포가 변하고 있다.


물론 이색점포는 금융거래의 편의성과 보안성도 확대했다. VIP고객의 전유물이던 자산관리서비스는 이제 로봇PB, 로보어드바이저를 통해 대다수 고객에게 제공한다. 정맥·홍채 등 생체인식을 접목한 ATM(현금자동입출금기)은 영화처럼 적외선이 내 몸을 통과하는 흥미로운 경험과 공인인증서보다 강화된 보안성을 동시에 누릴 수 있다.


움프쿠아 은행. /사진=페이스북
움프쿠아 은행. /사진=페이스북

◆슬로뱅킹, 핀테크 접목기술 선봬

이색점포는 고객이 점포에 오랜 시간 머물도록 유도하는 ‘슬로뱅킹’(Slow banking) 기법이다. 점포를 호텔이나 카페, 갤러리, 공연장으로 꾸며 문화예술, 엔터테인먼트 등을 제공하는 복합장소로 탈바꿈하고 고객의 시선을 사로잡는다.

사실 슬로뱅킹은 백화점 등 유통업계가 하나의 상품을 팔기 위해 다채로운 이벤트를 동시에 펼치는 점포전략과 유사하다. 고객들이 점포에 머무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은행서비스를 이용하는 시간도 늘어날 것이란 기대가 깔려 있다.


금융과 IT의 결합, 핀테크는 슬로뱅킹 구축에 중요한 역할을 한다. 은행원이 한명도 없는 무인점포는 화상통화가 가능한 ATM을 배치해 체크카드 발급, 통장개설, 인터넷뱅킹 가입, 적금 및 펀드상품에 가입할 수 있다. 무인점포는 주로 대학가에 위치해 간단한 금융거래를 원하는 학생들이 짧은 시간 점포를 방문하는데 이용빈도 수가 높은 편이다.

이색점포는 영업시간도 바꿨다. 탄력점포는 일반적인 영업시간(평일 오전 9시~오후 4시)과 달리 평일 밤, 주말에 운영하며 업무가 늦게 끝나는 직장인이나 점포가 멀리 떨어져 은행에 방문하기 어려운 외국인의 니즈를 충족시킨다. 지난 1월 기준 관공서·외국인근로자·상가 및 오피스 인근·환전센터의 탄력점포는 총 538개로 입출금을 비롯해 예·적금 신규 및 전자금융 업무 등 평일과 동일한 금융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다.


기업은행 홍체인식 ATM. /사진제공=기업은행
기업은행 홍체인식 ATM. /사진제공=기업은행
신한은행 S20스마트존. /사진제공=신한은행
신한은행 S20스마트존. /사진제공=신한은행

◆점포 임대면적 제한 완화, 임대수익 ‘쏠쏠’

점포는 더 이상 고객이 발길을 끊은 천덕꾸러기 장소가 아니다. 은행들은 통폐합으로 정리한 공간을 임대사업으로 돌려 수익을 창출한다.


최근 은행영업점 건물의 임대면적 규제를 완화하는 은행법 감독규정이 개정돼 은행 임대사업의 물꼬가 트였다. 기존에는 영업점의 9배 이상을 은행의 영업·연수·복리후생을 목적으로 사용해야 했지만 규제가 풀리면서 지금은 점포의 모든 면적을 탄력적으로 쓸 수 있다.

우리은행은 은평구 불광동 지점과 금천구 가산동 지점 2곳을 허물고 오피스로 새로 짓는 임대사업을 계획 중이다. 새로 지은 오피스 건물은 일부만 점포로 사용하고 나머지는 임대로 활용할 방침이다. KEB하나은행은 지점 60곳 이상을 활용해 최대 1만가구의 뉴스테이를 공급한다. 다음해에는 신설동점을 포함해 8개 지점이 뉴스테이 3208가구로 탈바꿈할 예정이다.

이 같은 투자부동산 임대사업은 은행의 안정적인 부가수익으로 자리잡을 전망이다. 금융당국의 규제도 심하지 않고 요즘처럼 부동산 시세가 오르면 2배 이상의 수익을 기대할 수 있다. 실제 KEB하나은행은 지난 1분기 23억5000만원의 투자부동산 임대수익을 올렸다. 전분기 8억4800만원에 비해 177.12% 급증한 것으로 KEB하나은행이 통합 이후 잠시 주춤했던 영업실적을 보완했다. KB국민은행, 신한은행도 각각 58억6200만원, 60억7900만원의 부동산 임대수익을 거뒀다. 은행은 점포를 폐쇄한 후에도 부동산을 3년간 임대할 수 있다. 은행이 임대업을 하는 이유는 현금 유동성 확보가 가능하기 때문이다.

금융위원회 은행과 관계자는 “은행은 영업점을 늘리거나 고치면서 증가한 면적을 임대할 수 있다”며 “기존 투자부동산은 물론 업무용부동산까지 수익창출에 적극 활용할 수 있어 부가수익이 더 늘어날 것”이라고 말했다.

◆은행 점포의 미래는 인터넷은행?

금융전문가들은 미래은행 점포의 모습으로 무형의 점포, 즉 인터넷은행를 꼽는다. 보이지 않는 인터넷은행 점포에서 금융소비자들은 소리없는 금융거래를 활발히 벌일 것이란 전망이다. 인터넷은행은 번호표를 뽑고 기다릴 창구도, 고객응대를 하는 은행원도 없지만 기존 은행이 제공하던 금융서비스를 더 빨리 더 간편하게 제공한다. 보안시스템, 데이터 분석시스템, 신용평가 및 리스크관리시스템을 확대할 경우 비대면채널에서 안정적인 금융거래가 가능해진다.

서병호 금융연구원 연구위원은 “인터넷은행이 이상거래탐지시스템(FDS)을 집중 개발하면 고객이 보안카드나 OTP(비밀번호생성기)카드를 사용하지 않아도 된다”며 “은행이 금융거래를 실시간으로 파악해 보이스 피싱 등 각종 전자금융사기를 예방하므로 고객이 안전한 금융거래를 위해 인터넷은행을 자주 이용하게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 본 기사는 <머니위크>(www.moneyweek.co.kr) 제439호에 실린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