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위 부러움도 옛일, 고용불안에 잠 못 드는 밤

해마다 수십만명의 취업준비생이 몰리는 ‘꿈의 직장’ 대기업에 희망퇴직 칼바람이 불고 있다. 바늘구멍을 어렵게 통과한 기쁨도 잠시, 언제 잘릴지 모르는 고용불안에 시달리는 직장인들이 적지 않다. 이들은 국내에서 손꼽히는 대기업에 입사해 주위의 부러움을 샀지만 실상은 위태로운 나날을 보내는 중이다. 


희망퇴직 직장인 이미지. /사진제공=이미지투데이
희망퇴직 직장인 이미지. /사진제공=이미지투데이

◆안전지대 없는 구조조정

국내 최고 기업인 삼성의 주요 계열사 중 4곳이 올해 1분기에만 정규직 2400여명을 감축한 것으로 확인됐다. ▲삼성물산 ▲삼성엔지니어링 ▲삼성SDI ▲삼성전기 4개사의 사업보고서를 분석한 결과 정규직 총직원수는 지난해 말 3만7771명에서 지난 3월 말 3만5350명으로 2421명이 줄었다.

이 기간 삼성물산은 실적이 악화된 건설부문을 중심으로 희망퇴직을 받아 490명이 회사를 떠났고, 해외부문에서 대규모 손실을 기록한 삼성엔지니어링은 인력구조조정에 나서 409명을 줄였다. 사업재편에 나선 삼성SDI, 삼성전기는 희망퇴직을 통해 각각 1299명, 223명이 회사를 떠났다.

삼성물산의 인력구조조정은 현재도 진행형이다. 삼성물산은 지난 6월17일 부서장들에게 건설부문 대리급 이상 직원을 대상으로 희망퇴직을 실시한다는 내용의 메일을 보냈다. 앞서 삼성물산 건설부문은 두차례의 희망퇴직을 통해 지난해 약 800여명, 올해 약 500명을 감축했다. 이번 희망퇴직까지 포함하면 1년 새 약 2000여명의 인력이 줄어들 전망이다.


최근 구조조정에 착수한 삼성중공업도 대규모 인력 감축을 예고했다. 삼성중공업은 지난 6월15일 사내방송을 통해 올해 약 1500명 규모의 희망퇴직을 실시한다고 밝혔다. 또한 현재 1만3272명인 정규직수를 2018년까지 최대 40% 줄이는 강도 높은 인력구조조정을 실시할 계획이다. 3년 내 5300여명이 회사를 떠날 수도 있다는 얘기다. 

이에 대해 삼성중공업 노조협의회(이하 노협)는 같은달 21일 기자회견을 통해 “회사가 발표한 일방적인 자구안을 철폐하라”며 “수주 예측을 빙자해 전체 인력의 40%까지 감축하려는 일방적 계획은 설득력이 없다”고 주장했다. 노협은 사측의 일방적 결정에 파업도 불사하겠다는 방침이다.


삼성중공업 한 직원은 “3년 전 입사해 삼성맨이 됐다는 부푼 마음으로 열심히 일했지만 2~3명 중 한명을 내보낸다고 하니 나도 구조조정 대상이 아닌가 걱정된다”며 “다른 직장을 알아봐야 하는지, 구조조정 대상에 포함되지 않기를 바라며 더 열심히 일을 해야 하는 건지 모르겠다”고 고충을 토로했다.

물류사업 분할을 추진 중인 삼성SDS 내부에서도 사업재편에 따른 인력 감축 위기감이 커진 것으로 알려졌다. 정유성 사장이 직접 지방 사업장까지 돌아다니며 직원들에게 “흔들리지 말고 각자의 자리에서 맡은 바 업무를 다해 달라”고 주문했지만 사업재편 관련 ‘설’들이 무성해 직원들의 위기감이 큰 상황이다.


한 삼성 계열사 관계자는 “30대 초반 직원들에게까지 희망퇴직 압박이 가해진다”며 “바늘구멍을 뚫고 국내 굴지의 대기업에 입사했다는 자부심은 사라진 지 오래고 지금은 상시고용불안에 시달리고 있다”고 말했다.

지난 4월 삼성 직무적성검사(GSAT)를 마친 취업준비생들이 고사장을 나서고 있다. /사진=뉴시스 DB
지난 4월 삼성 직무적성검사(GSAT)를 마친 취업준비생들이 고사장을 나서고 있다. /사진=뉴시스 DB

◆불안감에 잠 못 드는 직장인

재계서열 9위 대기업인 현대중공업도 지난 5월부터 과장급 이상 직원들을 대상으로 희망퇴직을 받은 결과 약 2000명이 신청한 것으로 확인됐다. 사무직이 1500명, 생산직이 500명가량으로 생산직까지 희망퇴직을 받은 것은 1972년 창사 이래 처음이다. 앞서 현대중공업은 지난해 1월에도 사무직을 대상으로 희망퇴직 신청을 받아 1500명을 내보냈다.

희망퇴직을 신청한 이들은 극심한 조선업 불황 속 고정급여 폐지 등으로 사실상 임금이 삭감되면서 퇴직금이 줄어 든 점과 몇년 후에는 현재 회사가 제시한 희망퇴직 조건(최대 40개월의 기본급과 자녀학자금 지급 등)보다 못한 조건에 희망퇴직을 강요받을 수 있다는 불안감 속에 회사를 떠나는 선택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현대중공업 한 계열사 관계자는 “당초 회사 측에서는 5월까지만 희망퇴직을 받는다고 했지만 연장해 6월 말까지 희망퇴직을 실시하는 것으로 안다”며 “현재 위기를 만든 것은 경영진의 판단미스임에도 정작 책임은 힘없는 노동자에게 묻는 형국”이라고 꼬집었다.

현대중공업 노조 관계자는 “회사가 노조와 함께 지금의 위기를 극복하기 위한 노력을 해야 할 상황에서 노동자들의 희생만 강요한다”며 “경영진의 무능에 대한 책임을 노동자에게 전가하는 강제성을 띤 희망퇴직에 반대한다”고 강조했다. 

대우조선해양도 대규모 인력 줄이기에 나섰다. 지난 6월8일 KDB산업은행이 발표한 대우조선 구조조정 자구안에 따르면 2020년까지 직영 인력을 20% 이상 감축할 계획이다. 지난해 정규직 700여명을 내보낸 대우조선의 직영 인력은 지난 3월 말 기준 1만2819명이다. 목표 달성을 위해선 앞으로 2600여명을 내보내야 한다.

정성립 대우조선 사장은 구조조정 자구안 발표 직후 직원들에게 보낸 담화문을 통해 “수주 가뭄이 계속된다면 자구계획은 더욱 혹독해져야 할 것”이라며 “회사의 매출과 생산설비, 인력을 현재의 절반까지 줄이는 것도 고려해야 한다”고 혹독한 감원 칼바람을 예고했다. 

이외에도 구조조정에 나서는 대기업이 추가로 나올 가능성이 크다.  금융감독원은 현재 대기업과 중소기업을 대상으로 정기신용위험 평가를 진행 중이다. 대기업에 대한 구조조정 대상은 7월 말, 중소기업은 11월에 확정될 예정이다. 재계 안팎에선 금감원 발표가 나오면 구조조정에 나서는 기업이 더욱 늘어날 것으로 보는 시각이 많다.

이에 따라 고용불안에 잠 못 드는 직장인의 수는 더욱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한 대기업 관계자는 “기업의 인력구조조정은 최후의 방법이어야 한다”며 “경영진의 일방적 구조조정은 강한 반발을 초래해 더 큰 혼란을 불러올 수 있다”고 말했다.

☞ 본 기사는 <머니위크>(www.moneyweek.co.kr) 제442호에 실린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