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주먹구구식으로 일을 지시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라 결재라인을 밟을 때마다 보고서 방향이 뒤집히는 일이 허다하다. 마치 자동차를 조립하고, 결재단계마다 조립된 차를 다시 분해하고 재조립하는 일을 반복하는 느낌이다.


모 대기업에 재직 중인 A과장의 하소연이다. 실제로 대한상공회의소와 맥킨지가 지난해 6월부터 9개월간 국내기업 100개사를 심층 조사해 작성한 ‘한국기업의 조직건강도와 기업문화 종합보고서’에 따르면 상명하복, 야근 등 후진적 문화에서 벗어나지 못한 국내기업의 조직건강에 적신호가 켜졌다.

◆조직건강 ‘적신호’

매킨지의 조직건강도(OHI) 분석기법을 활용해 리더십, 업무시스템, 혁신분위기, 책임소재 등을 평가 및 점수화해 국내 100개사와 글로벌 1800개사를 비교한 결과 글로벌기업보다 약체인 기업이 77개로 나타났다.


기업문화 부문 조사에서는 ▲습관적 야근 ▲비효율적 회의 ▲과도한 보고 ▲소통 없는 일방적 업무지시 등 비과학적 업무프로세스나 상명하복의 불통문화에 대한 지적이 많았다. 게다가 야근을 많이 할수록 생산성은 오히려 떨어지는 ‘야근의 역설’도 확인됐다.

대한상의에서 8개 기업 45명의 일과를 관찰한 결과 상습적으로 야근하는 B대리는 하루 평균 11시간30분을 근무했고, 나머지 직원들은 하루에 9시간50분을 일했다. 그러나 B대리의 생산성은 45%로 다른 직원들(57%)보다 12%나 더 낮았다.


이달 초에도 비슷한 지적이 또 다시 제기됐다. 대한상공회의소가 서울 대한상의회관에서 개최한 ‘기업문화와 기업경쟁력 컨퍼런스’에서 현재 기업문화에 대한 지적과 함께 개선을 촉구하는 목소리가 쏟아진 것.

대한상의에서 컨퍼런스 참가자 500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실시한 결과 응답자의 91%가 “현재 기업문화로는 경쟁력 향상을 기대하기 어렵다”고 답했다.


그렇다면 어떤 방식으로 기업문화를 바꿔야 하는 걸까. 각 기업의 주력 분야, 처한 상황 등이 모두 다른 만큼 일률적 방식보다는 기업별 유연한 대처가 필요하다. 이를 위해선 무엇보다 세대 간 소통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최원식 맥킨지코리아 대표는 “대다수 국내 기업들에서 임원급 세대와 신세대들이 서로를 ‘꼰대’와 ‘무개념’으로 바라보며 불통하고 있다”며 “기업문화 개선을 위해선 세대 간 적극적인 소통과 조율이 절실하다”고 강조했다.

이정동 서울대 공과대학 교수는 “한국기업은 개념설계 역량이 부족하다”며 “창의와 혁신은 실패에서 시작되는 만큼 시행착오를 독려하고 경험을 축적하는 기업문화를 만드는 것이 시급하다”고 조언했다. 

◆기업문화 혁신으로 레벨업

이처럼 저성장이 고착화된 시대, 낡고 병든 기업문화부터 바꿔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는 가운데 발빠르게 움직이는 기업도 있다. SK텔레콤은 최근 통신회사에서 플랫폼기업으로 변신하기 위해 3~4인으로 스타트업 캠프를 구성해 자율권을 부여한 후 성과에 대한 과감한 보상으로 경쟁력을 개선했다.

특히 ▲할 수 있는 일이 아닌 해야 할 일을 반드시 해낸다 ▲앞서 고민하고 실행 후 보완한다 ▲있는 그대로 이야기를 한다는 회사 업무 방침은 일하는 문화의 근본적 변화를 이끌어냈다는 평가가 나온다.

유한킴벌리는 일하는 공간 자체를 혁신해 기업 경쟁력을 높였다. 임직원들이 정해준 자리에서 일하는 시간이 50%도 채 안되는 점에서 착안해 본인의 자리를 없애고 스마트오피스와 스마트워크센터를 구축한 것.

그 결과 직원의 직무 몰입도는 76%에서 87%로, 일과 삶의 만족도는 77%에서 86%로, 소통지수는 65%에서 84%로 크게 올랐다. 소통과 유연한 기업문화 정착을 위해 노력한 게 실제 좋은 성과로 이어진 셈이다.

국내 재계서열 1위 삼성도 대대적 조직문화 수술을 앞두고 있다. 이재용 부회장 체제 삼성전자가 지난 3월 공식 발표한 ‘스타트업 삼성’으로의 조직문화 개편을 위한 구체적 로드맵이 이달 말 발표될 예정이다.

삼성전자는 수평적 조직 문화 구축, 업무 생산성 제고, 자발적 몰입 강화 등을 골자로 하는 세부 혁신안을 다듬어 조만간 결과물을 내놓을 계획이다.

LG전자도 지난 3월 사내 방송을 통해 호칭 체계, 휴가 문화, 동료 평가 등 사내 시스템을 개편하겠다고 밝혔다. LG전자는 올해 말까지 인사와 기업문화 개선을 위한 세부안을 마련해 내년부터 시행할 계획이다.

재계 관계자는 “2011년부터 저성장 시대가 본격화하며 추격형, 톱-다운 방식의 기존 성공 방정식은 더 이상 통하지 않게 됐다”며 “새로운 성장 동력을 확보하기 위해선 낡고 병든 기존 문화를 혁신하는 작업부터 선행돼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