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영국은 ‘크리스마스를 찬성한 칠면조’(Turkeys voting for Christmas)라는 속담에 비유된다. 잡아먹힐 것을 뻔히 알고도 크리스마스가 오길 기다리는 칠면조처럼 영국이 브렉시트(Brexit)를 선언해 불행을 자초했다는 것.


유럽연합의 탈퇴, 브렉시트는 영국 금융시장을 흔들고 지구 반대편에 있는 우리나라 금융시장에도 악영향을 끼쳤다. 국내증시는 브렉시트 투표 당일 3% 넘게 폭락해 사이드카(일시적 현물 프로그램 매매체결 지연)가 발동했고 외국인 자금은 하루 동안 40조원 이상 빠져나갔다.

시간이 지나면서 우리나라 금융시장은 빠르게 회복하는 중이다. 증시는 반등했고 7월 중 2000선을 회복할 것이란 전망이 곳곳에서 나온다. 글로벌 금융위기를 몇차례 겪은 정부는 브렉시트 대비책으로 10조원 수준의 추가경정예산 카드를 꺼냈다. 추경은 저성장·고용 위축 우려를 줄이고 외국인 투자자의 기대를 높여 대외불확실성을 차단할 것으로 보인다.


/사진=이미지투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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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먼사태와 다른 이유 3가지

브렉시트의 후폭풍이 미풍에 불과한 이유는 비단 학습효과뿐이었을까. 금융전문가들은 브렉시트가 리먼브라더스 사태, 미국 신용등급 하락 등 금융위기보다 우리나라에 끼치는 금융충격이 미미하다고 진단한다. 특히 기업과 정부의 디폴트(채무불이행) 리스크 확대에 직접적인 영향을 끼치지 않는다고 평가한다.


①충격강도= 2008년 미국 4대 투자은행이던 리먼브라더스의 파산으로 코스피는 1000 밑으로 떨어졌다. 코스피 하락폭은 10.6%에 달했다. 2011년 미국의 신용등급 하락 시에도 코스피는 3.8% 떨어져 주식시장을 흔들었다. 이번 브렉시트 발표 이후 코스피 하락폭은 3.09%에 불과했다. CDS 프리미엄도 브렉시트 발표가 나온 24일 0.61%로 전날보다 0.06%포인트 오르는 데 그쳤다. 리먼사태 때에는 1.43%에서 3.44%로 한달 만에 2.01%포인트 치솟았다.

브렉시트 이후 투자자들은 평소보다 불안심리가 높아졌으나 빠르게 진정국면에 들어섰다. 금융당국도 브렉시트 불안에 충분히 대처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내비쳤다. 브렉시트의 파급경로와 시차, 대응여건 등을 고려하면 시장안정화를 확보할 수 있다는 주장이다.


임종룡 금융위원장은 금융권역별 대응체계 점검회의에서 “국내증시 하락폭, 외국인 자금 순매도 규모, CDS 프리미엄 상승폭 등은 과거 외환위기들에 비해 낮은 수준”이라며 “우리나라는 세계 7위의 외환보유고(4월 기준 4000억달러)를 유지하고 단기외채비중도 큰 폭으로 줄어 충분한 대응능력이 있다”고 설명했다.

②파급속도= 브렉시트는 2년에서 최대 7년간 유예기간이 있다. 영국이 EU를 떠나기 전 브렉시트 공포가 어느 정도 희석돼 자본시장이 충격을 완화할 수 있는 시간을 벌게 된 것. 우리나라 주식시장에서 외국인의 주식은 지난달24일 이후 3거래일 연속 순매도가 이어졌고 규모는 시간이 지날수록 커졌다. 외국인은 3거래일 동안 5854억원의 주식을 순매도했고 28일에는 3977억원을 팔아 올 들어 최대규모의 외국인 주식이 빠져나갔다.


금융당국은 외국인의 순매도 규모가 충분히 감내할 수 있는 수준이며 리먼사태(8개월간 20조원)와 비교하면 눈에 띄는 규모가 아니라고 평가한다. 또 브렉시트는 정치적 사안인 만큼 외국인들이 안전자산 선호요인 외에는 자본을 회수할 이유가 없다고 진단한다. 더욱이 원화가치 하락이 크지 않은 상황에서 외국인의 순매도가 많지 않을 것이란 주장에 힘이 실린다.

박상현 하이투자증권 이코노미스트는 “과거 글로벌 금융위기나 남유럽 재정위기 등과 비교하면 외국인의 순매도 규모는 많지 않고 앞으로도 제한적일 것”이라고 말했다.

③글로벌시장도 방어태세= 세계 주요국 총재들도 글로벌 금융시장의 혼란을 막기 위해 일제히 시장에 유동성을 공급하며 방어태세에 돌입했다. 브렉시트는 정치이슈이자 경제이슈라는 점에서 EU 주요국들이 정책공조와 유동성 공급에 나선다는 방침이다. 유럽국가들이 미국의 금융기관 부실로 손 놓고 있다가 전세계 금융기관의 신뢰 하락으로 이어졌던 리먼사태와 다른 이유다.

영국중앙은행은 브렉시트 결정 당일 250억파운드(약 405조원)의 긴급유동성 공급을 약속했고 캐나다 최대은행인 로열뱅크오브캐나다(RBC) 역시 500억파운드(약 810조원) 규모의 추가 양적완화에 나서기로 했다. 미국은 주요국과 통화스와프 가능성을 시사하는 등 시장안정화에 집중했다. 또 EU라는 공동체의 붕괴조짐 등 유럽국가의 불확실성을 해소하기 위해 독일·프랑스·이탈리아 정상은 결속을 강화했다. 각국은 당분간 경제완화 기조를 이어가고 경기침체와 외환 리스크를 줄여나갈 방침이다.


/사진=이미지투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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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쇄 도미노·리그렉시트… 불안은 여전

브렉시트가 과거 금융위기와 성격이 다르다고 해서 안심하긴 이르다. 브렉시트를 기점으로 유럽국가에 냉기가 흘러 금융위기 공포가 확산될 것이란 우려가 여전히 높다. 브렉시트 여진은 오래전부터 독립의지가 강했던 스코틀랜드를 자극했다. 스코틀랜드는 영국 연방에서 독립해 EU에 독자적으로 재가입하겠다고 나서 영국연방 해체위기론이 대두된다. 또 네덜란드와 프랑스, 이탈리아 등 유럽국가의 극우정당들도 정부에 EU탈퇴 국민투표를 압박하는 등 갈등이 커지는 상황이다.

영국에선 브렉시트의 재투표를 요구하는 청원에 400만명이 넘게 서명하는 등 유권자간 갈등이 고조되고 있다. 브렉시트와 탈출을 의미하는 엑소더스의 합성어 ‘브렉소더스’, 브렉시트를 후회하는 ‘리그렉시트’가 등장했고 영국 정세는 더욱 불안정해졌다.

EU는 완전히 영국에 등을 돌렸다. 국제신용평가사들은 영국의 국가신용등급을 줄줄이 하향조정했다. EU 공식 언어에서 영어를 퇴출시키려는 감정적 대응도 나온다. 이 같은 국제사회의 움직임은 영국에 수출하는 우리기업에 장기적으로 큰 타격을 입힐 수 있다. 영국 수출은 지난해 기준 73억9000만달러, 총 수출의 1.4% 수준이지만 유럽의 경기불안이 장기화될 경우 주요 수출품목인 자동차·IT 등의 타격이 우려된다.

박영호 미래에셋대우 애널리스트는 “현재 유럽과 한국에서 생산한 완성차를 영국에 수출하는 구조에서 브렉시트로 EU FTA의 무관세 혜택이 소멸되면 영국 내 경쟁력이 약해질 것”이라며 “국내 자동차·IT기업에 미치는 영향이 장기적으로는 중립적이고 단기적으로는 부정적인 면과 긍정적인 면이 상존할 것”이라고 말했다.


☞ 본 기사는 <머니위크>(www.moneyweek.co.kr) 제443호에 실린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