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성 시뮬레이션 게임. 24시간 게임할 수 있는 닌텐도의 미래산업 전략. 키덜트그룹이 게임 유효 소비계층으로 등장’. 한창완 세종대 애니메이션학과 교수는 최근 ‘포켓몬 고(go)’ 열풍 배경을 이같이 정의했다.


포켓몬 고에는 무엇을 키운다는 인간의 욕망이 담겼고 등·하교, 출·퇴근시간 등 24시간 게임을 즐길 수 있는 닌텐도의 미래전략이 반영됐으며 유년기 만화 <포켓몬스터>에 열광하던 아이들이 20~30대가 된 후 유효소비계층으로 재등장했다는 것이다. 일각에선 한국엔 ‘포켓몬스터’와 같은 킬러콘텐츠가 없다고 지적한다. 이에 대한 한 교수의 생각은 다르다.

“킬러콘텐츠요? 한국에도 이미 많습니다. 문제는 콘텐츠와 시장을 어떻게 활용하느냐예요.”


한창완 세종대 애니메이션학과 교수. /사진=서대웅 기자
한창완 세종대 애니메이션학과 교수. /사진=서대웅 기자

◆‘패밀리시장’ 형성 안된 한국 캐릭터산업


한창완 교수는 전세계 키즈캐릭터시장에서 한국캐릭터의 점유율이 상당히 높은 편이라고 평가했다. 한국 캐릭터사업자들이 영유아 대상의 엔젤시장을 확보하기 위해 역량을 집중했기 때문이다. 해외는 그 반대다. 미국이나 유럽은 키덜트시장에 주목하고 캐릭터를 공급한다.


“유럽 등지의 키즈캐릭터시장은 리스크가 굉장히 높아요. 이를테면 아이들 정서에 맞지 않는 스토리텔링이나 음악, 색 등을 선보이다 학부형단체로부터 반발을 사기 쉽죠. 캐릭터 생산에 투입된 비용대비 수익이 적을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해외 캐릭터사업자들은 키덜트시장을 노리죠.”

미국과 유럽에서의 키덜트시장은 곧 ‘패밀리시장’이다. 부모가 캐릭터를 보고 즐기면 그 즐거움을 아이가 함께 누린다는 얘기다.


반면 한국의 캐릭터 수요계층은 아이에 집중됐다. 문제는 엔젤시장의 키즈캐릭터 수요가 10대 초반에서 끝나는 경우가 많다는 점이다.

한 교수는 “한국의 10대들은 중·후반으로 갈수록 일본이나 미국의 할리우드 캐릭터에 열광하는 경향을 보인다”고 말했다. 한국의 부모는 이들 캐릭터에 공감하지 못한다. 한국 캐릭터시장이 키즈캐릭터 중심으로 자리 잡았기 때문이다. 이 같은 이유로 한국에서 캐릭터 패밀리시장이 형성되기 어려웠다고 지적했다.


◆기존 캐릭터를 리디자인하라

한 교수는 캐릭터의 라이프사이클을 늘려야 한다고 강조했다. 키즈캐릭터를 키덜트캐릭터로 키워야 한다는 뜻이다. 이를 위해 그는 기존 캐릭터를 발전시키는 게 중요하다고 말했다. 캐릭터를 리디자이닝(Re-desgining)하고 새로운 시리즈를 발굴하는 등 롱텀비즈니스 전략을 펼쳐야 한다는 것.

그는 “사람의 취향은 시대에 따라 변한다. 1928년 설립된 디즈니사의 미키마우스도 리디자이닝을 수십번 거쳤다”고 말했다. 그러나 한국의 캐릭터는 보통 과거에 머물러 있다. <아기공룡 둘리>가 대표적이다.

“지금 둘리는 옛날 둘리예요. 아직도 마당이 넓은 개량 한옥에 둘리가 살고 있죠. 개천변을 걷고 딱지치기를 하며 붕어빵을 사먹습니다. 요즘 아이들은 공감할 수 없어요. 아파트에 살고 학원에 다니죠. 학원 앞 음식점에서 끼니를 때우고요. 부모가 자녀에게 둘리를 사주고 싶어도 아이들이 거부합니다.”

세대가 변하는 시점마다 세대 구성원이 공감할 수 있는 새 스토리텔링이 나와야 한다는 뜻이다.

한 교수는 이어 눈에 익은 조연을 주연으로 발탁해 새로운 시리즈를 기획하는 ‘스피노프 전략’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미키마우스 시리즈에 오리가 조연으로 등장했다. 대중이 오리에 열광하자 어느새 오리가 주연으로 올라섰다. 디즈니의 도널드덕 시리즈가 탄생하게 된 배경이다.

“둘리 안에도 캐릭터가 많지만 이들이 주연으로 올라선 경우는 없었습니다. 다른 시리즈물도 마찬가지죠.”

◆성장 가능성 커… ‘블랙시장’이 변수


한국콘텐츠진흥원에 따르면 지난해 한국 캐릭터시장의 규모는 9조8000억원이다. 미국(110조)과 캐나다(12조2000억원), 일본(11조5000억원)에 이어 세계 4위다. 그러나 한 교수는 국내 캐릭터시장의 40~45%가 블랙마켓, 즉 불법복제시장이라고 진단했다.

“캐릭터산업이 가동되려면 시장의 인구수가 단일언어권 기준으로 1억명 이상이어야 합니다. 한국은 5000만명 시장이에요. 그럼에도 캐릭터산업이 형성될 수 있는 건 문화가 역동적이기 때문이죠. 충동구매나 중독구매가 많다는 뜻입니다.”

역동적인 시장은 활발한 유통구조를 낳지만 한편으론 지하시장을 키운다는 게 한 교수의 생각이다. 이를테면 정적인 시장에서는 캐릭터를 쉽게 소비하지 않는다. 대신 한번 구매할 때 신중을 기한다. 여러 캐릭터 중 어느 것을 택할지 고민하고 제품의 질을 따진다.

반면 역동적인 한국의 캐릭터소비 기준은 싼 가격인 경우가 많다. 당연히 캐릭터 불법복제시장이 커질 수밖에 없는 구조다. 패밀리시장도 아직 정착되지 못했다. 그럼에도 한 교수는 국내 캐릭터산업을 긍정적으로 본다.

“한국 캐릭터시장은 앞으로 더 성장할 겁니다. 그러나 블랙시장이 변수예요. 다행히 문화부가 2~3년 전부터 이 상황을 인지하기 시작했어요. 어떻게 대처할지 앞으로 지켜볼 일입니다.”

☞ 본 기사는 <머니위크>(www.moneyweek.co.kr) 제446호에 실린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