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해 말 사법고시에 합격한 박모씨(35)는 A은행에서 1억원짜리 마이너스통장을 개설했다. 시험 합격증서를 보여주자 은행이 연 3%대 2년 고정금리로 통장을 발급해준 것. 박씨는 마이너스통장으로 주변인에게 합격턱을 냈고 시험공부를 하느라 미뤘던 해외여행도 다녀왔다. 연수원에 타고 갈 승용차까지 구입했더니 어느새 마이너스통장에는 6000만원만 남았다. ‘천천히 갚으면 되겠지’라고 생각했던 4000만원은 고작 10%를 갚는 데 그쳤다.


마이너스통장은 전문직 종사자에게 돈을 빌려주는 ‘전문직론’으로 유명하다. 법대생의 경우 사법고시를, 의대생은 의무고시에 합격하면 마이너스통장을 1억원 이상의 한도로 열어준다.

대다수 전문직 종사자들은 고소득·고신용자로 거액의 마이너스통장을 쓰는 데 무리가 없지만 최근에는 은행이 법학전문대학원(로스쿨), 치·의학전문대학원(의전원) 학생도 자격대상에 포함해 논란이 일고 있다. 은행은 학생들을 미래 우량고객으로 확보하기 위한 영업전략이라고 반박하지만 경제관념이 뚜렷하지 않은 학생들이 수천만원의 빚을 떠안을 수 있어 부실 우려가 제기됐다. 


/사진=이미지투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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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행 마케팅 치열… 학생도 포함

은행별 마케팅도 치열하다. KEB하나은행은 로스쿨에 재학 중인 고객을 대상으로 만기일시상환 조건의 마이너스통장 ‘로이어클럽대출’을 선보였다. IBK기업은행은 ‘IBK파워신용대출-전문직군’에 의과대 본과 4학년을 포함했다. 의과대 학생은 재학증명서류를 제출하면 어렵지 않게 대출을 받을 수 있다. NH농협은행의 ‘NH메디프로론’도 본과 이상 의대생, 의학전문대학원생이 부모 1인의 대출동의를 받으면 최대 1000만원 이내에서 마이너스통장을 만들 수 있다.


은행권은 전문직론을 받는 학생에게 3000만원 안팎으로 마이너스통장을 열어주기 때문에 문제가 될 만한 한도는 아니라고 반박한다. 하지만 전문직도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의사, 변호사가 개업 후 폐업하는 비율이 높아져 연체율이 오를 가능성을 무시할 수 없다. 고시에 합격하더라도 로펌·병원 등에 취업하거나 사업장을 개장하기까지 소득이 불안정해 마이너스통장을 확대 사용하는 것은 개인의 경제생활에도 위협이 될 수 있다.

게다가 마이너스통장은 ‘복리의 마법’이 적용돼 한도까지 금액을 쓰지 않더라도 이자가 복리로 계산된다. 제때 갚지 않으면 생각보다 많은 이자를 떠안을 수 있다는 뜻이다. 이를테면 대출금리 10%, 1000만원짜리 마이너스통장을 개설해 첫달에 500만원을 사용하고 그대로 둔다면 매월 대출금 및 이자가 복리로 늘어 7년 후에는 1000만원의 한도가 꽉 차게 된다.


또 중도상환수수료가 없어 잘 사용하면 합리적인 금융생활을 할 수 있지만 갑작스런 실직으로 소득을 잃으면 이자 부담에 가계가 무너질 수 있다. 특히 사회진출 전인 학생이 과도한 채무에 시달릴 수 있으므로 마이너스통장 개설은 신중하게 접근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이에 대해 은행 관계자는 “전문직 대상 신용대출, 마이너스통장은 소득과 신용이 높아 연체율 우려가 낮았으나 최근에는 1%대의 연체율을 기록해 리스크 관리를 강화하고 있다”며 “연체율이 계속 늘어나면 합격증뿐아니라 전문직자격증 취득 혹은 사업장 개업자료 증빙 요구 등 점차 대출규제를 까다롭게 적용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슈 더하기] 고시 합격증만 보면 열리는 '통장'

◆사상최대치… ‘ISA 꺾기’ 등장

마이너스통장은 약정기간(1년) 동안 일정한 한도 내에서 수시로 인출(대출) 및 상환이 가능한 은행대출이다. 최근에는 기준금리 인하로 대출금리가 떨어지는 추세다. 마이너스통장 대출금리는 지난해 1분기 평균 연 4.16~4.33%에서 지난달 말 현재 평균 연 3.5% 내외로 하락했다. 연 6~7%대였던 5년 전과 비교하면 대출금리가 절반가량 낮아진 셈이다.


금리가 떨어지면서 금융소비자의 마이너스통장 이용도 빠른 속도로 증가했다. 6월 말 기준 마이너스통장 등 기타대출잔액은 165조8000억원으로 한달 전보다 1조7000억원 증가해 사상최대치를 기록했다. 대출용도도 확대됐다. 주택자금을 넘어 생활자금 용도로도 쓰이는 추세다.

이처럼 마이너스통장의 수요가 높아지면서 은행들은 통장발급 시 깐깐하게 요구하던 개인의 직업·신용 등의 조건을 대폭 낮추고 예금상품에 마이너스통장을 이용할 수 있는 서비스를 추가했다. 오랜 저금리환경에서 떨어진 수익을 개선하기 위해 이자가 더 비싼 마이너스통장의 판매를 확대하는 것이다.

NH농협은행은 직장이 없어도 아파트를 소유했거나 단골 고객일 경우 ‘NH주거래우대대출’ 마이너스통장을 개설해준다. 우리은행은 통장 잔고가 부족해 관리비와 통신비 등을 미납하는 일이 발생하지 않도록 잔액이 부족하면 자동으로 마이너스통장으로 전환되는 ‘우리주거래 통신·관리비 통장대출’을 판매 중이다.


/사진=머니위크DB
/사진=머니위크DB

마이너스통장의 인기가 날로 높아지면서 개인종합자산관리계좌(ISA) 가입유치에 역이용하는 사례도 발생했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지난 3월부터 ‘미스터리 쇼핑’(암행감찰)을 벌인 결과 마이너스통장 고객에게 ISA 가입을 권유하는 이른바 ‘꺾기관행’ 정황을 포착한 것으로 알려졌다.

ISA는 한사람당 하나의 계좌만 열 수 있고 의무가입기간이 5년으로 길기 때문에 은행은 고객 유치에 사활을 걸고 있다. 마이너스통장은 급전이 필요한 사람이 낮은 금리, 높은 한도로 발급받기를 원하기 때문에 대출자는 은행의 통장개설을 비롯해 ISA 가입 요구 등을 수용할 수밖에 없다.

현재 금감원은 ISA를 취급하는 14개 시중은행에 ISA 두달치 판매분에 대한 자체 전수조사를 주문했다. 전수조사가 마무리되면 결과에 따라 현장검사를 진행할 방침이다.

금감원 관계자는 “ISA 도입 초기에 은행들이 계좌개설을 무리하게 진행한 것으로 파악하고 전수조사를 벌이는 중”이라며 “결과가 취합되면 내용을 들여다본 뒤 결과에 따라 현장검사를 나갈지 검토할 것”이라고 말했다.


☞ 본 기사는 <머니S>(www.moneys.news) 제447호에 실린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