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세계그룹이 위조 사건으로 발행을 중단한 '스크래치 상품권'을 한달 만에 다시 유통시킨 것으로 드러나 피해가 우려된다.


신세계는 지난해 8월 즉석에서 긁어 사용할 수 있는 스크래치 상품권을 출시했다. 스크래치를 긁어 일련번호를 모바일이나 온라인에 등록하면 바로 사용할 수 있도록 만든 점이 특징. 신세계의 모바일 간편결제서비스 ‘SSG페이’와 연동이 가능해 편의성도 갖췄다.


하지만 지난해 9월 말 뒷면 스크래치 부분을 덧칠하는 수법으로 위조돼 영세 구둣방이나 할인 판매소 등에서 2900만원어치의 상품권이 유통되는 사고가 발생했다. 결국 신세계는 5만원·10만원권 신규상품권 발행을 중단했으며 올해 출시할 예정이던 1만원·5000원·1000원권 상품권 발행 계획도 전면 취소했다.


/사진=뉴시스 배훈식 기자
/사진=뉴시스 배훈식 기자

◆업주들 “또 위·변조될까 불안”

본지 확인 결과 발행이 중단된 것으로 알려졌던 신세계 스크래치 상품권이 위조사건 발생 한달 만인 지난해 10월부터 버젓이 상품권시장에 유통되고 있었다.

본지에 신세계 스크래치 상품권 유통사실을 제보한 업주 A씨는 “상품권 판매업주의 경우 도난상품권이나 분실상품권을 취급하면 업무상 과실장물취득죄가 적용된다”면서 “스크래치 상품권은 한번 위조된 사례가 있어 매입이나 매매를 할 때마다 우려가 큰 게 사실”이라고 불안감을 드러냈다. 그는 “동료 업주들 대부분이 이 문제에 대해 쉬쉬하는 분위기”라며 “신세계 상품권의 경우 찾는 사람이 워낙 많아 취급을 안할 수도 없는 실정”이라고 난처한 입장을 전했다.


스크래치를 한번 벗겨낸 상품권은 오프라인에서는 사용할 수 없다. 또한 정식 사용처에서도 바코드 등으로 상품권을 인식하기 때문에 위·변조 여부를 쉽게 확인할 수 있다. 문제는 구둣방 등 비공식 사용처에서는 위·변조 상품권을 잡아낼 수 없다는 점이다. 구둣방 등에서는 권면 금액의 일부를 할인해 상품권을 받아주고 있어서다.

따라서 업주들은 지난해 발생한 위·변조 사건이 언제든 재발할 수 있다는 우려 때문에 불안에 떨고 있다. 스크래치 상품권은 한번 사용됐더라도 해당 부위를 덧칠해 비공식 사용처에서 유통될 수 있는 위험요소가 여전히 존재한다.


송파구에서 영세 구둣방을 운영 중인 B씨는 “사기꾼들이 마음만 먹으면 이 상품권으로 언제든 우리 뒤통수를 칠 수 있다는 생각에 불안하다”면서 “소비자들도 '이거 위조사건으로 금지됐던 상품권 아니냐'고 문의하는 경우가 많아 영업에도 지장이 있다”고 말했다.

위·변조 사건이 발생하면 피해는 고스란히 업주와 소비자가 떠안게 된다. 상품권 유통구조상 소비자가 구둣방 등 신세계가 지정하지 않은 곳에서 위·변조된 상품권을 산 경우 피해를 보상받기 힘들기 때문이다. 상품권을 취급하는 구둣방이나 상품권 전문거래업체는 세금을 피하기 위해 대부분 현금으로 거래해 기록증빙이 어렵다.


결국 누가 어느 정도를 사갔는지 거래 기록이 남지 않는 이상 업주와 소비자 모두 피해보상을 받기란 하늘의 별따기다. 업주 A씨는 이를 우려해 한동안 상품권을 팔러오는 고객의 인적사항을 적기 시작했지만 금방 철회할 수밖에 없었다. 단골들의 눈치가 보였기 때문이다.

A씨는 "단골들이 인적사항을 적기 시작하면서 불편해하는 것이 눈에 보였다"면서 "엄연히 상품권은 유가증권인데 왜 인적사항을 적느냐고 항의하는 경우가 많아 눈치를 볼 수밖에 없는 실정"이라고 전했다. 그는 "위조 우려가 있는데도 굳이 스크래치 상품권을 다시 발행하는 이유를 모르겠다"고 불만을 토로했다.


신세계 스크래치 상품권. /사진=머니투데이 DB
신세계 스크래치 상품권. /사진=머니투데이 DB

◆방치하면 피해 불보듯

다른 유통대기업은 어떨까. 신세계와 달리 경쟁업체인 롯데백화점과 현대백화점은 스크래치 상품권을 발행하지 않는다. 보안위험이 높기 때문이다.

롯데백화점 관계자는 “백화점 상품권 중 상당수가 지정 거래처가 아닌 구둣방이나 상품권 전문 취급업체에서 유통되는 만큼 관리가 어려울 수 있다”면서 “스크래치 방식은 낮은 보안성이 문제가 될 수 있어 앞으로도 발행계획이 없다”고 밝혔다. 현대백화점 관계자도 “온라인쇼핑몰에서 사용한 뒤 원래 스크래치처럼 덧칠해 구둣방 등에 되파는 사고가 언제든 터질 수 있기 때문에 지난해 온라인시장을 위해 발행을 고려했다가 철회했다”고 밝혔다.

신세계 측은 상품권 재유통에 문제가 없다는 입장이다. 당초 위조 사건도 비공식 사용처에서 구매한 상품권이 문제가 됐다는 설명이다. 신세계 관계자는 “지난해 발행을 중단한 직후 시스템을 보완해 한달 후부터 재유통을 시작했다”면서 “소비자가 백화점이나 마트 등 신세계가 지정한 사용처에서 상품권을 구입하면 아무 문제가 없다. 비공식 사용처에서 구입한 것은 원칙상 우리가 환불이나 위조피해를 책임질 이유가 없다”고 강조했다.

일각에서는 신세계도 억울할 수 있다고 말한다. 정식 사용처도 아닌 비공식 사용처를 위해 관련 대책을 내놔야 할 의무가 없다는 것. 유통업계 한 관계자는 “한번 문제가 된 상품권을 다시 유통시킨 신세계에 도의적 책임이 있다는 지적이 제기되지만 구둣방 등 비공식 거래처의 경우 세금 부담을 피하기 위해 현금거래를 하는 등 보호를 정당하게 원할 만큼 업주 스스로 떳떳한지 돌아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어떤 방식으로든 대책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일반 소비자의 경우 백화점 등 공식 사용처만큼이나 비공식 사용처에서 구매하는 비중이 높기 때문이다. 한국소비자원 피해구제국 관계자는 “소비자가 많이 찾는 구둣방 같은 거래처들은 피해구제에 대한 보호막이 얇은 편”이라면서 “하지만 이 거래처 등지에서 유통되는 상품권 수가 상당하다는 것을 고려할 때 신세계나 타 상품권 발행업체들이 함께 상생할 수 있는 구조를 갖춰 업주나 소비자의 피해를 줄여야 한다”고 설명했다.

☞ 본 기사는 <머니S>(www.moneys.news) 제449호에 실린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