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 백제 문화의 진수를 만나다
송세진의 On the Road – 부여
송세진 여행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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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에서 가장 오래된 인공연못과 석탑이 부여에 있다. 말로는 표현할 수 없는 예술품 또한 이곳에 있다. 우리는 이런 걸 ‘최고’라 한다. 화려하고, 아름답고, 아련한 백제의 절정으로 시간여행을 떠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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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림사지 5층석탑. |
◆최고의 인공연못 궁남지
궁남지는 현존하는 인공연못 가운데 최고 연장자다. <삼국사기>에 의하면 무왕 35년(634년)에 만들었다고 하니 따져보면 경주 안압지보다 40년 앞서 만들어졌다. 이름은 왕궁의 남쪽에 있다. 하여 궁남지라고 부른다.
‘궁성 남쪽에 못을 파고 20여리나 먼 곳에서 물을 끌어들이고, 언덕에는 수양버들을 심고…’라더니 과연 못 주변으로 수양버들 가지가 축축 늘어졌다. 또한 ‘3월에 왕은 비빈과 더불어 큰 연못에 배를 띄우고 놀았다’고 하니 이곳에서 뱃놀이도 즐겼던 것으로 보인다.
연못 중심에는 신선이 노는 산을 형상화 했다고 전하는데, 산보다는 섬처럼 보인다. 이곳에 정자가 세워졌다. ‘포룡정’이라 이름의 정자까지는 연못을 가로지르는 다리가 있어 밤에는 난간을 따라 불을 밝히고, 낮에는 연못 분수에서 물을 뿜는다. 밤이나 낮이나 로맨틱한 그림이다.
연못 주변은 온통 연지다. 면적이 12만평에 이른다고 하니 산책하기에 부족함이 없다. 연, 수련, 가시연, 왜개연, 물양귀비, 부레옥잠, 자라풀, 물질경이 등 초록의 풍성함을 즐기기 좋다. 꽃과 나무가 무성하니 심심치 않게 오리와 왜가리, 물닭 등도 만난다. 아침에 오면 싱그러움이 좋고, 저녁에는 물가로 떨어지는 낙조가 아름답다.
해가 지고 나면 피는 꽃도 있는데 빅토리아 연꽃이 그것이다. 꽃이 피는 날에는 시간을 맞춰 사진작가들이 모여든다. 30~40㎝ 정도의 커다란 꽃이 피어나는 모습을 생생히 볼 수 있다. 필 때는 흰색으로 피는데 다음날 저녁이 되면 색이 변하기 시작해 짙은 붉은색이 된다. 그래서 이틀 또는 사흘에 걸쳐 피는 꽃이라고도 하고 피어나는 모습이 장대해 이를 ‘빅토리아 여왕의 대관식’이라고들 한다.
산책로를 따라가면 옛 우물 유적이 있다. 이곳에서 각종 토기와 와전류, 동물뼈 등이 출토됐다고 한다. 이 밖에도 길쌈도구와 짚신, 화살촉 등 다양한 생활용구가 궁남지 주변에서 나왔다.
옛사람들은 이곳에 물건만 남긴 것이 아니라 발자국도 남겨 놓았다. 1400년 전 ‘백제인의 발자국’이라 불리는 이것은 ‘백제문화단지’에서 재현된 모습으로 확인할 수 있다. 길이 20㎝, 너비 10㎝, 보폭 40㎝ 정도다. 어린아이였을까. 여자였을까. 아니면 백제인의 발은 이렇게 작았을까. 왕과 비는 신을 신었을 테고, 공사에 참여했던 사람이었을까. 왕의 연못에 몰래 들어와 놀던 아이였을까. 상상이 꼬리를 무는 꽤 서정적인 산책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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궁남지 포룡정. |
◆백제금동대향로와 국립부여박물관
이 놀라운 것이 진흙구덩이에서 천년 동안 잠자고 있었다니! 1993년에 세상으로 나온 백제금동대향로에는 대단한 기가 흐른다. ‘혼이 깃들었다’는 말은 이런 경우에 쓰는 게 아닌가 싶다. 전시실 하나를 차지한 그 앞에서 기운이 느껴진다. 유리관 안에서 조명을 받는 모습은 빛을 받는다기 보다 빛을 모아 다시 뿜어내는 듯하다. 아름답다. 누가 이것을 만들었을까. 이것은 과연 발견된 것일까. 아니, 스스로 그 기운을 세상 위로 보낸 것은 아니었을까. 이것을 처음 만난 사람의 떨림이 그대로 느껴지는 듯 하다.
국보 287호인 백제금동대향로는 왕실사찰로 알려진 능산리사찰에서 발견됐다. 능산리사찰은 백제 위덕왕이 아버지 성왕을 위해 세운 절이다. 말 그대로 향로, 이 안에 향불을 피우면 그 연기가 바깥으로 퍼져 나오는 모습이 신비롭고, 신령스럽다.
향로의 키는 64㎝나 돼 크기만으로도 위엄이 대단하다. 전체를 보면 용이 머리를 들어올려 둥근 꽃봉오리 모양을 하고 있다. 가장 위의 봉황이 가슴을 내밀고 고고한 자태를 뽐낸다. 자세히 보면 향로의 뚜껑 부분은 봉래산이다. 이것은 중국 전설에 내려오는 신산을 상징한다. 이 사이로 향의 연기가 빠져 나오도록 설계됐으니 마치 신선의 세계에서 피어오르는 안개와도 같을 것이다. 신산에는 음악을 연주하는 다섯 악사와 신선, 새, 짐승, 신선세계의 동식물이 표현됐 있다.
이 귀한 유물은 국립부여박물관에 전시된 것이 진품이다. 다른 박물관에서 복제품을 볼 수 있지만 이 기운이 과연 느껴질까 의문이다. 부여에 온다면 박물관에서 이 향로를 꼭 봐야 한다. 이 밖에도 국립부여박물관에서는 백제의 선사문화, 종교, 건축 등을 살펴볼 수 있고, 생생한 기증 유물과 특별전시, 교육프로그램 등에 참여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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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제금동대향로. |
◆정림사지와 5층석탑
정림사지 한가운데 있는 5층석탑은 우리나라 석탑의 시조로 볼 수 있다. 높이 8.33m, 국보 제9호로 익산의 미륵사지 석탑과 함께 현재 남아있는 백제의 석탑 2기 중 하나다.
이전에는 목탑을 쌓았었는데, 이때부터 재료를 석재로 바꾸고 목조탑의 구조를 변용해 탑을 만들었다. 석탑의 모습은 심플하지만 은근한 균형미가 있다. 각층의 옥개석을 단순히 직선 처리하지 않고 처마를 살짝 치켜 올리는 등 세심한 멋도 담겨있다.
백제의 국운이 기울면서 이 탑 또한 수모를 겪었다. 나당연합군의 당나라 장수 소정방이 ‘백제를 정벌하고 세운 기념탑’이란 글씨를 새겨놓아 한동안 소정방이 세운 ‘평제탑’으로 알려지기도 했으니 말이다.
5층석탑 뒤의 강당에는 고려시대에 만들어진 석불좌상이 있다. 이것은 화재로 심하게 마모되어 세월의 풍파가 그대로 느껴진다. 불상의 머리 역시 당시의 것이 아니라 후대에 다시 만들어 얹은 것이라 한다.
복원된 강당을 제외하고는 모든 것이 터만 남았다. 기둥자리를 보며 절의 규모를 상상하고, 정림사지 박물관으로 가 이곳에서 출토된 유물을 확인한다. 박물관에는 연화문 수막새기와, 서까래 기와, 귀면문과 당초문 암막새기와, 곱들제삼존불 등 이곳에서 나온 유물이 있다. 이와 함께 정림사지를 이해할 수 있는 정림사지관, 백제불교 문화관, 기획전시실, 체험공간, 영상실 등을 둘러본다.
박물관을 걷고 있자니 여행이 차분히 정리되는 느낌이다. 부여는 백제 말기의 도읍이다. 그들은 새로운 중흥을 꿈꿨으나 얼마 지나지 않아 멸망한다. 파국을 향한 절정은 그렇게나 화려했다. 승자의 기록 속에는 초라하기만 했던 백제가 이토록 찬란하였으니, 그 옛날을 더듬고 있는 지금의 여행자는 그저 아련할 뿐이다.
[여행 정보]
부여 궁남지 가는 법
논산천안고속도로 – 당진영덕고속도로 –서천공주고속도로 – 내리교차로에서 우측방향 – 대백제로 – 부여교차로에서 ‘부여, 군수리’ 방면으로 우측방향 – 부여교차로에서 ‘부여’ 방면으로 좌회전 – 성왕로 – 우회전 – 서동로 – ‘궁남지’ 방면으로 우회전 – 궁남로
[대중교통]
1. 부여시외버스터미널 – 701번 버스 탑승 – 부여중학교 정류장 하차
2. 부여시외버스터미널에서 도보이동(약 20분)
[주요 스팟 내비게이션 정보]
궁남지: 검색어 ‘궁남지’ / 충청남도 부여군 부여읍 궁남로 52
국립부여박물관: 검색어 ‘국립부여박물관’ / 충청남도 부여군 부여읍 동남리 산16-9
정림사지: 검색어 ‘정림사지’ / 충청남도 부여군 부여읍 동남리 254
궁남지
문의: 041-830-2330
24시간 개방, 연중무휴
입장료: 무료
국립부여박물관
문의: 041-833-8562
관람시간: (평일) 오전 9시 ~ 오후 6시 / (토요일, 일요일, 공휴일) 오전 9시 ~ 오후 7시
야간개장(4월~10월): 매주 토요일 오전 9시 ~ 오후 9시
관람료: 무료
http://buyeo.museum.go.kr
정림사지
문의: 041-832-2721
관람시간: (3월~10월)오전 9시 ~ 오후 6시 / (11월~2월)오전 9시 ~ 오후 5시
관람료: 어른 1500원 / 군경 및 청소년 900원 / 어린이 700원
http://www.jeongnimsaji.or.kr/
충남부여종합관광안내소 041-830-2230
부여군청 문화관광과 041-830-2252
● 식당, 카페
G340: 지붕이 높은 창고를 개조한 공간이다. 백제의 기운이 느껴지는 골동품이 있는가 하면 서구식 빈티지 소품과 매치하는 등 인테리어가 독특하다. 커피, 차, 브런치 등을 맛볼 수 있으며 자체적으로 문화행사를 진행한다.
커피, 음료 3500원~5000원 / 브런치 세트 1만원 / 파스타 1만2000원
041-834-5544 / 충청남도 부여군 부여읍 계백로 340
남경수제만두: 주인장이 직접 손으로 빚어 만드는 만두집으로 메뉴는 찐만두와 튀김만두가 전부다. 아낌없이 넣은 재료와 정성이 일품이다.
중국식고기만두 5000원 / 매운 고기만두 5000원 / 튀김 고기만두 5000원
041-837-0234 / 충청남도 부여군 부여읍 궁남로 6
☞ 본 기사는 <머니S>(www.moneys.news) 추석합본호(제452호·제453호)에 실린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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