非테크기업·국부펀드 투자로 오히려 몸값 상승

우버, 샤오미, 에어비엔비 등 ICT업계의 총아로 주목받던 ‘유니콘’ 기업들의 명성이 예전 같지 않다. 투자자들의 기대를 저버리고 형편없는 실적에 머물러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유니콘은 여전히 전세계 스타트업들에게 ‘성공의 징표’로 간주된다. 특히 올해 일어난 3건의 M&A는 유니콘의 미래가 여전히 장밋빛임을 입증했다.

상상의 동물 '유니콘'은 IT업계에서 '10억달러 이상의 기업가치를 가진 스타트업'의 별칭으로 사용된다. /사진=Pixabay
상상의 동물 '유니콘'은 IT업계에서 '10억달러 이상의 기업가치를 가진 스타트업'의 별칭으로 사용된다. /사진=Pixabay

유니콘(Unicorn)은 서구의 신화와 전설에 등장하는 상상 속의 ‘일각수’(一角獸) 명칭이다. 하지만 IT업계에서는 ‘10억달러(약 1조1000억원) 이상의 기업가치를 지닌 스타트업·벤처기업’을 지칭하는 용어로 사용된다.

2013년 미국의 벤처캐피탈 ‘카우보이 벤처스’의 여성 창립자 에일린 리가 IT전문매체 ‘테크크런치’에 기고한 ‘유니콘 클럽에 어서 오세요: 10억달러 스타트업에 대한 연구’라는 기사에서 최초로 사용한 이 신조어는 빠른 속도로 업계의 호응을 얻었다.

그는 페이스북, 링크드인처럼 혁신적인 서비스로 순식간에 10억달러 이상의 기업가치를 확보한 매력적인 스타트업들을 “매우 드물어, 마법과 같다”는 이유로 상상속의 동물 ‘유니콘’이라고 명명했다.

유니콘 중에서도 페이스북처럼 기업가치가 100억달러를 넘어선 기업들은 ‘슈퍼 유니콘’이라 지칭했으나, 현재는 ‘데카콘’(Decacorns)이라는 용어가 더 많이 사용된다. 10억달러짜리 뿔이 10개 달렸다는 뜻이다. 우버, 샤오미, 에어비엔비, 디디 추싱, 팔란티르, 스냅챗 등이 이에 해당한다. 

이보다 10배 큰 1000억달러 이상의 가치를 가진 기업은 ‘헥토콘’(hectocorns)이라 불린다. 애플과 구글, 마이크로소프트, 페이스북 등 이미 시장에서 확고히 자리잡은 기업들이다. 

조금 색다른 ‘나왈’(Narwhal, 외뿔고래)도 있다. #슬랙, 킥, 쇼피파이 등 유니콘 중에서도 캐나다 국적을 가진 기업들을 지칭하는 용어다. 

◆ 171개 유니콘 중 미국 기업 97개

글로벌 투자리서치업체 CB인사이트는 실시간으로 전세계 유니콘 기업들의 기업가치를 평가한 순위표를 서비스한다. 이 순위표에 따르면 2016년 8월 30일 기준 유니콘 기업의 숫자는 171개이며 이들의 기업가치 총합은 6220억달러에 달한다. 

1위는 기업가치 680억달러의 ‘우버’(Uber)다. 2010년 차량공유 서비스를 최초로 론칭해 ‘공유경제’라는 새로운 패러다임을 창조한 우버는 오랫동안 데카콘의 수위를 유지하고 있다.

2위는 ‘중국의 애플’로 불리는 샤오미(Xiaomi, 460억달러)이며, 3위는 중국판 우버로 최근 우버 차이나와 합병한 디디 추싱(Didi Chuxing, 360억달러)이다. 4위는 숙박공유 기업 에어비엔비(Airbnb, 300억달러)다. 

이외에 팔란티르, 루닷컴(Lu.com), 스냅챗, 차이나 인터넷 플러스 홀딩, 위웍(WeWork), 플립카트(Flipkart), 스페이스X, 핀터레스트, 드롭박스, DJI 이노베이션즈 등 5위부터 14위가 기업가치 100억달러 이상인 데카콘의 말석을 차지한다.

국내 기업으로는 23위 쿠팡(50억달러), 27위 옐로모바일(40억달러), 67위 CJ게임즈(17.9억달러) 등 3곳이 유니콘 명단에 이름을 올렸다. 

나라별로 살펴보면 미국이 단연 압도적이다. 171개 기업 중 97개로 56%에 달하는 기업들이 미국에 본사를 두고 있다. 2위는 중국으로 33개(19%)이며, 3위부터 5위까지는 인도(7개), 영국(6개), 독일(5개) 순이다. 싱가포르와 한국은 각 3개로 공동 6위다. 

이는 글로벌 ICT산업의 판세와 여러모로 유사하다. 앞으로도 상당기간 미국과 중국이 이 분야를 이끌어갈 것을 예상할 수 있다.

◆ 유니콘, 조만간 시체 된다?

문제는 유니콘의 위상이 예전같지 않다는 것. 2014년과 2015년 폭발적으로 늘어난 유니콘의 상당수는 조만간 이름을 반납해야 할 지경이다.

미국 장외시장 정보업체 셰어포스트는 8월16일자 백서에서 “전세계 유니콘의 기업가치평가액이 2013년 1000억달러에서 6배 늘었고 유니콘 수도 39개에서 4배 넘게 증가했다”며 “현재 약 90곳인 미국 유니콘 중 3분의 1가량이 향후 2~3년 안에 유니콘 지위를 잃을 것”으로 예상했다. 

비상장 상태로 기업가치가 10억달러 밑으로 줄거나 IPO를 해도 시가총액이 10억달러에 미치지 못할 것이라는 설명이다. 셰어포스트는 1995년 이후 설립돼 벤처 투자를 받은 미국 IT 스타트업 2만2000곳의 IPO(기업공개), 피인수 성적 등을 분석한 결과를 근거로 들었다. 

리서치업체 CB인사이트에 따르면 다수의 펀드매니저들이 지난해 4분기에 유니콘의 기업가치를 대거 감가상각했다. 그 결과 드롭박스, 클라우데라, 에버노트, 스냅챗, 몽고DB 등 무려 58개 유니콘의 기업가치가 하향 조정됐다.

고객관리 클라우딩기업 ‘세일즈포스’의 마크 베니오프 창업자 겸 최고경영자(CEO)는 올초 다보스포럼에서 “죽은 유니콘들이 많아질 것”이라고 예견했다. 바야흐로 ‘유니콥스(Unicorpse)’의 시대가 개막할 것이라는 불길한 예언이다. 유니콥스는 ‘유니콘’과 ‘시체’(Corpse)의 합성어다.

◆ ‘유니콘 헷지’로 몸값 더 올라

과연 유니콘들의 ‘좋은 날’은 끝난 것일까. 최근의 상황은 오히려 반대에 가깝다. 

유명한 ‘페이팔마피아’의 일원으로 실리콘밸리의 스타트업 액셀러레이터 ‘500스타트업’의 설립자인 데이브 맥클루어는 8월23일자(미국 현지시간) ‘테크 인사이더’ 기고를 통해 “월마트, 유니레버, GM 등 오프라인의 거대공룡기업들이 쇠락하는 기업가치 제고를 위해 유니콘 기업을 매입하거나 투자하는 일명 ‘유니콘 헷지’(Unicorn Hedge) 현상이 벌어지고 있다”고 지목했다. 

실제로 지난 7월 글로벌 소비재기업 유니레버는 미국의 온라인 면도기 판매 스타트업 ‘달러쉐이브클럽’을 10억달러에 인수했다. 거대유통기업 월마트는 지난 8월초 온라인 쇼핑몰 ‘제트닷컴’(Jet.com)을 33억달러에 인수했다. 글로벌 자동차기업 GM도 지난 3월 자동주행 기술을 보유한 스타트업 ‘크루즈’(Cruise)를 약 10억달러에 인수했으며 차량공유 스타트업 ‘리프트’(Lyft)에도 5억달러를 투자했다.  

위 3건의 M&A는 과거 유니콘들의 M&A(인수합병)와 근본적인 차이가 있다. 2013년부터 2015년까지 유니콘과 관련한 대부분의 M&A는 구글, 마이크로소프트, 오라클, IBM, 야후 등 거대 테크기업들이 인수하는 형태로 진행됐다. 하지만 올해 일어난 M&A의 인수자들은 월마트와 유니레버, GM과 완다그룹 등 오프라인 기반 비테크기업들이다.

맥클루어는 투자자 측면에서도 변화가 있다고 덧붙였다. 과거에는 실리콘밸리의 벤처캐피탈들만 스타트업에 투자했지만, 최근에는 사모펀드와 뮤추얼펀드, 국부펀드들까지 벤처투자의 초기단계인 A/B/C라운드에 접근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는 것. 그는 “사우디 왕국의 공공투자기금이 우버에 35억달러를 투자한 것이 대표적인 사례”라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