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대한 요새 같았다. 수많은 마천루를 외곽도로와 시민공원이 에두른다. 외곽도로 안쪽 인도는 명찰을 목에 두른 화이트칼라들이, 바깥쪽 인도는 카메라를 멘 관광객들이 진을 친다. 과거 습지였을 시민공원은 사계청소를 완벽히 했다. 푸른 잔디를 가꾸고 자전거도로를 냈다. 카메라를 든 젊은이들이 여기저기서 구도를 잡는다. 제각기 가을을 찍는다.


지난달 28일 점심시간에 찾은 여의도는 여느 때처럼 주변의 직장인들과 관광객들이 오묘한 조화를 이루고 있었다. 그리고 한켠에선 가로수 정비작업이 한창이었다. 바로 영등포구청 푸른도시과 조경팀 가로수반 소속 계약직 노동자 할아버지들이었다.

 

/사진=서대웅 기자
/사진=서대웅 기자

◆마천루 주변을 담당하는 노인들

여의나루역에서 도보로 10분 거리에 위치한 옛 MBC 앞 국제금융로길. 낡은 트럭 한대가 서 있다. 그 주변으로 트럭보다 낡은 옷을 입은 어르신들이 분주히 움직인다. 앞코가 벗겨지고 뒤축이 닳은 신발을 신었다. 더 이상 빨갛지 않은 목장갑을 끼고 있다. 얼굴은 흙보다 검다. 나무기둥보다 거친 주름 사이로 땀방울이 맺혔다. 말수도 적다. 어르신들이 과거 어떤 일을 했는지 알 수 없지만 확실한 건 현재 이들이 ‘노인층의 출발점’에서 고된 노동을 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들은 민원이 있는 곳이면 어디든 간다. 아침 9시 낡은 트럭에 오른다. 저녁 6시까지 점심시간 1시간을 제외한 하루 8시간을 일한다. 일당 6만원으로 하루를 꾸리는 계약직 노동자다. 이들의 계약기간은 3개월. 연속 2번 재계약할 수 있다. 9개월간 일할 수 있는 셈이다. 이후 일하려면 3개월을 의무적으로 쉬어야 한다. 3개월 휴식 후 재계약 여부는 보장되지 않는다.

이날 이들은 나무 밑동의 잡초를 뽑았다. 아무도 눈여겨보지 않는 풀을 뿌리째 뽑고 파인 구덩이는 주변 흙을 두손에 모아 정성껏 메웠다. 보도블록 사이로 풀이 삐져나온 곳이면 얇은 쇠파이프로 그 사이를 들쑤셨다. 보도블록 위로 흩뿌려진 흙은 한쪽 귀퉁이로 쓸어냈다. 이윽고 한더미 모은 풀을 트럭에 실었다.


다른 몇몇 어르신은 나뭇가지를 잘랐다. 톱 달린 장대 막대기를 아래위로, 사선으로 열심히 흔들자 나뭇가지가 힘없이 땅에 떨어졌다. 전기톱 레버를 당겨 성인 키 두배에 달할 듯한 나뭇가지를 본인의 다리 길이만큼 토막 냈다. 주변은 널브러진 잔가지와 나뭇잎으로 어지럽다. 그것들을 다른 한명이 큰 빗자루로 쓸어 한곳에 모아 포대자루에 담았다. 토막 낸 나뭇가지와 포대자루가 트럭에 실린다.

/사진=서대웅 기자
/사진=서대웅 기자

◆“이 일자리도 경쟁… 우린 선택받은 자”

이들 중 나종훈씨(가명·65)와 잠시 인터뷰를 가졌다. 60세까지 식품납품업종에서 일했다는 그의 직함은 놀랍게도 대표였다. 5년 전 만 60세가 되자 대표직에서 물러났다. 이 일은 9개월 전 시작했다. 10월이 딱 9개월째라 11월엔 일할 수 없다. 30대 초반의 자녀 두명은 모두 결혼했고 나씨는 둘째 자녀의 가족과 다세대 주택에서 함께 산다. 둘째네는 4층에, 나씨는 3층에 거주 중이다.

대표직에서 물러나고 5년째 되던 올 초 이 일을 알게 됐다. ‘용돈벌이’를 해야겠다는 생각에 이 일을 하겠다고 얘기하자 자녀들은 반대했다. 아버지가 허드렛일 하는 게 마음에 걸렸던 것. 특히 65세에 다시 일을 시작하는 것에 반대했다. 돈이 심하게 궁한 것도 아니었기 때문. 자녀들은 편안하게 노후를 준비하라고 말했지만 나씨의 생각은 달랐다.


“요즘 65세면 젊은 나이입니다. 직업이 있는 사람이 많을 거예요. 저처럼 용돈벌이하려는 경우도 있겠지만 생계유지를 위해 일하기도 하죠. 내 친구들도 회사에서 퇴직한 후 인테리어, 도매장, 마트 등지에서 계약직으로 일합니다. 내 나이에 찾을 수 있는 정규직 일자리는 없다고 봐야죠. 그렇다고 쉬면 뭐합니까. 쉬기 시작하면 한도 끝도 없어요. 정년퇴직한 공무원 과장 출신도 이 일을 합니다.”

나씨의 형편은 그나마 나은 편이다. 계약직임에도 4대 보험에 가입돼서다. 대부분의 계약직 노동자는 4대 보험을 적용받지 못한다. 지갑 사정도 본인 또래보다 두둑하다. 그는 “친구를 만나면 술은 내가 산다”며 웃었다.


사회가 고령화되면서 ‘60세 청년’이라는 말이 현실화되고 있다. 이날 나씨를 포함한 5명 가운데 4명이 60세 이상이었다. 최고령은 70세. 55세가 가장 젊은 나이였다. 사정은 제각각이어도 이들은 모두 회사에서 퇴직한 경우다. 특별한 기술이 없어 이 일을 택했다.

노인의 노동이 필수인 사회다. 어떤 이유든 손에서 일을 놓지 못한다. ‘인생 2막’ 환경이 녹록지 않기 때문이다. 계약직, 단순노무직이 대부분이다. 이마저도 일할 수 있는 곳은 한정적이다. 이날 나씨와 함께 일한 한 노인은 “이 일자리 찾는 것도 경쟁”이라며 “그나마 우리는 선택받은 사람들”이라고 말했다.

어르신들은 ‘공무집행중’이라는 스티커가 붙은 트럭에 올랐다. 또 다른 민원처리를 하러 간다고 했다. 나무와 포대자루로 채워진 트럭이 거친 엔진소리를 낸다. 트럭은 조용히 달리는 승용차와 주황색 택시들 사이로 사라졌다.

☞ 본 기사는 <머니S>(www.moneys.news) 제458호에 실린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