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회의 땅 '인디'] 홍대서 인디와 친구되기
서대웅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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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대의 ‘불금’은 역시나였다. 지난 7일 가을비가 내리는 홍대 인근은 젊은이들로 북적였다. 의지와 상관없이 사람들에 떠밀려 움직여야 했다. 이날 저녁 8시30분. 클럽 중 큰 편에 속하는 ‘롤링홀’을 찾았다. 기자가 19번째 손님이었다. 관객층은 20대 연인, 혼자 온 청년, 40대로 보이는 중년 남성까지 다양했다.
인디문화와 친구가 되기로 작정한 만큼 ‘인디’가 무엇인지 알고 싶었다. 이날 공연 무대에 오른 주예인씨(25)와 이정아씨(30)에게 물었다. 두 사람은 이구동성으로 인디를 ‘예술’이라고 표현했다. 예술을 대하는 성격은 각기 달랐지만 인디음악의 해석이 그만큼 넓을 수 있음을 보여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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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대 인디밴드 실외공연 팀명 분리수거. /사진=임한별 기자 |
주씨는 인디를 하는 게 힘들지 않느냐는 기자의 질문에 “예술 자체가 힘들다. 그러나 곡을 만들고 부르는 과정은 즐겁다”고 말했다. 사회참여적 메시지를 노래로 표현한 이씨는 “인디뿐 아니라 음악을 포함한 모든 예술은 시대에 대한 이야기, 아픔을 담아야 한다”고 말했다. 이유를 묻는 질문에 그는 “혼자 사는 세상이 아니기 때문”이라고 힘줘 말했다.
◆“인디, 살이 맞닿는 듯한 느낌”
지난 9일 저녁 홍대 KT&G상상마당 건너편 공영주차장 시작점에 위치한 ‘씬디 티켓라운지’를 찾았다. 인디 클럽에 대한 정보를 얻고 본격적으로 인디를 즐기기 위해서였다. 이곳엔 홍대에 위치한 인디 클럽 10여곳의 공연 정보를 취합해 제공한다. ‘Do(두) 인디’, ‘인디스트릿’ 등 온라인 공연정보센터가 있지만 오프라인으로 운영하는 곳은 이곳 뿐이다. 기자처럼 ‘인디 초심자’라면 직접 들러 본인의 취향에 맞는 공연장과 뮤지션 등을 추천받을 수도 있다.
씬디 티켓라운지에서 30여분간 대화를 나눈 뒤 추천받은 ‘제비다방’으로 향했다. 상수역 1번 출구에서 도보 3분 거리로 1층에서는 술과 커피를 팔고 공연장은 지하에 있다. 공연비가 없는 대신 맥주나 커피를 마셔야 한다. 5000원짜리 맥주 한잔을 들고 지하로 내려갔다. 공연 시작 20분 전이었지만 4인석 테이블 3개와 2인석 테이블 2개는 이미 만석이었다. 중간에 놓인 유아용 의자에 앉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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티켓라운지. /사진=서대웅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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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비다방. /사진=서대웅 기자 |
저녁 8시. 이혜지씨(29)가 통기타를 잡았다. 건반과 하모니카 연주도 선보였다. 허스키한 목소리가 매력적이다. 연주 사이사이 1층에서 흘러오는 잔 부딪히는 소리와 잔잔한 대화소리가 섞인다. 저녁 8시40분. 연주가 한창인데 한 직원이 작은 통 두 개를 들고 내려왔다. 모금함이란다. 관객들은 5000원, 1만원권 등을 넣었다. 모금액은 전액 뮤지션에게 돌아간다. 이런 문화를 몰라 현금을 미처 준비하지 못한 기자는 얼굴이 빨개질 수밖에 없었다.
공연을 관람한 맹주상씨(29)씨는 제비다방에 대해 “살이 맞닿는 듯한 느낌이 좋다”고 말했다. 실제 이날 10평 남짓한 공간에 스무명가량이 옹기종기 모여 음악을 즐겼다. 자리가 없어 계단에 걸터앉은 이들도 있었다. 연주자도 이 좁은 공간에 함께한다. 맹씨는 “이곳에 오면 뮤지션을 대하는 자세가 달라진다”며 “유명가수는 아니지만 오히려 음악을 받아들이려고 노력하게 된다”고 말했다.
연주를 마친 후 이혜지씨는 “관객 한분 한분의 표정이 다 보인다. 좋아하는 음악을 이들과 나누는 게 기쁘다”고 말했다. 모금통에 기부하지 못한 기자는 맹씨에게 돈을 빌려 이씨의 데모CD 한장을 구입했다. 5000원. 커피 한잔 값이었다.
◆인디들에게 희망을, ‘먼데이프로젝트’
사실 인디뮤지션들이 설 공간은 점차 사라지고 있다. 전문공연장 ‘클럽 TA(타)’는 지난달 말 월세 700만원을 견디지 못하고 10여년 만에 문을 닫았다. ‘먼데이프로젝트’(Monday Project)는 이런 환경을 이겨내고자 기획됐다. 보통 클럽이 쉬는 월요일을 공략했다. 라이브클럽 ‘에반스라운지’와 ‘FF’가 격주 월요일마다 관객을 모은다.
지난 10일 저녁 7시 에반스라운지 인근 카페. 대학생 10여명이 모여 기획회의 중이었다. ‘먼데이프로젝터’들이다. 기획·사진·영상·라디오팀으로 구성된 이들은 월요공연의 기획과 진행을 담당한다. 뮤지션의 화보를 촬영하고 주말엔 마포FM 라디오방송에서 ‘뮤직 에브리데이’를 진행한다. 먼데이프로젝트를 처음 기획한 에반스라운지 매니저 박성자 이사(40)는 “2년 전 모집공고를 냈는데 많은 학생이 도와줬다”며 “인디를 사랑하는 학생들 덕분에 지금껏 프로젝트가 이어지고 있다”고 말했다. 보수도 받지 않고 이렇게 일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2년 전 프로젝트 출범 당시 함께 일했던 방쿤씨(28)는 최근 이곳에 다시 합류했다. 그는 “인디 공연을 직접 만들며 보람을 느낀다”고 말했다. 인디의 매력에 대해 묻자 “틀에 박힌 유행에 나를 가두지 않는것”이라고 답했다.
TV 속 대중가요는 때로 강요된 소비다. 시청자는 무심코 흘러나오는 노래를 들을 뿐이다. 인디는 다르다. 대중가수들이 연일 ‘감사합니다’를 외칠 때 인디뮤지션은 ‘나가셔도 무방합니다’라고 말하는 듯하다. 이런 인디를 찾는 관객은 적극적일 수밖에 없다. 음악을 주체적으로 소비한다. 방씨는 “인디 공연장에는 자신의 취향에 맞는 아티스트가 어딘가 반드시 있다”며 “그를 찾으면 진심어린 팬심을 갖게 된다. ‘나만의 아이돌’을 만들 수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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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대 인디공연 실내 먼데이프로젝트. /사진=임한별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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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대 인디공연 실내 먼데이프로젝트. /사진=임한별 기자 |
◆“커피 2~3잔 대신 인디공연을…”
먼데이프로젝트의 취지는 유명가수에게도 전달됐다. 이날 첫 무대에 선 가수는 드라마 <시크릿가든>으로 유명세를 탄 ‘LEN’(렌)이었다. 저녁 7시40분 오른쪽 손목에 에반스라운지 도장을 찍고 공연장에 들어섰다. 맨 앞줄은 50~60대로 보이는 일본인 아주머니 팬 5명이 꿰찼다.
저녁 8시 렌이 등장하자 환호성이 터졌다. 어느새 관객은 40명을 넘어섰다. 전문공연장답게 조명이 남다르고 소리는 가슴 깊이 울렸다. 앞줄의 일본 팬들은 캠코더를 꺼내들었지만 곳곳에 자리 잡은 한국 관객들은 마치 일상이라는 듯 무대를 눈에 담았다. 기자는 관객석 뒤편에 서서 ‘이런 공연쯤이야’라는 허세 섞인 자세로 음악을 들었다. 그러나 렌의 두번째 곡 ‘술이야’에서 무너졌다. 핸드폰을 꺼내들어 영상 버튼을 눌렀다.
밤 9시. 무대에서 내려온 렌은 팬들과 소소한 포토타임을 가졌다. 이후 이런 소공연장을 찾은 이유를 묻는 기자의 질문에 렌은 “평일 공연을 살리기 위해서다”고 말했다. 그는 “현재 공연이 금~일요일에 집중됐는데 평일에도 이런 창구가 많이 생겨야 한다”며 “먼데이프로젝트 취지가 좋아서 참여하게 됐다”고 말했다.
기자처럼 인디의 ‘인’ 자도 모르는 초심자가 인디를 즐길 수 있는 손쉬운 방법은 무엇일까. 렌은 “우선 인디에 대한 오해를 풀어야 한다”고 말했다. 보통 인디라 하면 장르 혹은 소규모라고 생각하는데 회사가 아닌 개인이 독립적으로 노래를 만들고 공연 무대에 오르는 게 인디라고 그는 설명했다. 장르도 다양하다. 발라드, 밴드, 록은 물론 댄스까지 있다. 대중이 접근할 수 있는 길은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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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수 렌. /사진=임한별 기자 |
렌은 또 “한국 인디들 중엔 세계에 내놔도 손색없는 가수가 많다. 이들의 질 높은 공연을 오래 보기 위해선 작은 투자가 필요하다”며 “커피 한잔 가격이면 음원 몇곡을, 두세잔 가격이면 공연 티켓을 살 수 있다”고 말했다.
왠지 기자는 앞으로 영화를 줄이고 인디 공연장을 찾게 될 듯하다. 밤 10시 반. 번잡하게만 느껴졌던 홍대의 소음이 다양한 음악으로 들리기 시작했다.
☞ 본 기사는 <머니S>(www.moneys.news) 제458호에 실린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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